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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를 닮아 슬픈 DJ여! 정권 도덕성 치명상 입고 몰락의 길로… 기득권세력 총반격 막아낼 뾰족수 있나
실패한 대통령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DJ정권의 핵심축인 동교동계 의원들도 최근까지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DJ정권의 실패를 예견하며 민주계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정치권 안팎의 충고에 “우리는 다르다”고 버텼다. 근거는 명료했다. YS의 최측근으로 문민정부를 떠받쳤던 민주계는 내부 결속력이 약해 임기 말에 급속히 와해됐다. 하지만 동교동은 DJ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DJ가 국정 전반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차별성으로 내세웠다. DJ의 운명은 임기 내내 국정수행 능력에 의문을 일으키다 실패한 대통령으로 막을 내린 YS와는 다를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대다수 정치학자들과 상도동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인사들은 전혀 다르게 평가한다. 임기를 1년4개월 남겨둔 DJ정권의 최근 모습이 YS정권 말기와 너무 닮은꼴이라고 입을 모은다. DJ정권의 난맥상과 위기가 그때보다 심각하다는 진단도 줄을 잇는다. 박재창 교수(숙명여대 행정학)는 “두 정권 모두 여론을 무시한 국정수행으로 민심이 이반된 상황에서 측근비리와 비선조직 등이 문제돼 대통령의 리더십이 의심받고, 결국 레임덕에 이르는 전형적인 몰락과정을 밟았다”고 분석했다. YS정권이 본격적인 위기 징후를 드러낸 것은 노동법 파동이 본격화된 97년 초반이다. 당시 YS와 권력의 핵심축인 민주계 인사들은 문민개혁 완수와 국가경쟁력 제고를 임기 말 국정지표로 내걸었다. 권력 내부에서조차 임기 1년을 남겨두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노동법 개정은 무리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그러나 민주계는 “문민정부 마지막 개혁”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새벽날치기를 강행했다. 남은 임기와 97년 대통령선거 등 정치일정을 고려할 때 여기서 밀리면 권력누수가 발생한다는 현실론이 한몫했다. 97년 1월6일 노동계는 총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나 YS를 비롯한 권력 핵심들은 국민정서를 잘못 읽었다. YS는 연두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잘 몰라 반대한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분노는 6·10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로 발전했다. 권력 내부는 분열됐다. 강경책을 비난하는 온건론과 퇴각하면 레임덕이라는 민주계 실세들이 충돌했다. YS는 1월21일 노동법 개정 포기를 선언하고, 민심수습책을 찾는다. 그러나 이틀 뒤인 1월23일 불거진 한보사태는 상처난 정권의 도덕성에 결정타를 날렸다. YS는 서둘러 황병태·홍인길·김정수 의원, 김우석 내무장관 등 민주계 실세들을 구속하고 둘째아들 현철씨를 검찰에 출두시키는 고단위 처방을 통해 위기탈출을 모색한다. 대국민 사과와 청와대 비서실 개편, 대규모 개각도 단행했다. 그러나 등돌린 민심은 오히려 야당 주장에 동조했고, 레임덕이 본격화했다. 당시 야당은 현철씨를 한보사태의 몸통으로 지목하며 비선조직인 ‘현철사단’의 국정개입 의혹으로 전선을 확대했다. 결국 그해 5월 현철씨까지 구속됐지만 민심은 끝내 회복되지 않았다.
