[ 커버스토리 ] 2002년01월30일 제395호 

힘센 이형택 “어명이오”?

동화은행 퇴출의 수혜자로 영전 거듭… 개인적 치부였나, 정권의 작품이었나


사진/ (한겨레)


“이형택씨는 (어찌됐든) 동화은행 퇴출의 최대 수혜자였다.”

옛 동화은행 관계자의 이런 일갈은 대통령 처조카가 한국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가늠해볼 수 있게 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동화은행이 퇴출된 뒤 반년 만인 99년 1월, 이씨는 예금보험공사 전무에 올랐다. 동료 대부분이 실직자로 거리에 나앉아 있을 때 홀로 화려하게 영전한 것이다. 과거에는 유명무실했지만, 예보공사는 은행퇴출 시대 이후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시중은행의 최대주주로 떠오르면서 막강한 기관으로 변모했다.

초고속 영전의 비밀… 대선 전부터 주목

동화은행 퇴출 당시 이씨의 직급은 이사대우. 그러나 예금보험공사 전무는 시중은행 행장 출신들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자리라는 게 금융계쪽의 얘기다. 옛 동화은행 관계자는 “동화은행이 퇴출되지 않았다면 그가 대통령 처조카라는 신분을 십분 활용하더라도 마지막 오를 수 있는 자리는 동화은행 행장 정도였을 것”이라며 “역설적이게도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은행이 퇴출된 덕에 예보공사 2인자까지 오를 수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영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전직 금융감독원 고위간부는 “동화은행을 인수한 신한은행에 이씨의 자리를 만들어내라는 압력이 금감원 고위층쪽으로 들어왔으나 금감원이 거절한 것으로 안다”며 “결국 그 자리가 예보공사 전무 자리로 바뀐 것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예보공사 전무에 대통령 처조카이기까지 한 그에게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한 예보공사 관계자는 “방이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며 “찾아온 사람들은 대단한 실력자에서부터 옛 동화은행 청원경찰까지 매우 폭넓었다”고 귀띔했다.

이씨는 김대중 대통령의 적지 않은 친인척 가운데서도 특별한 주목을 받아온 인물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97년 10월, 신한국당은 이씨를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비자금 295억원을 349개의 가차명 계좌를 이용해 관리해온 인물로 지목했다. 대선 직후 검찰은 이씨가 23개 계좌를 통해 정치자금 55억7900만원을 관리해온 것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한국당의 주장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적어도 그가 김 대통령의 처조카 역할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던 사실만큼은 확인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씨가 동화은행 계좌를 통해 관리해온 비자금 내역을 입수한 동화은행노조가 퇴출 직후 한때 이를 폭로할 것을 심각하게 검토했으나, 정치적 파장 등을 고려해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권에 대한 이씨의 역할이 과거 검찰의 수사발표 내용보다 클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씨가 국가기관까지 동원해 보물선 발굴 사업에 나선 혐의에 대해 정치적 의혹이 증폭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역할은 아직 꼬리만 밝혀졌을 뿐

그러나 차정일 특검팀에 의해 이씨가 국가기관까지 동원해 보물선 발굴 사업에 나섰다는 혐의가 포착되기 전까지만 해도, 친인척 문제를 관리하는 사정당국이 정권교체 이후 이씨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스크린해온 흔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옛 사직동팀이나 대검 범죄정보과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씨의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그의 행적이 포착되거나 내사가 이뤄진 적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두 가지 정반대의 추정이 가능하다. 이씨가 개인적으로 한몫 챙기기 위해 앞뒤 따지지 않고 덤벼들었기 때문에 사전 움직임이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첫 번째다. 거꾸로 사전에 정권과 관련해 아주 큰 밑그림을 그려놓고 치밀하게 일을 진행해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일단 옛 동화은행이나 예보공사 관계자들의 지배적인 평가는 “이씨가 그다지 주도면밀한 성격이 못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특검팀의 수사진행 과정에 비춰볼 때 어떤 예단도 아직은 금물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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