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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호크보다 무서운 ‘현금’ 미국의 지독한 아프간 내부분열 공작 성공… 탈레반이 두달을 버틴 게 기적이다
요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관련해서 시중에 나도는 의문이다. “탈레반의 집요한 저항으로 미군이 상당한 피해를 입는 장기전이 될 것이다.” 이건, 개전 초기부터 내로라 하는 국제 군사전략 전문가들이 내남없이 했던 말이다. 어쨌든 지난 10월7일 미군의 공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두달째로 접어들었고, ‘비굴한 투항 대신 죽음을’ 명령한 물라 오마르를 비롯한 탈레반 지도부와 주력은 성도로 여기는 칸다하르에 최후의 방어선을 치고 있다.
저강도전쟁이 주효하다
정말 탈레반은 왜 그렇게 쉽게 무너졌는가? 이걸 동의할 수 있는지 어떤지에 탈레반의 붕괴 원인도 들어 있을 법한데, 미국이 노골적으로 고강도전쟁을 벌였던 걸프전과 코소보전쟁은 좋은 비교거리를 제공한다. 중동의 최강국으로 꼽혔던 이라크가 최정예 육군 39만여명과 예비군 65만명에다 탱크를 비롯한 각종 현대식 지대공, 지대지 미사일 그리고 3만5천명의 공군과 MiG-29, Su-25 같은 신식 공격기들을 지니고도 단 44일 만에 미국에 굴복했던 것이 걸프전이었다면, 정예군 12만여명에다 예비군 40만명을 거느리고 각종 탱크와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던 유고도 코소보전쟁에서 두달 보름을 견디지 못한 채 손을 들었다. 비교하자면 정규군사훈련도 받은 적이 없는 민병대 수준의 3만5천∼6만명 병력과 고철덩어리 낡은 무기를 지닌 탈레반이 인류역사상 최강의 군대라는 미국에 맞서 두달 가까이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는 말이다. 아직까지 미군의 대아프가니스탄 전쟁 정보들이 드러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두달 동안 미군이 투입한 전비는 최소 200억달러를 상회하고 공습량도 코소보전쟁을 훨씬 넘어선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래도 탈레반이 ‘쉽게’ 무너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재 최후의 일전을 외치고 있는 탈레반의 붕괴는 고강도전쟁(high intensity war)과 저강도전쟁(low intensity war)을 결합한 미국의 전략을 감당해내지 못한 탓인데, 이미 1998년부터 탈레반 제거를 위해 대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해온 미국을 염두에 둔다면 처음부터 적수가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탈레반의 붕괴에는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공격보다는 오히려 간접적인 ‘분열작전’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한 아프가니스탄 내전의 핵이 되어왔던 인종·종파·문화적 차별성을 극대화하며 ‘현금’을 살포한 미국의 이른바 저강도전략이 주효하면서 탈레반은 내부로부터 급격히 와해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미국은 전쟁계획단계에서부터 탈레반의 내부분열에 사활을 걸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전과 동시에 탈레반과 같은 핏줄인 자히르 샤 전 국왕을 띄워 거국정부를 구성케 한다는 국제적인 압박사업을 추진해온 것도, 아프가니스탄 내부에 탈레반 분열공작조를 침투시킨 것도, 모두 치밀한 작전의 일환이었다.
엄청난 달러 압수당했던 압둘 하크
실제로 미국은 해외에 떠돌던 대소항쟁 당시의 파슈툰족 무자히딘 지도자 압둘 하크 같은 이들을 아프가니스탄 현지로 잠입시켜 탈레반 내부분열공작을 노골적으로 감행했다. 압둘 하크가 탈레반에 체포돼 사형당하기 직전 엄청난 달러를 압수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금을 동원한 미국의 분열공작 실체가 드러났다. 소비에트 러시아가 10년 동안 최신무기로 무장한 최정예부대를 동원하면서 450억달러를 투입하고도 끝내 패하고 말았던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처음부터 승리를 장담해왔던 것은 바로 분열작전에 주목했던 탓이 아닐까? 1기에 100만달러를 웃도는 토마호크 미사일보다 현금이 더 큰 파괴력을 지녔다는 것이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현장을 취재해온 기자들 사이에 나돌던 우스갯소리였는데, 이게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현금매수설과 내부분열 그리고 붕괴의 과정으로 치닫고 있는 탈레반의 현실이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전 지역을 4년 만에 장악했던 탈레반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돈줄과 파키스탄의 병참지원을 받으며 각 지역 토호들을 매수해서 거의 전투없는 승리를 거두었던 걸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이런 가운데 탈레반 지도부가 강·온 대립상을 띠며 내부적으로 급격히 분열되면서 명령체계가 혼선을 빚기 시작했고, 결국 지도부의 적전분열상은 하부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끼쳐 전선을 위축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탈레반이 최대 전략요충지 마자르 이 샤리프에서 전투다운 전투도 해보지 못한 채 퇴각한 과정은 이후 모든 전선의 탈레반 병사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자폭수가 되고 말았다. 탈레반의 마자르 이 샤리프 퇴각은 이후 북부동맹군과 미군에 전투없는 승리를 안겨주며 수도 카불을 거쳐 자신들의 성도 칸다하르 들머리까지 모조리 진상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다른 치명타, 민심의 이반
여기에다 탈레반의 붕괴에는 태생적 한계가 처음부터 잠복해 있었다. 본디 탈레반은 내전의 혼란 속에서 ‘이슬람의 정의’를 앞세운 종교적 열정 수준에서 출발한 무슬림 학생들이었지 정치나 군사조직에 대한 경험을 지닌 조직이 아니었던 탓이다. 특히 외부세계와 차단된 난민촌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국가운영이나 외교적 감각을 기대한다는 일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따라서 칸다하르에서 출발해 2년 만에 수도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은 정치 대신 율법통치에 의존하며 극단성을 자가발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후 탈레반은 다시 2년 만에 전 국토의 95%를 장악해 내전에 지친 시민들에게 안전을 제공함으로써 찬사를 받았으나, 동시에 극단적인 원리주의 살포로 민심을 등지고 말았다. 결국 시민들로부터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 것이 탈레반 붕괴의 또다른 치명적인 요인이 되고 만 셈이다. 대규모 공습과 국제적인 압박 같은 직·간접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탈레반의 붕괴를 재촉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탈레반은 처음부터 전쟁 승리 요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민들의 도덕적 지원을 확보하지 못한데다, ‘내부로부터의 분열 봉쇄’라는 전쟁의 가장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논리마저 이해하지 못해 결국 자멸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칸다하르에서 최후를 맞이하든지 아니면 산악으로 피해 정처없는 게릴라전을 펼 것인지, 이제 탈레반에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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