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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역설 전세계 83곳에서 이해관계의 충돌, 국제정치의 실패를 웅변한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으로 전쟁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무력 분쟁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소 냉전구조의 해체는 국지적 분쟁의 급속한 증가를 가져왔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전지구적인 체제대립의 그림자에 묻혀 있던 민족·인종간의 갈등과 내분이 물리적 충돌로 불거진 것이다. 냉전종식 첫해인 1989년 세계적으로 26개에 불과했던 무력충돌은 94년 46개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후 유엔과 나토 등 국제기구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일부 분쟁들은 조정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면서 3∼4년간 감소 추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97년을 고비로 무력충돌은 다시 급증해 98년 42개, 99년 45개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18개 분쟁(40%)은 한해 적어도 1천명이 넘는 사망자를 기록한 국지전급 이상의 무력충돌로 평가된다. 무력분쟁의 발생건수를 지역별(99년 기준)로 보면, 아프리카 대륙이 수단내전과 르완다내전 등 17개로 가장 많고, 아시아지역이 스리랑카내전과 카슈미르분쟁 등 11개로 그뒤를 따른다. 중동지역이 7개였고, 독립국가연합(CIS)에서도 체첸분쟁 등 5개의 무력분쟁이 벌어졌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동 등이 무력충돌 다발지역으로 부각된 것은 역시 과거 서구 식민지배의 역사에서 비롯됐다. 지역의 민족·종족적 특질을 무시한 채 열강들이 제멋대로 국경선을 구획하고 분할 독립시킨 결과, 지역내부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게 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거 주를 이뤘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제형 분쟁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일국 내 내분형과 내분에서 비롯돼 외세가 개입된 혼합형 분쟁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99년 말 현재 내분형과 혼합형 분쟁은 전체 분쟁의 70%에 이르고 있다. 중동지역은 예외적으로 내분형보다 국제형 분쟁이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99년 중동의 7개 무력분쟁 가운데 나라와 나라 사이의 충돌은 미국-이라크전과 이란-이라크 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3개에 이른다. 미국·영국-아프가니스탄분쟁이 더해지게 돼, 전체 무력충돌은 8개로 늘어나면서 국제형 분쟁 비율도 50%에 이르게 됐다. 분쟁을 무력충돌이라는 협의의 개념이 아닌 이해대립과 갈등이라는 광의의 개념으로 바라보면 분쟁지역은 훨씬 늘어난다. 2000년 2월 말 현재 이런 광의의 분쟁은 모두 83개에 이른다. 급격한 무력분쟁의 증가는 국제적 대화의 룰 붕괴와 그에 따른 국제정치의 실패를 웅변해준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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