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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다 공격을 할 것인가 현대전 개념과 어울리지 않는 아프가니스탄 폭격… 지상병력 파견도 미군의 만만찮은 희생 남길 것
이미 1998년 미국은 탈레반의 훈련소들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최신예 토마호크미사일 수십발을 발사한 경험이 있다. 결과는 멍통 수준이었고 순박한 민간인들만 살해하고 말았다.
극단적인 미국의 소리들
거의 같은 시간, 오사마 빈 라덴은 파키스탄의 한 신문에 자신의 결백함을 밝혀왔다. 4대의 여객기가 동시에 공중납치당하는 상황을 간파하지 못한 세계 최고의 정보대국, 철벽 안보망을 자랑하던 펜타곤이 민간여객기에 타격을 입는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 그리고 세계의 수도라 자부하는 뉴욕에 상징으로 우뚝 섰던 자본주의의 꽃 월드트레이드센터가 허물어지는 상황을 맥없이 바라보던 세계 최고의 자본대국. 그런 미국의 수준에서 이처럼 발빠른 정보수사와 결론이 났다는 사실 자체가 한편의 코미디였다. “오사마 빈 라덴이 개입되었다는 정보는 없다. 미국이 증거를 보인다면 조사할 것이다.” 같은 날, 파키스탄 주재 탈레반 대사의 공식적인 발표는 묵살당했고, 미국의 모든 언론매체들은 일제히 ‘전쟁’을 주장하며 애국적인 시민의 역할을 강조했다. 명확한 적도 없고 공격할 목표물도 없는 가운데 벌어진 이 개전론은 말하자면 전 지구상의 적대세력을 테러범으로 몰아붙인 미국식 민주주의의 백미였다. “전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고 자유는 제한되어도 좋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은 광적인 무장철학을 주도했고, “똑같은 규모의 보복만이 적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 <CNN>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같은 골수 극우파의 논리를 여과없이 내보내며 ‘하나의 미국’ 만들기에 몰두했다. “핵무기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공격해야 한다.” 국무부의 전 대테러 담당관이었던 래리 존슨 같은 이들의 극단적인 표현이 미국의 소리가 되어가는 것을 간파한 부시 행정부는 자신있게 전쟁준비에 착수했다. 부시는 뉴욕 시장에게 군사령관과 같은 호칭과 권한을 부여했고, 보스턴을 비롯한 주요도시의 빈 하늘에 F-15전투기를 띄워 무력을 과시했다. 군부는 걸프만의 임무를 마치고 인도양으로 항진중이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에 현장확보 명령을 내려 또다른 항공모함 칼빈슨호와 합류케 했으며,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미군들에게 비상경계령을 발동했다. “미국의 공격이 결백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미국에 대한 증오심은 폭증할 것이고, 결국 ‘화요일의 공격’과 같은 자살공격이 다시 이어질 것이다.” 탈레반 대변인 압둘 하이 무트마엔은 처음부터 공격 목표가 아프가니스탄으로 결정된 사실을 놓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로이터통신>의 카불 현지기자 타힐 이크람에 따르면 탈레반의 종교지도자들이 이슬람교 사원의 연설을 통해 반미 성전을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은 피난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9월14일부터는 외부와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전화선마저 보안을 이유로 끊어버린 데다, 파키스탄의 탈레반 대사관이 비자발급을 중단해 아프가니스탄 내부 소식은 거의 차단된 상태다. 그 사이, 부시 행정부는 ‘동정심’을 이용한 동맹군 확보에 사력을 다해, 영국과 이탈리아로부터 군사지원을 확보했고, 전통적인 물주인 일본과 아랍의 부호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재정지원을 그리고 파키스탄으로부터는 정보·병참지원 약속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황무지에 거대한 탄공만 남기는 꼴
수도 카불은 30년전쟁으로 이미 폐허가 되어버려 타격점이 될 만한 군사시설이나 심지어 건물조차 없는 실정이고, 산업시설이나 사회기반시설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통틀어도 전무한 상태다. 굳이 따지자면 카불 남부와 잘라라바드 사이에 소형 구식발전소가 하나 있긴 한데, 폭격기나 미사일이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협곡 속에 자리잡고 있어 바보가 전략을 세우지 않는 한 공격목표로 삼지 않을 것이다. 공습의 주요한 먹잇감인 탱크니 방공시설이니 통신시설도 마땅한 게 없다. 30년씩 묵은 딸딸이 탱크를 잡겠다고 한발에 100만달러짜리 미사일을 쏜다는 일도, 80mm 수준의 가냘픈 기관포를 피하겠다고 융단폭격을 가하는 일도 모두 미국의 가공할 현대전 개념과는 어울리지 않는 수치스러운 일일 터이다. 카불공항과 탈레반의 30년 묵은 미그전투기는 아마도 공격목표 제1호가 되겠지만, 그냥 두어도 좋을 만큼 군사적 대응력이 없는 장난감이거나 고물들이다. 대인 공격도 당치 않은 일로 보인다. 탈레반의 지도자 물라 오말이 머무르는 칸다하르의 거주지는 그저 좀 큰 가정집 수준이고, 오사마 빈 라덴은 집 같은 개념도 없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으로 옮겨다니는 형편이다. 남부의 이른바 테러리스트 훈련소란 것도 산악 한가운데 자리잡은 평지에 가건물 몇개가 있을 뿐인데 어디다 공격을 할 것인지? 이미 1998년 미국은 그 훈련소들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최신예 토마호크미사일 수십발을 발사한 경험이 있다. 결과는 멍통 수준이었고 순박한 민간인들만 살해하고 말았다. 따라서 하이테크전- 실효성 없음이 이라크와 코소보에서 증명된- 개념을 앞세운 미국이 다시 걸프전을 연상하며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한다면, 그야말로 황무지에 거대한 탄공만 남기는 꼴이 될 것이고 순결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둔 듯, 부시 행정부는 소수정예의 지상군 파견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지상군 파견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서 최후의 적까지 추적하겠다.” 부시의 결의와 달리 미군- 동맹군- 의 희생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이 그 다음 문제다. 어디서 탈레반을 공격하고 어떻게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겠다는 건지?
