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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전쟁 미국의 수렁 대참사 앙갚음으로 아프카니스탄 공격 선택… 테러 근절 명분에도 역효과 우려 많아
미국의 공격과 군사외교 전략은 어떻게 전개되고 세계정세는 어떻게 바뀔까, 빈 라덴으로 추정되는 테러범은 왜 미국의 심장부에 끔찍한 타격을 가했는가, 테러리즘은 필요악인가 절대악인가, 그리고 세계경제와 우리 경제의 앞날은 어떻게 되나. 편집자
21세기 첫 전쟁의 먹구름이 지구촌을 뒤덮고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전시 지원체제로 신속히 재편되고 있다. 워싱턴 시내에는 아연 긴장감이 돌고 있다. F15기 등이 상공에서 초계비행을 하고 있는 가운데 백악관 등 주요 시설 경계가 크게 강화되는 등 곳곳이 전쟁 분위기다. 테러세력에 대한 전면보복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맞서 아프가니스탄 집권 탈레반 정권도 ‘성전’의 깃발을 높이 치들면서 전의를 다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안에 머물고 있던 유엔, 비정부기구(NGO) 단체 관계자와 취재기자들도 서둘러 인접한 파키스탄 국경쪽으로 몸을 피하고 있다. 아프카니스탄뿐 아니라 다른 인접한 중동지역 국가들도 혹시 자신들한테 튈지 모를 불똥을 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미 전시체제로 공습의 형태 논의
워싱턴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 등 크고 작은 전쟁준비 회의가 시시각각으로 소집되고 있다. 전쟁의 주역으로 기억될 딕 체니 부통령를 비롯한 콜린 파월 국무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 등이 머리를 맞대고 군사적 대응방안을 비롯한 모든 가능한 가상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 전세계에 나가 있는 미군의 발걸음도 눈에 띄게 빨라졌다. 미 항공모함들은 잇따라 중동지역으로 급파돼고 있다. 빈 라덴 제거 임무를 띤 것으로 보이는 200여명의 미 특수부대 요원들이 9월15일 파키스탄에 도착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일본에 머물던 미국의 이지스함 카우펜스도 이날 아라비아해역으로 급히 다가가고 있다. 미 제82공정사단과 제101공정사단이 미 본토에서 중동으로 출발할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91년 걸프전 이후 10년 만에 예비군 긴급 동원령을 내렸다. 과연 부시는 언제 전쟁개시 명령을 내릴까가 관심거리다. 누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타격을 가하느냐도 궁금하다. 천연요새나 다름없는 아프가니스탄을 치기란 쉽지 않다. 평야지대에서 싸웠던 걸프전 때와 다르고, 보스니아나 코소보와도 모든 조건이 다르다. 아프가니스탄은 악명높은 산악지대로 이뤄져 있다. 자칫 잘못 발을 담갔다간 베트남전 짝이 나기 십상이다. 막강 군사력을 자랑하던 옛 소련도 어이없이 물러난 곳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던 옛 소련이 나가떨어질 정도라면, 미국도 간단치 않을 것이다. “이번 전쟁은 쉽지 않을 것이며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 화요일의 대참사 나흘 뒤 부시 미 대통령이 털어놓은 말이다. 테러사건이 터지고 금방이라도 미사일을 쏘아댈 것 같은 분위기가 멈칫하는 것도 이런 고민들이 따랐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준비중인 이번 전쟁은 진주만 공격이나 걸프전 때와는 달리 이른바 주적(主敵)의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반미 무장조직들은 중동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다. 미국으로서는 빠른 시일 안에 승리를 거두기가 어렵고 미군의 적지 않은 희생은 물론, 반미감정의 거센 맞바람까지 예상해야 한다. 걸프전을 직접 성공적으로 치렀던 파월 국무장관은 △분명한 목표물 △명확한 철수전략과 국가이익 △압도적인 힘의 우위라는 조건들이 확보된 바탕 위에서만 미군이 전쟁에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파월 독트린의 잣대로 보면 이번 아프가니스탄 작전은 문제투성이로 보일 수밖에 없다. 주적의 실체도 뚜렷하지 않고, 언제 철수할지, 그래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분명치 않다. 무엇보다 오사마 빈 라덴이 진범이란 증거가 아직은 부족하다. 더구나 미국이 테러지원국가로 낙인찍어온 이란, 이라크, 수단이나 알제리 등 아랍권 국가 가운데 하나가 테러를 직접 저질렀거나 지원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지금까지의 모든 검토사항들을 백지화해야 한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감행한 뒤 이런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그야말로 부시 정권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위험부담 많은 빈 라덴 궤멸작전
