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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적 결단, 안티패스트푸드 "저임금 착취·지구파괴 말라" 환경운동가들의 맥도날드 반대운동 확산
해가 지지 않는 제국, 맥도날드
하지만 전세계의 맥도날드 매장은 수만 가지의 매뉴얼에 따라 제품공정은 물론 화장실 청소까지 똑같이 돌아간다. 조금이라도 매뉴얼과 다르게 패티나 빵, 아이스크림을 납품하는 회사는 가차없이 거래가 끊긴다. 맛과 서비스의 표준화를 지향하는 맥도날드의 경영전략은 매장을 넘어 도시인의 입맛과 라이프스타일까지 하나로 통일하는 중이다. 표준화는 맥도날드의 탄생과 오늘을 이어주는 총체적 전략이다. 맥도날드는 이렇듯 표준화와 지역화 전략을 바탕으로 커왔다. 1955년 미국 1호점을 열고 1967년 해외에 진출한 맥도날드는 전세계 120개 국가에서 2만8천여개의 매장을 열고 있다. 매일 다섯개의 점포가 생기며 그중 네개는 해외 점포다. 터키에서도 독일에서도 타히티에서도 어디에서든 맥도날드를 먹는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된 것이다. 황금색 아치가 맞붙어 있는 맥도날드 로고는 십자가 다음으로 세계시민에게 익숙한 상징물이다. 지난해 10월16일 오후 5시 서울 홍익대 앞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는 아주 낯선 풍경이 연출됐다. 대여섯명의 젊은이들이 “지구를 파괴하는 맥도날드, 이래도 먹을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이 날은 유엔이 정한 세계 식량의 날이자 16번째 맞는 맥도날드 반대행동의 날. 한국아나키스트네트워크 회원과 홍익대 앞 펑크밴드 멤버인 이들은 길가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었다. 유인물에는 맥도날드가 제3세계의 빈곤을 가중시키고, 건강에 해로운 정크푸드이며,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착취하고, 지구환경을 파괴하며, 동물을 잔인하게 살육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1999년 한해에만 23개 국가, 345개 도시에서 425건의 맥도날드 반대행동이 벌어졌으며, 해가 갈수록 전세계로 확산되는 추세다. 패스트푸드를 이야기할 때 맥도날드가 제일먼저 등장하는 이유는 맥도날드의 전략이 패스트푸드의 세계화원리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를 지은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전세계에 확산되는 현상을 ‘맥도날드화’로 파악했고, 벤자민 바버는 맥도날드화의 결과를 ‘맥월드’라고 이름붙였다.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화에 대항해 가장 끈질기게 이어지는 싸움은 런던 그린피스 소속 환경운동가 두명이 12년째 벌이는 법정투쟁이다. 1986년 런던 그린피스 운동가들은 맥도날드를 시위대상으로 정했다. 이들은 McDollars(돈), McGreedy(탐욕), McCancer(암), McMurder(살인), McProfit(이윤), McGarbage(쓰레기)라는 슬로건이 적힌 팸플릿을 4년 동안 뿌렸다. 1990년 맥도날드는 팸플릿의 내용이 모두 거짓이라며 다섯명의 회원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하지만 맥도날드의 고소는 이들의 활동에 도리어 날개를 달아주었다. 과도한 소송비는 물론 변호사 비용도 감당할 수 없었던 이들이 스스로를 변론하기 시작하자 이들의 활동 하나하나는 전세계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법정에서는 맥도날드의 노동, 마케팅, 환경, 영양, 식품안전, 동물학대 등이 모두 조사대상에 올랐다. 맥도날드로서는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된 것이다. 1999년 이 싸움을 하루 속히 접고 싶었던 맥도날드는 배상금을 받지 않고, 27개국의 언어로 작성된 인쇄물 배포를 막지 않겠다고 발표했지만, 두 사람은 멈추지 않고 런던 그린피스를 불법 감시한 스파이 행위 등에 책임을 물어 맥도날드와 영국 경찰공무원까지 법정에 세웠다(에릭 슐로서의 <패스트푸드의 제국> 참고).
나와 우리의 실존을 건 ‘중대한 결단’
조지 리처는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의 특성을 네 가지로 나누었다.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그리고 통제이다. 차를 탄 채 음식을 산 뒤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식사방법은 바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현대인에게 식생활의 혁명과도 같은 것이다. 빅맥, 라지프라이, 더블치즈와퍼처럼 판매되는 제품의 크기와 비용, 서비스 속도에 대해 사람들은 미리 계산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사진인화, 안경맞춤 등 다른 업종에서도 서비스의 속도와 양을 미리 계산하는 습관을 지니게 됐다. 낯선 곳에 갔을 때 사람들은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 제품과 서비스가 동일할 것이라 예측하고 서슴지 않고 선택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매장에 들어설 때부터 나올 때까지 세련된 분위기와 친근한 종업원의 미소를 접하지만 동시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제한된 메뉴, 줄서서 기다리기, 불편한 의자, 식사 뒤 뒷정리까지 고도의 통제를 받는다. 이런 네 가지 특성은 매장을 찾는 손님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저임금 단순노동직인 맥도날드 매장 종업원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가장 효율적이고 계산가능하고 예측가능하고 통제하기 쉬운 시스템으로 채용되고 일이 나눠지는 것이다. 덕분에 영어권 나라에서 맥도날드의 맥(Mc)은 신속함과 효율성의 별칭이 됐다. 맥치과, 맥닥터, 맥어린이집, 맥훈련장(경주마 훈련장), 심지어 맥신문까지 생겨났다. 이른바 ‘맥도날드화’이다. 하지만 맥도날드화의 마지막 특성은 ‘합리성의 비합리성’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경남대 사회학과 김종덕 교수는 “자연환경에 대한 광범위한 파괴와 함께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을 맥도날드화의 비합리성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가장 비인간적인 결과는 사고 파는 사람 모두 컨베이어벨트의 일부처럼 돼버린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만들고 사고 계산하는 행위는 물론 먹고 마시고 즐기는 행위마저 정해진 룰에 따라 이뤄지는 것은 로봇인간을 연상시킨다는 이야기다. <패스트푸드의 제국>을 지은 에릭 슐로서는 “음식은 영화처럼 감상되는 것도, 청바지처럼 입어 경험하는 것도, 책처럼 읽히는 것도, 음악처럼 연주되는 것도 아닌, 사람들의 몸에 흡수돼 그 일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무얼 먹는지를 알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맞힐 수 있다는 옛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어쩌면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먹고 안 먹고는 맛과 멋을 구매하고 즐기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실존을 건 모험이자 관계의 본질을 뒤바꿀 수 있는 ‘중대한 결단’인지 모른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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