러시아의 특수부대들도 백전백패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아프가니스탄은 바다가 없다. 항공모함을 띄워 물량에 의존한 공습만을 능사로 삼아온 미군의 군사작전 개념으로 볼 때, 바다가 없는 대아프가니스탄 작전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나라들 가운데 미군에 호락호락 군사기지를 제공할 나라도 없다. 북부의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여전히 러시아의 군사적 영향을 받고 있으며, 동부의 중국이나 서부의 이란이 선뜻 미군에게 군사기지를 내줄 일도 만무하다. 남은 것은 남부의 파키스탄뿐인데, 그동안 탈레반의 가장 중요한 뒷심이 되어온 대아프가니스탄 관계로 보나, 강력한 이슬람교 근본주의 세력들의 압박을 받게 될 국내적 현실로 보나 역시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미국의 입장에서 파키스탄은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상군을 파견하기 위해서도 파키스탄이라는 병참보급기지가 절실하고, 아라비아해의 항공모함을 주공격수로 활용하더라도 전폭기나 미사일이 파키스탄 영내를 넘어야 한다는 지형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탓이다. 파키스탄의 최고 실력자 무샤라프 장군이 대미 협력을 약속했다지만, 인도를 사이에 둔 정치적인 조건들과 경제제재 해소를 보상카드로 들고나올 것이 뻔해 아직은 속단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슬람교사회의 비난도 그가 감수해야 할 중대한 지점이다. 어쨌든, 머지않아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난타를 당할 것으로 추측되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현재 운명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의 남하정책 봉쇄라는 전략적 가치와 천연자원의 보고인 중앙아시아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한 미국이 대아프가니스탄 정책으로 설계하고 창조한 탈레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지원과 파키스탄의 병참지원을 받으며 자라났고, 1994년 파키스탄 난민촌을 근거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를 장악하는 놀라운 조직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만인 1996년 수도 카불을 점령했고 다시 2년 만인 1998년 무렵에는 아프가니스탄 전 국토의 93%를 점령해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다. 비록 유엔의 아프가니스탄 자리에는 여전히 랍바니 전 대통령의 대표가 앉아 있고,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세 나라만이 탈레반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현실이지만. 그러나 지구상에서 가장 순결한 이슬람교 국가 건설을 꿈꾸어온 탈레반은 이슬람교 혁명을 외치는 각국의 무장단체들에 군사훈련장을 제공하면서부터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미국과 탈레반의 관계를 순진한 ‘계산착오’쯤으로 여겼지만, 1998년 아프가니스탄이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대사관 폭발사건의 주범으로 몰린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준 대가로 미국의 가공할 미사일 공격을 받는 것을 보면서, 둘의 애증관계가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탈레반과 미국의 애증관계
세계전사에 가장 빛나는 게릴라전으로 기록된 10년간의 대소항쟁이 안겨준 영광은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성전을 주도했던 각 정파들의 권력투쟁에 제물이 되어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내전상태에 빠져들었고, 초창기 탈레반의 승리는 내전의 종식을 갈망해온 시민들에게 적지 않은 희망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단기간의 승리로 국가를 담당하게 된 탈레반은 경험없는 정치 대신 율법통치에 의존했고, 이런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전통과 마찰을 일으킬 때마다 더욱 극단적인 교조주의 이슬람교 원리를 살포하며 정체불명의 교정일치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국내외로부터 고립되는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해오면서 시민들의 정서를 통해 바라본 탈레반의 얼굴도 극단적인 양면성을 띠고 있었다. 하나는 전쟁에 지친 시민들에게 안전을 제공해준 천사의 모습이라면, 다른 하나는 지독한 이슬람교 원리로 시민들의 숨통을 막아버린 악마의 것으로. 하여간 30년전쟁에 지친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은 오늘 난데없이, 뉴욕과 워싱턴이라는 참으로 먼 도시의 일들이 자신들의 삶과 죽음을 가를 희한한 현실과 직면해 있는 셈이다. 이성도 논리도 통하지 않는, 부시의 말을 빌리자면 21세기 최초의 전쟁 앞에서. 20세기 걸프전에서 미국의 공격과 경제봉쇄로 100만명의 꽃다운 이라크 아이들이 한번 펴보지도 못한 채 싸늘한 시체로 실려나가는 동안에도 국제사회는 침묵했는데, 또 얼마나 많은 아프가니스탄의 아이들이 같은 길을 걸어야 할는지?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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