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1.10.17(수) 제38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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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토요일은 취미, 일요일은 종교 “주5일 근무제 이전은 기억도 안난다”…유럽인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주말의 풍경
“비교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일상으로 굳어진 지 하도 오래돼놔서….”‘주5일근무제 시행 뒤 사람들의 생활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게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은 적어도 유럽지역에선 우문(愚問)이었다. 스위스에 정착한 지 30년을 넘어서 스위스 사람이 다 된(실제 스위스 국적 취득) 교민 김용학(베른 인근 교외 거주)씨는 “내가 스위스에 왔을 때 이미 주5일근무제가 실시되고 있었다”며 “(주5일근무제)시행 이전에 대한 기억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5일근무제 전후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일요일 없이 일주일 내내 일하는 것을 떠올리는 일과 마찬가지로 상상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주5일근무제 30∼40년의 역사
스위스가 주5일근무제를 도입한 것은 지난 1964년. 연방 노동법에 따른 것이었으며 당시 법정 노동시간은 45시간(지금은 43시간)으로 정해졌다. 유럽지역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이와 비슷해 주5일근무제를 시작한 지 30∼4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96년 근로시간법을 마련, 97년부터 주당 40시간제를 도입했지만 이는 유럽공동체(EC) 기준(훈령)에 맞추기 위한 요식 절차였을 뿐 이미 훨씬 전부터 주5일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었다. 근로시간 단축은 중앙 노사정 합의 결과를 반영, 결정해온 터였던 것이다. 어찌됐건 우리로선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인데, 이들 유럽인의 주말은 어떨까. 멋진 풍광만큼이나 환상적일까. 첫 방문지였던 스위스의 이국적인 풍모는 이런 환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스위스 방문 기간(9월16∼18일)에는 비가 잦았음에도 음울함은 도무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초겨울 날씨에 내린 비는 알프스산맥 봉우리들을 온통 눈으로 뒤덮으며 장관을 만들어냈다. 산 아래에는 아직도 울긋불긋 꽃이 피어 마치 겨울과 여름이 공존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취리히에서 베른으로 오는 도중 거친 시골지역은 골프장 안에 지은 듯한 ‘그림 같은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호수가 많고 자연이 잘 보존된 핀란드, 스웨덴의 경치도 이에 못지않게 탄성과 부러움을 자아냈다. 나라별로 약간씩 다르지만, 주5일근무제가 일찌감치 정착된 유럽지역의 주말 문화는 대략 두 가지로 대별된다. 토요일의 취미생활과 일요일의 종교생활이 그것. 토요일 취미생활에는 주중에 바빠서 미뤄뒀던 집안일도 포함된다. 이런 두 갈래 주말문화는 ‘가족과 함께’라는 한 가지 특징으로 다시 모인다. 삼성전자 스웨덴법인의 강형진 과장은 “이곳 지역 사람들은 주말이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일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한다”며 “가장 흔한 것이 가족과 함께 쇼핑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강 과장은 “스웨덴에는 맞벌이 부부 가정이 많아 평일에는 집안에 필요한 물건이 있어도 (가게가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구입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미화 3만달러 안팎에 이를 정도로 풍족함을 누리고 있지만,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맞벌이가 불가피하며 이에 따라 이들만의 독특한 주말문화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업 에릭슨을 방문했을 당시에 본, 우리에겐 대단히 낯선 풍경 하나는 이 나라에 맞벌이가 대단히 널리 퍼져있음을 짐작게 했다. 큰 키에 머리를 짧게 깎은 에릭슨 홍보담당 이사 매즈 임프가르드 매드센이 공식 브리핑(설명회)을 하는 자리에 네댓살이나 먹었을까 싶은 앙증맞은 사내아이가 한명 있었다. 이 꼬마는 브리핑 내내 제일 앞줄 왼쪽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통역을 맡은 이에게 물어봤더니 매드센 이사의 아들이라고 했다. 맞벌이 부부여서 아내가 바쁜 이날은 그가 아들을 데리고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웨덴의 경우 쇼핑몰이나 다른 시설들도 평일에는 오후 5시면 거의 문을 닫는다. 이는 유럽지역의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여서 외국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 및 레스토랑, 호텔 바 등 몇곳을 빼고는 저녁에 불을 밝혀놓은 경우가 드물다. 스위스, 핀란드, 스웨덴을 다니며 인상 깊었던 것은 도심지역임에도 초저녁이면 어두컴컴한 거리 풍경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근무시간이 한국에 견줘 자유롭기는 하지만 필요한 물건을 살 시간은 주말에나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토요일에 이뤄지는 취미생활은 지역별로, 나이별로 다르지만 스웨덴에선 주로 야외 운동이나 정원 가꾸기, 국내 여행이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여름에는 별장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별장이라고 해서 우리처럼 특정계층이 즐기는 호화로운 장소가 아니라 시외곽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보통 사람들을 위한 소박한 휴식 공간이다. 여름철 주말이면 온 가족이 이런 별장으로 와서 낚시를 하거나 캠핑을 즐긴다고 한다.
집안일 돌보는 즐거움을 아는가
역시 유럽지역의 공통된 현상이긴 하나 스위스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주말이면 집안의 물건을 손수 만들거나 직접 고치는 일이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교민 김용학씨가 들려준 일화 한 토막은 스위스인들의 이런 독특한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그가 스위스의 한 가정집을 방문했을 때 우연찮게 지하실을 구경한 일이 있었다. 그곳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망치를 비롯한 각종 연장을 걸어두는 합판이었다. 이 합판에는 이름도 모를 연장들이 빽빽이 꽂혀 있었는데 살짝 들어보니 연장이 꽂힌 자리마다 그 모양에 꼭 맞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하나라도 잃어버렸을 때 금방 파악할 수 있도록 한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는 부지런하고 검소한 스위스인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나 동시에 인건비가 비싼 데서 생겨난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들에겐 산으로, 들로 놀러 가는 것만이 휴식이 아니라 회사의 일상 업무에서 벗어나 집안일을 돌보는 것 또한 즐거운 취미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한다. 일요일은 대부분 교회나 성당에서 보낸다. 김용학씨는 “스위스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 아니면 개신교 신도들인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일요일은 거의 종교생활에 바친다”고 전했다. 스위스에서 만난 황성수 삼성전자 비엔나 지점장을 통해 오스트리아 사정도 개략적으로 들을 수 있었는데 이곳 역시 일요일은 교회나 성당에서 보내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물론, 젊은이들의 경우 종교생활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1박2일로 스키여행을 떠나거나 패러글라이딩, 번지점프 등 스릴있는 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젊은층으로 갈 수록 종교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고 있는 것 또한 유럽지역의 공통된 현상이라고 한다. 세대가 교체되면서 주말문화도 적지 않이 달라질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취리히·헬싱키·스톡홀름=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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