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승리로 끝난 제일은행 대표소송… 손해배상 판결에도 강제집행 무관심
우리나라 소액주주들의 대표소송 시대를 연 사건은 97년 6월 참여연대가 낸 제일은행 대표소송이었다. 참여연대는 당시 소액주주 52명의 주식을 위임받아 “제일은행 경영진이 한보철강의 재무구조를 살피지 않고 회수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대출을 결정해 은행과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혔다”며 이철수 전 제일은행장 등 전직 이사 4명에게 400억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심의 결과는 참여연대의 완벽한 승리. 98년 7월 1심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여 피고 4명에게 400억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소액주주들의 최초 소송이 곧바로 최초 승리로 이어진 것이다. 이 소송은 특히 소송에 이기더라도 손해배상금은 해당 기업에 돌아가기 때문에 자신들에겐 아무런 실익이 없는 소액주주들이 오로지 경영진들의 부실경영 책임을 묻기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으로써, 소액주주들의 권리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1심에서의 완승은 뜻밖의 복병을 만나면서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제일은행의 해외매각 과정에서 일반주주들의 주식이 모두 소각 결정돼 소액주주들의 원고 자격이 박탈되게 된 것이다. 당시 외국계 금융회사가 일반주주 주식지분 소각을 요구한 것도 다름 아닌 소액주주들의 대표소송 권리를 원천봉쇄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참여연대와 제일은행은 참여연대가 항소심에 참여하는 대신 배상액을 10억원으로 줄이는 조건에 합의하고 어렵게 소송을 이어갔다. 2000년 1월 항소심 재판부는 다시 피고들에게 10억원 배상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항소심 판결도 참여연대와 소액주주들에게는 상징적인 승리만을 가져다 주었다. 원고인 제일은행과 피고인 제일은행 전 이사들은 각각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고 소송 절차를 고법에서 끝냈다. 뿐만 아니라 제일은행은 피고들에게 재산이 없다며 배상액 10억원마저도 강제집행을 하지 않아 경제적 면죄부를 주었다. 참여연대 이승희 사회경제국장은 “은행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일부라도 강제집행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전직 이사들을 보호하는 데 급급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