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1.09.18(화) 제377호 |
[표지이야기] 이 징그러운 ‘미국 근본주의’ 테러에 테러로 대항하는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미국 평화운동단체들은 무엇을 외치나
“베트남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아니면 캄보디아나 라오스사람들도 괜찮다. 그도 아니면 인도네시아나 동티모르, 칠레, 중남미, 이라크,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도 물어보라. 미국의 폭력에 대한 분노는 오래된 것이다.”
“‘눈에는 눈’(정책)은 우리 모두를 눈멀게 한다.”(An eye for eye leaves us all blind) 한 미국 평화운동단체가 최근 미국 언론에 보낸 호소문 내용이다. 본토에 대한 사상 초유의 잔학한 테러리즘으로 인해 섬뜩할 정도의 애국 열기가 휘몰아치고 있는 미국의 분위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내용이다. 성조기는 불티나게 팔리고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는 80%를 뛰어넘는다는 외신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보복은 ‘소매상 테러리스트’만 양산할 것
그러나 미국의 평화운동세력들은 진보와 보편적 인권, 반군사주의를 내걸고 도를 더해가는 맹목적 애국주의 열기에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모아가고 있다. 이들은 크게 △무차별적인 대규모 군사보복 계획을 재고할 것 △테러리즘의 근본원인인 폭력적 패권주의 정책을 반성하고 전면 재검토할 것 △미국 내의 강경·보수 흐름이 가져올 폐해를 장기적 관점에서 고려할 것 △아랍 출신자들과 이슬람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미국 내 무고한 소수자 그룹들이 비이성적 폭력에 희생되어서는 안 될 것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이 아직 미국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 만큼 현실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강경일변도로 치닫는 상황을 이성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주고 있다. 평화운동가들은 먼저 미국사회가 쉽게 군사주의로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이 이번 테러리즘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평화운동가는 이런 고백을 하기도 했다. “테러리즘이 발생한 뒤 ‘미국이 과연 보복공격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싶었다. 그러나 미 정부와 언론은 처음부터 ‘보복공격을 할 시간과 장소는 어디인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미국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 걸프전 승리로 엘리트집단과 일반대중이 첨단전쟁의 신봉자가 된 상황도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첨단전쟁에 대한 지나친 신뢰와 의존은 테러리즘의 본질에 대한 정치적 이해와 효과적이면서도 섬세한 접근을 무시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게 평화운동가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테러리즘을 무분별한 전쟁으로 응답하는 것이 폭력의 순환고리를 끊지 못하게 하고 결국은 또다른 테러리즘을 불러온다고 강조한다. 제국주의적 테러리즘이 이른바 세계 곳곳에 ‘소매상(retail) 테러리스트’들을 양산해낸다는 것이다. “대규모 파괴를 위해 이 나라가 사용하고 있는 수조달러와 미 중앙정보국(CIA),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으로도 이 테러리즘을 막을 수는 없었다. 민간인이 포함된 다른 나라에 대한 폭력으로 우리의 안전이 지켜질 것인가. 그렇지 않다. 또다른 증오에 불을 댕길 뿐이다. 우리가 만들어서 세계에 팔아먹는 파괴의 무기 대신 세계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수백억달러 규모의 원조를 보내야 한다. 집없는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 진정한 미국의 안전은 미국이 전세계인들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평화운동단체 ‘PEACE WORKERS’가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이다. ‘WAR RESIST LEAGUE’라는 시민단체 역시 비슷한 주장을 담은 기고문을 언론에 실었다. “(미국이 안전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 국제법, 미국법과 외교에 의존하는 한편 이번 테러리즘의 모든 원인과 배경들을 추적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군사주의화하고 다른 나라를 희생양으로 삼는 동시에 국내 인권을 제한하려고 한다면 비참한 결과만이 기다릴 것이다.”