그렇다면 부시 행정부가 생각하는 또다른 대안은 무엇일까. 부시 정권은 유세 때부터 신고립주의 노선을 천명했다. 발칸반도 등을 비롯한 분쟁지역에서의 해외 주둔 미군병력을 가급적 줄이겠다는 게 기본입장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대안으로 나온 것이 이른바 ‘다국적군 구성론’이다. 명분이야 지구촌을 테러공격으로부터 함께 지키자는 것이지만, 속셈은 전쟁 부담을 나눠갖자는 것이다. 미 국무부는 최근 워싱턴 주재 외국 대사들을 모두 초청해 미국의 군사적 대응에 대한 협조를 부탁했다. 하지만 말이 요청이지, 외교적 수사나 표현은 거른 채 단도직입적으로 미국의 편에 서줄 것을 요구하는 수준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일부 국가 정상과의 전화통화에서 “For, or against?”(도와줄래 말래?)라고 직설적인 물음을 던졌다는 후문이다. 파월은 “반테러 협력 여부가 미국의 대외관계를 재는 새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새로운 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나라들마저 말하자면 줄 서기를 강요당하는 모양새다. 미국쪽 줄 세우기를 통해 일단 다국적군의 얼개가 짜이면 미군이 우수한 공군력와 해군 함대를 이용해 대대적인 공습에 나설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현지의 험준한 지형으로 미뤄, 폭발력 강한 고성능 탄두의 공대지 미사일이나 토마호크 함대지(艦對地) 미사일로 목표지점과 그 주변을 초토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빈 라덴이나 탈레반 지도부가 숨어 있을 지하벙커에다 91년 걸프전과 99년의 코소보전쟁 때 사용했던 열화 우라늄탄(DU)과 지하 침투용 미사일로 공습할 것이 틀림없다. 현재 미군이 보유중인 GBU15과 GBU28 시스템은 통신위성과 연결된 전자장비의 유도로 1∼2t짜리 침투 탄두를 실은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미국은 첫 번째 폭탄으로 생긴 구멍에 위성 유도를 받아 거푸 폭탄을 투하해 지하벙커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군사기술을 지니고 있다.
최첨단 무기 총동원… 탈레반 화력 수준급
유럽 각국들은 일단 테러세력을 응징하기 위한 전쟁을 선언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에는 머뭇거리고 있다. 전쟁의 대상이 탈레반 정권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아랍권 나라들과의 3차대전 양상으로 번질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가장 절친한 동맹국인 영국도 동맹국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을 동맹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대응한다고 적혀 있는 “나토의 제5조항이 백지수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에 무제한의 자유재량권이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따라서 다국적 연합군 결성은 생각만큼 간단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사 이뤄진다 해도 91년 걸프전 때도 다국적군을 짜는 데 4개월이나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부시 정권의 자세는 적어도 겉으로는 강경해보인다.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이런 강경자세는 탈레반 정권을 압박해 빈 라덴을 붙잡고 전쟁을 피하겠다는 바람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부시 정권이 파키스탄을 중개자로 보낸 17일의 최후통첩에서 탈레반 정권이 빈 라덴을 3일 안에 추방하지 않을 경우 전면적인 보복공격을 당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도 이런 고민의 탈출구 성격을 갖는다. 빈 라덴을 잡는다면, 탈레반 정권과의 ‘모험’에 가까운 전쟁부담에서 벗어날 명분이 생긴다. 문제는 그 사흘이 지나면 어찌 되느냐다. 무력 응징을 바라는 그 많은 유권자들의 시선과 목소리도 의식해야 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미사일 공격과 같은 공중폭격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대목은 그런 공습이 누구를 죽일 것이냐는 점이다. 과연 빈 라덴과 그의 무장세력들만 가려서 타격을 줄 수 있을까.