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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성공신화가 창조된다 경제계 전문가 30명이 뽑은 ‘올해 주목할 만한 경제인’, 김정태와 안철수의 실험과 희망
김정태와 안철수. 2002년 새해를 맞으면서 두 사람의 이름 석자를 화두로 던져본다. 왜 하필 이들인가? 그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쉽게 떠오르는 것은 성공한 기업인 정도이나 경제 전문가들은 두 사람에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새로운 성공신화의 주역이라는. 두 경영자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외쳤던 김우중 신화가 무너진 잔해 위에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고 있다. 한 사람은 ‘시장경제의 전도사’로, 다른 한 사람은 ‘벤처정신의 산 증인’으로 혼돈과 변화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실험을 진행중이다. 그들의 성공 여부는 한국사회가 모색하고 있는 새로운 변화와 발전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일 수도 있다.
<한겨레21>은 지난해 말 재계, 금융계, 학계 등 각 분야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새해 주목할 만한 경제인’을 추천해 달라는 요구에 압도적 다수의 응답자들이 김정태(1위), 안철수(2위) 두 사람을 꼽았다. 설문은 경제분야에 관한 것이었지만 두 사람이 상징하는 의미는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 두 사람이 새해 한국경제, 나아가 한국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는 의미있는 응답으로 풀이된다.
‘장사꾼 경영’과 ‘교과서 경영’
두 사람은 회사를 경영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김 행장의 스타일을 한마디로 ‘장사꾼 경영’이라고 한다면, 안 사장은 ‘교과서 경영’이라 부를 만하다. 김 행장이 98년 8월 주택은행장에 취임한 뒤 보여준 경영행태는 당시로선 ‘기행’에 가까웠다. 동원증권 사장 시절 무차입 경영으로 이미 화제를 뿌린 바 있던 그였지만 행장 취임식장에서 월급을 1원만 받는 대신 주식매입선택권(스톡옵션)을 받겠다고 선언한 일은 당시 금융권으로선 충격이었다. 지금은 당연한 얘기지만 ‘주주가치 극대화’를 깃발로 내세운 것도 당시에는 대단히 이채롭게 들렸다. 그의 이러한 선언은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주택은행장 취임 직후 대우 여신을 4달 만에 1조9천억원에서 4천억원으로 줄여버렸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은행장으로 영입하는 데 힘을 실어준 금융감독 당국조차 곤혹스러워할 정도로 철저했다. 수익성 향상이란 목표 앞에선 당국의 압력이 통하지 않았다. 또 98년 말 결산 때는 수천억원의 적자를 감수하면서 부실자산을 모두 털어내버렸다. 이런 경영원칙은 곧바로 주가에 반영됐다. 그가 주택은행장으로 취임하면서 스톡옵션 행사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은행권 최고 주가’는 이후 한번도 깨지지 않고 지켜졌다. 그는 ‘CEO주가’라는 말을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외형보다 가치로 인정받는다
닮은 점이라곤 도무지 없는 두 사람이 성공이란 꼭대기에서 나란히 만나고 있다. 김 행장은 주택은행장 시절 낡은 금융관행에 일대 변화의 물결을 일으킨 데 이어 통합 국민은행장에 오름으로써 이제 금융산업의 전체 판도를 주도하는 자리에 서 있다. 안철수연구소는 지난해 코스닥 등록을 통해 한 단계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으며, 세계 10대 인터넷 보안업체로 발돋움한다는 꿈에 한발한발 다가서고 있다. 걸어온 길은 다르지만 고집스럽게 자기 방식을 밀고 나가 정상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이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이들의 성공은 기존의 관행을 깨고, 회사 안팎의 반발을 물리치는 실험적 과정을 통해 이뤄졌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성공신화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전 대표적인 성공 모델은 이병철, 정주영씨 같은 재벌 회장이나 샐러리맨의 신화로 여겨져온 김우중, 이명박씨였다. 그렇지만 이들은 이미 신화의 주역이 아니다. 정주영 회장이 일궜던 현대는 사분오열되면서 사실상 그룹이 해체됐다. 김우중 신화가 남긴 잔재는 더욱 처참하다. 외환위기 이후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어지고 모래성 위에 쌓아올린 대우그룹이 무너지면서 수십조원의 분식회계와 부실채권이 세상에 드러났다. 대우 사태로 인한 실직자도 수만명에 달했다. 이들이 떠난 빈자리에 이제 김정태와 안철수가 서 있다. 그렇기에 이들의 성공은 개인적인 데 그치지 않는다. 