고급옷로비 의혹이 불씨… 여권 핵심도 물의
한빛은행 불법대출사태, 이용호 게이트 등 여권핵심의 비리 의혹도 수준 이하로 처리했다.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이 터지자 당 안팎에서는 배후로 지목된 당시 박지원 문화부 장관과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후퇴 등 쇄신요구가 들끓었다. 그러나 정권 핵심들은 “밀리면 레임덕”이라며 “비리의 증거를 대라”고 버텼다.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고, 결국 박 장관은 사퇴했다. 정권의 도덕성은 이미 회복불능한 상처를 입은 뒤였다. DJ와 동교동 구파는 올 들어 잇단 당정 쇄신요구도 번번이 뿌리쳤다. 오히려 쇄신대상으로 지목된 인사들을 중용하는 오만함을 거듭했다. 박지원 전 장관은 경제팀과 사회팀에 대한 쇄신요구가 빚발친 2001년 3·26개각 때 정책기획수석으로 다시 기용됐다. 지난 9월 DJP공조 파기 이후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로막는 측근 배제 요구가 빗발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쇄신대상으로 지목된 한광옥 비서실장을 민주당 대표로 중용했다. DJ의 잇단 패착과 오만은 국민은 물론 여권 안에서도 더 큰 좌절과 반감만 불러왔다. 결국 10·25 재·보선 패배 뒤 DJ에게 책임을 돌리는 극단적 상황까지 발전했다. 두 정권의 몰락과정은 이렇게 유사하다. 그러나 임기 1년4개월을 남겨둔 DJ정권의 현실은 YS정권 말기보다 훨씬 취약하다. 민주계 한 핵심인사는 “YS정권도 DJ정권처럼 법과 제도라는 시스템 정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하지만 YS는 기득권세력과 한판 승부를 벌이다 장렬히 산화했다. DJ는 이렇다 할 개혁 한번 못한 채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YS정권에서도 임기 동안 국정난맥상과 대권을 둘러싼 내부의 투쟁은 계속됐다. 하지만 YS는 IMF사태가 닥친 97년 10월까지 당과 국정의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 YS정권은 다수파인 영남에 기반했고 원내 다수당이었다. YS는 이 힘을 바탕으로 노동법 파동 직전까지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유지하며, 위기가 닥칠 때마다 반전카드를 내놓았다. 군 숙정과 정치인 사정 등 집권 초반의 개혁조처가 약발이 다하자,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구속과 금융실명제로 국면을 전환했다. ‘장학로 사건’ 등 권력 주변부의 비리로 민심이 급격히 이탈한 96년 4·11총선 때도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해 집권당 최초로 수도권 승리라는 뜻밖의 성적표를 받아낸다. 노동법 파동 이후인 97년 상황도 지금과는 달랐다. 당시 YS는 정권재창출에 대한 확신을 무기로 안팎의 불만세력을 통제했다. 한보사태로 집권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한 97년 3월 YS는 ‘팽’시켰던 이회창 전 총리를 신한국당 대표로 전격 기용했다. 대권논의로 국민적 관심을 이동시킨 것이다. 그러나 여권 내부에서 이회창 대세론이 확산되자 즉각 견제를 시작한다. 6월3일 서청원 의원 등 민주계 핵심들이 정치발전협의회를 결성해 이수성 의원을 키울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또 ‘세대교체론’을 내세워 후발주자인 이인제 의원에게도 힘을 실어줬다. 정권 말기 수많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회창씨가 신한국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97년 7월 말까지 YS의 권위에 정면도전하는 내부세력은 없었다.
그래도 YS보다는 나을 수 있을 건가
DJ정권은 출발부터 다르다. 주요 기반은 호남이다. 그나마 가장 보수적인 자민련과 연합해 겨우 정권을 잡았다. 이것은 정권의 발목을 잡는 태생적 한계다. DJ는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다. 그러나 정권유지의 핵심축은 권력에서 배제됐던 호남과 충청의 정치세력이 연합해 기득권인 영남의 정치세력을 포위하는 지역대립 구도였다. YS정권이 내세운 민주 대 반민주 구도처럼 역사적 정당성을 계속 인정받기 어려운 틀이다. 결국 정권의 도덕성에 허점이 드러나자 기득권세력은 총반격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정권재창출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급속히 퍼지면서 여권 핵심부와 관료사회까지 심각하게 분열되고 있다. DJ의 임기는 아직 1년4개월 남았다. 그러나 동교동의 확신처럼 최소한 YS보다 훌륭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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