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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동네에도 버거킹 있니? 미끼상품과 키즈마케팅의 강렬한 유혹… 아이들은 정크푸드에 어떻게 중독돼 가는가
이미지가 포만감을 채워준다
건축평론가 정기영씨는 “기호의 힘, 더 엄밀히 말하면 미국을 상징하는 기호의 힘”이라고 풀이한다. 반세기 동안 유포되어온 이데올로기와 이미지 덕분에, 미국적인 것은 풍요와 세련됨, 안전, 청결 등을 상징한다. 패스트푸드점은 우리 뇌 속에 내재된 기호를 자극하고, 우리는 주술에 걸린다. 그래서 정씨는 “패스트푸드점은 실물을 팔기 전에 이미지를 먼저 판다”고 요약한다. 더구나 실물보다 과장된 크기로, 스펙터클하게 내걸린 햄버거 간판은 청결한 느낌에 포만감까지 더해준다. 실물은 비록 초라하더라도, 이미지만은 그 반대인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미국식 합리성은 일목요연한 공간배치에 의해 재현된다. 우선 카운터 뒤에 내걸린 메뉴판은 무엇을 살 것인지를 명료한 이미지로 드러낸다. 음식을 사서 돌아서면 어디에 앉을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먹고 나면 내부가 드러나지 않도록 깔끔하게 디자인된 쓰레기통이 기다린다.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한끼 식사를 불편함 없이 해결하도록 설계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문화평론가 차선아씨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는 것은 미국의 일부를 베어무는 경험”에 비유한다. 전세계를 장악한 ‘힘센 미국적 기호’가 바탕이 되었지만, 90년대 들어 급속하게 다국적 햄버거 체인점이 확산된 데는 대중매체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90년대 내내 변주된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패스트푸드점이 끊임없이 배경으로 등장했고, 때마침 창간된 <에꼴> <쎄시> 등의 10대 타깃의 잡지도 패스트푸드 열풍에 한몫 거들었다. 다국적 햄버거 체인들도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휴대폰 사업자와의 연계와 할인카드가 10대를 사로잡기 위한 대표적 마케팅으로 떠올랐다. 패스트푸드업계의 주요 타깃이 휴대폰시장의 10대 타깃과 일치하는 탓이다. 롯데리아는 SK텔레콤의 TTL카드와 연계해 할인혜택을 주고, 맥도날드는 LG텔레콤의 카이카드와 이어져 있다. 이뿐 아니라 각 체인점은 맥플러스카드 등 자체 카드를 만들어 구입할 때마다 포인트 적립 혜택을 준다. 하지만 ‘알뜰하게’ 할인카드를 활용할수록, 청소년들은 패스트푸드 체인의 ‘마케팅 전략’에 포섭되고 만다. 이런 소비패턴을 통해 햄버거에 ‘중독된’ 청소년들에게 패스트푸드점은 단순히 음식을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다. 또래집단의 약속장소이자 모임공간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전 세대가 배를 채우고 수다를 떨기 위해 떡볶이집을 찾듯, 요즘 세대는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한다. 음식문화평론가 차선아씨는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나이에 패스트푸드점이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맥도날드, 장난감으로 재미보다
주요 타깃이었던 10대들에게 햄버거가 ‘일상’으로 굳어지자, 각 패스트푸드 체인들은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이때 나온 전략이 ‘미끼상품’과 ‘키즈(Kids) 마케팅’이다. 특히 9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맥도날드는 98년 여름, 3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미끼상품으로 내놓으며 가격파괴에 앞장섰다. 300원짜리 아이스크림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맥도날드의 문턱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가고 싶지만 왠지 부담스러운 곳”이었던 맥도날드는 “누구나 가서 즐기는 곳”으로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롯데리아와 버거킹이 뒤따르며 할인경쟁은 치열해졌다. 외국에 비해 유난히 치열한 한국의 할인경쟁은 또다른 맥락을 지니고 있다.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김종엽 교수는 “패스트푸드점의 이용 형태가 서구와 다르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원래 미국에서 패스트푸드점은 쇼핑루트를 따라 발달했다. 근교도시가 발달한 미국에서, 자동차를 타고 쇼핑몰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러 한끼를 해결하는 곳이 패스트푸드점이었다. 그러나 지리적 여건이 다른 한국에서는 10대의 동선에 맞춰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섰다. 자연히 대도시의 중심가에 밀집될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는 “대도시 내부에 패스트푸드점이 밀집되다보니 과다한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미끼상품 전략뿐 아니라 키즈 마케팅도 맥도날드가 선점했다. 어린이 고객을 타깃으로 한 맥도날드의 주력상품은 ‘해피밀 토이’. 치즈버거, 맥너겟 등에 장난감을 끼워 파는 것이다. 장난감에 매혹된 어린이는 가장 확실한 미래의 고객일 뿐 아니라, 바로 오늘 엄마, 아빠의 손을 패스트푸드 매장으로 끄는 핵심 고리다. 굳이 어른들에게 마케팅비용을 쏟아붓지 않아도, 어린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시장 확대가 달성되는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다는 맥도날드의 이미지는 ‘가족가치’를 내세운 광고에 의해 뒷받침된다. ‘행복한 사람들의 맥도날드’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맥도날드 광고비는 키즈마케팅과 미끼상품 전략이 본격화된 98년과 99년 사이에 급증했다(<표> 참조).
