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2년01월23일 제394호 

자격증끼리 총성없는 전쟁

변호사는 변리사, 회계사는 세무사 영역 잠식… 공급과잉 속에 전문자격사도 끝물인가


사진/ 전문자격사 개업자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보수는 하향추세다. 수입이 신통치 않다고 알려지면서 응시자가 격감하기도 한다.(김종수 기자)


“전관들도 변호사 개업하기 어렵습니다.” “수습 회계사 초임이 3천만원밖에 안 됩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엄살처럼 들이는 이런 말들이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자격사들이 대거 양산되면서 이들의 수입이 완연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변리사·세무사 등도 마찬가지다. 자격증만 따면 그 순간부터 평생이 보장되던 시대는 이미 옛날 얘기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일반인들에 비해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3∼4년 안에 전문자격사들의 수가 2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어서 “전문자격사도 이제 끝물”이라는 얘기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전문자격사 보수, 눈에 띄게 줄어

현재 정부가 인정하는 전문 자격증은 모두 800여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간호사·정밀기계기술사·조리기능사 등 대부분의 자격증은 취업만 가능하다. 개업을 통해 평생 직장을 보장받는 자격증은 14개뿐이다. 여기서도 의사·약사·수의사·안경사·건축사 등 전공자만 응시할 수 있는 자격증을 제외한다면 누구에게나 응시 기회가 부여되는 자격증은 9개로 줄어들게 된다. 변호사·공인회계사·세무사·변리사·감정평가사·공인중개사·공인노무사·법무사·관세사가 그들이다. 물론 이 가운데서도 비교적 고수익을 보장하는 물좋은 자격증은 변호사·공인회계사·세무사·변리사 정도다. 바로 이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월15일 발표한 ‘전문자격사 보수수준’을 보면 이들의 수입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변호사의 경우 평균보수가 99년 월 456만원에서 2000년 434만원, 2001년 385만원으로 낮아지고 있다. 공인회계사는 자산총액 10억∼30억원의 경우 99년 423만원, 2000년 412만원, 2001년 385만원으로 역시 하향 추세다. 세무사의 평균보수 역시 98년에 비해 2001년에 16.7% 하락했다. 변리사는 특허출원 관계 보수가 2000년까지 증가하다가 2001년 평균 10.2% 하락했다.

지난 99년 2월 전문자격사의 보수 자율화 이후 시장의 경쟁논리가 작용하기 시작한 데다 개업자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1∼2년 사이에 변호사와 회계사 시험 합격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들이 개업하게 되는 1∼2년 뒤부터는 경쟁이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회계사는 시험 합격자가 2000년 555명에서 2001년부터 1천명으로 급증해 조만간 공급 과잉이 예상된다. 변호사 역시 올해부터 1천명씩의 합격자가 쏟아져나오기 때문에 개업이 점점 어려워질 전망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거리가 부족해진 전문자격사들은 다른 영역을 잠식해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변호사다. 변호사들은 지난 2년 동안 590명이 특허출원 업무를 다루는 변리사로 등록했다. 99년 말 등록 변리사 935명 가운데 325명(35%)에 불과했던 변호사가 2001년 말에는 1770명 가운데 915명(52%)로 늘어난 것이다. 이 추세라면 앞으로 몇년 안에 특정기술 분야를 제외하고는 변리사 업무의 대부분을 변호사들이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는 또 세무사의 세무대리 업무와 법무사들의 등기 업무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특허청과 국세청 등록만으로 변리사와 세무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사무원을 법원 출입직원으로 등록시키면 아무런 제한없이 법무사 업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무대리와 등기 업무는 아직도 변호사들이 잘 다루지 않는 영역이다. 그러나 지방을 중심으로 변호사들의 이러한 영역 확대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중개사·노무사도 이미 포화상태


사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거리가 부족한 변호사들은 변리사, 세무사, 법무사의 영역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이용호 기자)


공인회계사 역시 마찬가지다. 세무대리는 이미 개업 회계사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로 자리잡았다. 2001년 말 현재 개업 세무사가 4339명(변호사와 경력 공무원 출신 포함)인데 반해 공인회계사로서 세무사 등록을 한 사람이 4175명에 이른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자격증이 곧바로 고소득을 보장해주던 과거의 아성이 깨지면서 곳곳에서 총성없는 치열한 밥그릇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변리사나 세무사는 자체 인원이 많아진데다 변호사와 회계사들의 공세로 상대적으로 입지가 계속 좁아지고 있다. 한 세무사는 “변호사가 세무사 업무를 하게 된 것은 권력과 힘의 논리에 따른 것”이라며 “실제로 변호사들은 세법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의 장부도 세무사들에게 맡긴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앞으로 변호사들이 양산되면서 미국처럼 각 분야의 특화된 전문 변호사로 가기 때문에 그런 추세는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 대립은 업권을 둘러싼 전문자격사들 사이의 대립이 갈수록 격화될 것이란 전망을 잘 보여준다.

공인회계사도 전망은 회색빛이다. 당장 쏟아져나올 합격자들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1천명을 뽑았다가 200여명이 실무수습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올해는 그 규모가 4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올해 회계법인들이 충원할 수습 회계사 규모가 지난해보다 200명 정도 적은 470∼550명에 그칠 전망”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외환위기 이후 회계법인이 특수를 누릴 수 있었던 기업 구조조정 관련 업무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여기에다 벤처붐이 일면서 벤처기업으로 빠져나갔던 회계사들이 다시 회계사 사무실을 개업하는 추세다. 이래저래 악재가 쌓여 있는 셈이다.

공인중개사와 공인노무사는 이미 포화상태며, 관세사는 일반인의 예상보다 수입이 신통치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응시자 자체가 하향 추세다. 자격증으로서 그다지 매력이 있는 종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나마 취업과 개업에 큰 지장이 없는 쪽이 변리사와 감정평가사 정도다. 그러나 이들도 조만간 개업하기 어려운 시기가 올 것이라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앞으로 몇년 사이에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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