미국의 위선은 생각도 않나
이들은 미국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제기도 하고 있다. 평화운동가인 로버트 젠슨은 “미국 정부는 제3세계 민간인을 겨냥한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해왔다”면서 “이것을 테러리즘이라는 말 이외에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지난 50여년 동안 현대사가 이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내 얘기가 터무니없다면 베트남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아니면 캄보디아나 라오스사람들도 괜찮다. 그도 아니면 인도네시아나 동티모르, 칠레, 중남미, 이라크,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도 물어보라. 미국의 폭력에 대한 분노는 오래된 것이다. 베트남 민간인들은 미국의 융단폭격을 받았다. 동티모르 민간인들은 미국의 동맹국과 미국이 지원한 무기로 살해당했다. 니카라과 민간인들은 미국으로부터 위임받은 무장세력들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이라크 민간인들은 전 국토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정교한 폭격의 과정에서 죽어갔다. 대규모 보복은 반드시 민간인을 희생시킨다. 세계무역센터 안에 있던 사람들과 납치된 비행기 안에 있던 사람들과 같은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다. 부시의 표현대로라면 ‘어머니와 아버지들, 친구들과 이웃들’이다.” 그는 이어 “부시가 말한 ‘정의와 평화를 위한 우리의 결단’(our resolve for justice and peace)이라는 말은 위선적”이라며 “미 대외정책의 직접적인 결과로 숨져간 동남아시아·중남미·중동지역의 수백만 민간인들의 목소리가 정의와 평화를 위한 우리의 결단의 증거가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우리가 적어도 예의바른 사람들이라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폭력의 조달자(purveyor)’라고 규정한 우리 정부에 대해 이렇게 요구해야만 한다. 미친 짓은 이제 그만하라고!” 평화운동가인 로버트 피스크는 미국 언론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중매체들은 이번 사태를 선과 악, 미국식 자유 대 비이성적인 이슬람 원리주의로 단순화하고 있다. 이같은 보도방식은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영토로부터 이집트에 이르는 중동지역에서 독재정권을 지지해온 미국의 정치적 역할을 외면하는 심각한 시각의 결함을 보여준다.” 그는 또 “서방의 신문과 텔레비전은 미국 민간인들의 무고한 죽음에 슬퍼하면서 이라크 어린이들 10만여명이 미국의 폭격으로 숨진 것과 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으로 1만7500명이 숨진 것에 대해서는 왜 슬퍼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이는 모두 ‘서방의 테러리즘’이지만 서방의 미디어들은 감히 이 단어를 쓰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극단적 애국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평화운동가 존 필저는 이와 관련해 “군사·경제·국제정치 등 모두를 장악하고 있는 이른바 ‘미국 근본주의’는 전세계 테러리즘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며 “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지금까지 이슬람교도들이었다”고 정리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번 사태의 본질에 접근해보려는 시각도 있다. <빈곤의 세계화>의 저자로 유명한 미셸 초스도프스키(오타와대학 교수)는 빈 라덴이 애초 아프간과 구소련의 전쟁에 개입한 CIA가 키워낸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래식 무기의 최대 수출국으로 전세계 분쟁지역들마다 ‘인도적 개입’이라는 구실로 끼어드는 미국의 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빈 라덴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CENTER FOR ECONOMIC & SOCIAL RIGHTS’라는 시민단체는 미국사회 내부의 민주주의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슬람교도나 아랍 출신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테러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모든 시민단체들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이슬람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이같은 ‘희생양 만들기’로는 사태를 개선시킬 수 없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평화운동진영에서는 보수 강경론이 득세함으로써 생겨날 폐해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노엄 촘스키는 최근의 경향이 ‘징고이즘’(jingoism)이라는 극단적·호전적 애국주의로 이어질 경우 테러리즘 직후 비판을 받은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이라는 어리석은 계획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논쟁들조차 겁먹은 대중에게는 강한 무게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평화는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 정의의 실재”라고 역설했다. 테러리즘에 대해 ‘패권 테러’로 대응하는 것은 미국식 평화와 미국식 정의일 뿐이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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