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시험은 돈이야!수조원 규모 시험시장 끝없는 팽창… 고시 컨설턴트에 언론고시 학원까지 등장
시험은 이제 산업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날로 새로운 다양한 시험들이 생겨나고, 여기에 따른 수험서와 학원 등 부수상품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또한 시험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예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시험관련 직종과 상품들이 생겨나고 있다.
인터넷 시험상품들도 속속 개발
현재 우리나라의 시험산업 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 관련 새로운 자격시험들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점점 시장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시험관련 시장에서 가장 큰 것은 바로 수험서 시장이다. 수능시험용 고교생 수험서를 포함하지 않더라도 이 시장의 규모는 엄청나다. 현재 우리나라 출판시장의 규모는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하지만 전문가들은 대략 10조원대로 보고 있다. 이 10조원에서 단행본 시장이 대략 3조원에서 3조5천억원선, 그리고 학습참고서가 3조원, 그리고 잡지시장이 1조원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유아용 학습지 시장이 2조원, 중·고생용 학습지 시장이 또한 1조원대로 추산된다. 결국 10조원 출판시장에서 6조원가량을 학습참고서와 학습지 등이 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 학습도서 시장에서 다시 수험서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수험서 시장은 적게 잡아도 대략 5천억원 이상, 1조원대에 육박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 수험서업계는 이 예상보다 실제 시장규모가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수험서 전문출판사인 박문각의 최원택 상무는 “수험서에 따라붙는 테이프와 비디오 강의물까지 합치면 시장규모는 연 2조∼3조원 규모일 것”으로 추산했다. 많은 입시학원에서 따로 만들어 파는 교재들까지 포함하면 설득력 있는 추산이다. 따라서 수험서를 비롯한 온갖 입시상품 전체를 포괄하는 시험산업의 규모는 수조원대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요즘 입시용 교재들은 과거처럼 책과 테이프 두 가지에서 벗어나 매우 다양하다. 특히 인터넷의 보급으로 새로운 상품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박문각에서 운영하는 모의고사 사이트 ‘에듀스파’(www.eduspa.com)도 이런 사례다. 이 사이트는 인터넷상에서 사법고시·행정고시·외무고시·지방고시·입법고시 등 국가고시와 공인회계사, 공인중개사, 물류관리사, 감정평가사 등의 자격증시험, 그리고 7·9급 공무원시험과 법원시험과 검찰·경찰공무원시험까지 수십가지 시험 모의고사를 제공한다. 매달 업데이트되는데, 응시료는 국가고시와 공인회계사가 1만원이고 나머지가 4천원씩이다. 지난 1월의 경우 공인회계사 모의고사에만 1천여명이 접속해 시험을 치른 점으로 미뤄볼 때 월 수천만원의 만만찮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모의고사 문제집 값과 비슷하면서도 인쇄비나 물류비가 들지 않아 훨씬 짭짤한 장사다. 현재 이런 모의고사 사이트는 이곳말고도 여럿이 있고 앞으로도 점점 늘어날 전망이어서 이 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시험과목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영어는 관련 시장규모도 가장 크다. 이 영어시험에서 요즘 가장 각축이 치열한 분야는 바로 어학능력인증시험 시장이다.