전환기에 처해 있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이들에게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남상구 고려대 교수(경영학과)는 “김 행장이나 안 사장 모두 기존의 낡은 권위를 거부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성공을 이룬 경우”라며 “그러한 시도가 결실로 이어진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경영학과)는 “예전의 경영자들은 외형으로 평가받았다”며 “이제는 그런 양적 기준보다 ‘가치’라는 질적 기준이 중요해진 시대며 김 행장이나 안 사장이 여기에 딱 맞는 모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행장은 98년 8월 주택은행장으로 취임한 뒤 2001년 11월 통합은행장으로 자리를 바꿀 때까지 주택은행의 시가총액을 4천억원에서 4조3천억원으로 늘렸다. 무려 4조원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조 교수는 “인터넷 시대의 최대 취약점인 보안문제는 공공적 성격이 강하다”며 “안 사장은 이를 사업화해서 수익모델을 만들고 기업가치를 키워왔다는 점에서 역시 탁월한 경영자”라고 말했다. 그는 “두 사람 모두 방법은 다르지만 성공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으며 금융, 실물분야를 대표하는 경영자로 나란히 꼽을 만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두 사람의 성공 뒤에는 힘들고 어두웠던 고비들이 있었다. 기존의 낡은 틀 안에선 이들이 속절없는 이단아였기 때문이다. 김 행장이 들려준 일화 한 토막. “첫 직장인 은행에서 말단 직원으로 있을 때 일입니다. 외국 서적을 참고해가며 커머셜뱅크(상업은행)의 영업 전략에 관한 보고서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은행장을 빼고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더군요. 은행장이 저축부장에게 건네주며 한번 검토해보라고 했던가 봅니다. 얼마 뒤 저축부장이란 사람이 부르더니 ‘밥먹고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 왜 ‘씰데없이’ 일을 벌여 성가시게 구느냐’며 타박을 하데요. 당시 그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라는 게 요즘 소매금융 분야에선 상식으로 통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원칙에 대한 강박증
“어이가 없어 본점으로 주문을 집중시키고 모든 거래를 선착순으로 처리하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어땠는지 아십니까. 아이구,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릅니다.” 당시를 회고하는 김 행장의 표정이 조금 씁쓸해졌다. “큰 이권을 뺏긴 시장대리인 3명이 그날로 회사를 그만둬버리더군요. 부랴부랴 1명을 새로 채워넣는 비상수단을 강구했지만 업무는 마비상태에 빠졌습니다. 다음날 거래 실적이 제로(0)였습니다. 거래가 이뤄지지 않으니 고객들의 항의가 대단했지요. 원칙을 끝까지 관철시키긴 했지만 하루 회사 영업을 못하게 만들었으니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빙긋 웃으며) 제가 직장생활 하면서 처음으로 울어본 게 그때였어요.”
원칙에 대한 고집에선 안 사장도 뒤지지 않는다. 몇년 전 일이다. 안 사장과 직원 두 사람이 교대로 식대를 부담하며 밥을 먹게 됐다. 그런데 예정에도 없이 다른 직원이 같이 식사를 하게 됐다. 그날은 안 사장이 부담하기로 한 날이었는데, 식사를 마친 뒤 두 사람분만 계산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다른 한 직원은 “어떻게 저럴 수가!”하며 자기 돈으로 밥값을 계산한 뒤 꽤나 오해를 했다고 한다. 안 사장은 “회사 돈과 내 돈을 너무 엄격하게 구분하는 게 버릇이 됐던 탓이다”고 말했다. 요즘도 달라진 건 없어 부서회식 명목이 아니면 각자가 알아서 계산한다. “물론 내게 지급된 법인카드가 있지만, 그걸 기분 내키는 대로 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짜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는 게, 이렇게 아낀 돈을 나중에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CEO는 회사 돈과 내 돈에 대한 구별이 ‘강박증’ 수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행운, 그러나 준비된 기회
그렇지만 단순히 운이 좋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들은 기회(행운)를 맞을 준비가 돼 있었다. 안철수 사장은 99년 4월에 일어났던 ‘CIH 바이러스 대란’과 관련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이러스 대란을 두고 혹자는 이것을 (안철수연구소에) 행운이었다고 평가할지 모르나 우리는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굳이 표현한다면 ‘준비된 기회’였다.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기회가 오더라도 행운의 모습을 한 기회를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
두 사람이 지금까지 달려온 것처럼 앞길도 순탄할 것이란 보장은 물론 없다. 김 행장은 거대 국민은행의 합병 후유증을 치료해야 할 어려운 과제에 맞닥뜨려 있으며 안 사장은 소규모 백신 회사에서 덩치 큰 종합보안 회사로 변화를 겪어내야 하는 시험대에 서 있다. 두 경영자 모두 새로운 차원에서 경영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고비에 선 셈이다. 새해 이마때쯤 이들 경영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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