가족을 내세운 맥도날드의 전략에 롯데리아는 불고기버거, 김치버거 등을 내놓으며 한국적 이미지로 맞서고 있고, 버거킹은 가장 미국적인 이미지를 유포한다. 버거킹 매장의 컨셉은 ‘1950년대 미국’. 매장에 들어서면 제임스 딘과 마릴린 먼로의 흑백사진이 눈에 들어오고, “I like burgerking”으로 끝나는 로큰롤이 귓가에 울린다. 좀 더 미국적인 이미지를 통해 ‘버거킹 마니아’를 호명하는 전략이다. 버거킹의 주타깃은 20대 초·중반의 여대생과 직장여성. 버거킹이 연계한 카드를 봐도 타깃의 차별성은 드러난다. 롯데리아와 맥도날드가 10대 휴대폰 카드와 제휴한 반면, 버거킹은 20대 이상이 주로 사용하는 OK캐쉬백 카드와 연계돼 있다. 최근에는 LG캐피털과 연계해 ‘버거킹 패밀리카드’도 내놓았다.
강남의 버거킹, 지방의 롯데리아
공격적인 마케팅에 따라 90년대 내내 패스트푸드시장은 20% 이상의 성장세를 지속했고, 매장도 서울에서 지방으로, 중심가에서 변두리로 확산됐다. 매장의 확산은 그 지역의 공간적 성격을 드러내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디자인문화평론가 박해천씨는 “패스프푸드를 먹지 못하는 것은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우리 동네에 없어서’”라며 “패스트푸드점이 있느냐 없느냐, 어떤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서 있느냐는 그 지역의 공간계급적인 성격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강남의 버거킹‘과 ‘지방에 많은 롯데리아’는 이를 상징한다. 버거킹은 104개 매장 중 66개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 반면, 롯데리아는 686개 매장 중 150개만이 서울에 위치해 있다. 버거킹의 고급 이미지와 대비되는 롯데리아의 대중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패스트푸드점의 유입경로도 일정한 지형도를 그리며 정해져 있다. 압구정동이나 홍대에서 대학로나 신촌으로, 다시 서울의 변두리를 거쳐 지방도시로 확산되는 루트다. 서울의 사당동에는 90년대 초반부터 롯데리아가 있었다. 그 다음 90년대 말 KFC가 들어섰다. 뒤를 이은 것은 맥도날드. 버거킹은 ‘아직’ 없다. 이런 맥락 탓에 “우리 동네에 맥도날드가 생겼다”는 말이 자부심의 표현이 될 수 있고, “너희 동네에는 버거킹도 없냐”는 말이 비아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휘황한 패스트푸드점 간판이 즐비한 거리에서 아이들은 정크푸드에 중독돼 간다. <다시 밥상을 차리자>의 저자 김수현씨는 “패스트푸드에 대한 환상이 부모들에 의해 재생산된다”고 어른들의 책임을 지적한다. 패스트푸드점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 서구적 식생활로의 업그레이드라고 여기는 풍토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어릴 때는 장난감에 현혹돼 햄버거에 맛들이고, 청소년기에는 시간당 임금 2천원에도 못 미치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결혼해서는 아이 손을 끌고 패스트푸드 가게로 향하는 일상. 패스트푸드 제국의 식민지에 사는 원주민의 라이프사이클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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