응시료 오른 토플, 여전히 호황
원래 이 시장은 미국 유학생들이 응시하는 토플을 제외하곤 강자가 없는 시장이었다. 그러다가 82년 시사영어사가 토익을 들여왔고, 이어 파고다외국어학원이 G-TELP를 들여왔다. 그러나 이 시장은 컴퓨터 시장에서 먼저 ‘표준’을 잡는 1위만이 살아남듯 토익의 위세가 초반부터 휩쓸었다. 이 바람에 파고다외국어학원은 G-TELP 사업을 접고 말았고, 현재 G-TELP는 G-TELP코리아에서 다시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토익은 지난해 76만명이 응시했는데 1인당 수험료가 2만8천원이고 성적표 발급비가 3천원, 시험 연기비가 1만3700원이다. 대졸취업자들이 보통 여러장씩 성적표를 떼는 점으로 볼 때 응시료 못잖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시사영어사 최고의 히트상품이랄 만하다. 여기에 시사영어사가 만드는 다양한 토익참고서와 테이프, 그리고 모의고사문제집 등을 포함하면 시사영어사는 토익이라는 상품하나로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과거 시험지로 시험을 치던 방식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컴퓨터시험방식으로 바꾼 토플은 응시료가 85∼90달러에서 110달러로 올랐지만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다. 토익위원회 호레이스 언더우드 단장은 “컴퓨터시험방식으로 바꾸는 바람에 세계적으로 토플 응시인원이 줄어 들어 일본과 대만의 경우는 과거에 비해 응시자가 30∼40% 정도 감소했지만 한국에서는 영어공부 열풍이 워낙 강해 응시자가 10% 정도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 밖에 G-TELP(응시료 2만7500원∼8만2500원)는 지난해 15만명이, 서울대가 개발한 텝스(TEPS·응시료 2만4000원)는 아직은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편으로 지난해 5만4천여명이 응시했다. 원래 조선일보와 함께 텝스를 운영해오던 서울대는 지난해부터 조선일보와 결별하고 텝스를 단독으로 시행, 관리하고 있다. 서울대는 최근 텝스사업본부를 구성하고 텝스를 중요한 대학 수입원으로 키우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조선일보가 처음에는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했을 만큼 이 사업에 애착을 가졌지만 시험의 공신력과 이미지를 위해 서울대가 단독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많아 단독사업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올해 텝스 응시자 목표를 지난해의 두배에 가까운 10만명으로 올려잡는 한편 주니어텝스를 개발하는 등 공격적으로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서울대가 막강한 인맥을 이용해 각계 기관이 텝스를 채택하도록 판촉을 하고 있다며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영어능력인증시험이 엄청난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서울대 이외의 다른 대학들도 이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그동안 운영해오던 오프라인의 어학학원에 비해 이 시장이 훨씬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숙명여대는 MATE라는 영어 말하기와 쓰기 능력인증시험을 개발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험을 실시하고 있고, 한국외국어대는 영어뿐만이 아니라 일어·중국어·러시아어·스페인어·독일어·프랑스어 능력시험인 ‘플렉스’를 역시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밖에 이화여대는 토익·토플 듣기시험 문제은행을 만들어 전화로 강의하는 ELP(이용료 월 3만원)를 지난해 10월부터 실시하고 있는데 현재 7천여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시험산업이 날로 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예전에는 듣도보도 못했던 새로운 직업도 탄생하고 있다. 수험생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오선희(35·유망고시길라잡이 대표)씨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시 컨설턴트’란 직함을 내건 이다. 오씨는 지난 98년부터 PC통신상에서 각종 국가고시와 공무원시험, 자격증시험상담을 해오고 있다. 수입은 이 PC통신 접속료다. 원래 고시를 준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오씨는 고시공부를 시작하려는 입문생상담을 전문으로 한다. 각 시험의 특성과 향후 진로, 그리고 수험생의 적성상담은 물론 공부를 시작할 경우 어떤 과목은 어떤 방식으로 어떤 강의를 들을 것인지 같은 시험공부계획까지 세워주기도 한다. 이른바 ‘언론고시’학원을 운영하는 최이준(41·한국언론아카데미)씨도 시험공화국이 낳은 새로운 직종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전직 언론사 기자 출신인 최씨는 지난 90년대 초부터 언론사 국어시험 강의를 시작해 현재 서울 강남에서 언론사 수험생만을 위한 학원을 운영중이다. 언론사 시험과목인 국어와 상식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데, 방송사 지망생 실기지도를 포함해 월 26만원이란 적지 않은 수강료에도 불구하고 언론사시험이 몰려 있는 하반기에는 100여명이 등록할 정도다. 이 학원 외에도 언론사 상식시험 강좌 등 다양하고 특화된 희귀 시험 강좌들이 요즘에도 속속 생겨나면서 시험산업은 점점 더 다양하고 넓어지는 추세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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