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지금 20년을 넘는 내전에다 최근 몇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뭄으로 최악의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무차별 공격으로 이들만이 희생자가 된다면 부시 행정부의 입장은 더욱 난처하게 될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좀더 신중해야 한다며 부시 행정부의 강경방침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신중론의 가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아직 테러범이 빈 라덴이란 게 뚜렷이 드러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의 지리적 특성상 무력 사용에 따른 효과가 불확실하고 △자칫 보복의 악순환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어쨌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지상군 투입보다는 공중폭격쪽에 더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정치·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탈레반 정권을 넘어뜨리려고 할 것이다. 현재 탈레반 정권은 빈 라덴을 싸고돈 탓에 유엔으로부터 이미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터다. 미국이 이번 테러에 상당부분 책임을 져야 할 탈레반 정권에 국제사회의 제재 동의를 얻어내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의 강경방침에 제동 거는 언론들
탈레반 정권은 아프가니스탄 영토의 95%를 점령하고 있지만, 현재 유엔 의석은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에서의 투표권은 몰락 직전에 있는 부르하누딘 라바니 전 대통령쪽에서 행사하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서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연방(UAE) 3개국뿐이다. 유엔 등 국제외교무대에서 탈레반 정권은 고아나 다름없다.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국제사회에서 제재하기란 식은 죽 먹기란 얘기다. 아마도 미국은 대규모 공습을 가한 뒤 최정예 부대와 최첨단 무기를 동원 빈 라덴 생포에 나설 것이다. 물론 다국적군이 뒤를 받쳐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 단계에서 미군 희생자들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탈레반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탈레반군은 게릴라식 전투로 단련된 3만여명의 정예 군대와 50만에서 100만명 규모의 민병대로 이뤄진다. 보유 무기는 대부분 옛 소련제이며 T-60과 T-55 전차 1천여대가 있다. 무기는 신통치 않아도 이들은 오랜 내전을 치른 경험에다 산악전에 익숙해 미군이든, 연합군이든 공격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미국이 공습과 지상군 투입으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다면 카불에다 친미 정권을 세우고자 할 것이다. 그럴 경우 현재 아프가니스탄 북부 판수르 계곡일대에서 저항중인 북부동맹의 부르하누딘 라바니 정권이 카불에 입성할 가능성이 높다. 라바니 정권은 탈레반과 달리 국제사회에서 정통성을 인정받고 유엔에서 투표권을 행사해왔다. 탈레반은 반군(옛 정부군)이 미국과 함께 공격해올 것에 대비, 이미 테러참사 사흘 뒤부터 북부동맹 거점인 칼라프간 지역에 대한 선제공격에 들어갔다. 반군지도자인 아프메드 샤 마스드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그 다음날인 15일엔 1천여명의 병력과 탱크, 대포를 동원, 마스드의 근거지인 판수르 계곡을 공격했다. 문제는 북부동맹이 군사력에서 탈레반군에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군(또는 다국적군)의 개입이 늦으면 늦을수록 북부동맹의 세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친미 정권을 세운다 해도 문제다. 정부군에서 반군으로 위치가 바뀐 탈레반 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아랍 무장세력으로부터 친미 정권을 지켜내려면 미군이 장기주둔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자칫하면 제2의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탈레반 제압해도 저항은 사라지지 않아
다른 한편으로 아랍의 반미 무장조직들을 확실히 제압하는 것은 미국의 중동 석유이권을 좀더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길로도 이어진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이 시나리오를 그대로 실천에 옮긴다면 세찬 맞바람을 맞을 각오도 해야 한다. 빈 라덴이 직접 관리하고 있는 과격 반미테러조직인 알 카이다와 그 추종자들의 활동거점은 34개국에 이른다. 부시 정권이 이번에 자칫 ‘무리수’를 둘 경우 가뜩이나 독을 품고 있는 이들을 자극해 제2, 제3의 뉴욕 테러참사가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테러 대참사를 계기로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위기관리능력과 전투력, 그리고 지도력이 노골적으로 시험대 위에 오르게 됐다.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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