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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배고픈 자민련, 거지될라 실리는 별로 없는 상처투성이 승리… 정치권에 몰아닥칠 후폭풍의 강도는
급속한 레임덕으로 연결될 것인가
3일 오후 임 장관 해임안 가결 뒤 정국은 가파르게 요동치고 있다. 장재식·배기선·송석찬 의원이 표결 직후 자민련을 탈당했고, 자민련은 비교섭단체의 설움을 다시 맛보게 됐다. 자민련 몫인 이한동 총리, 김용채 건설교통부 장관 등도 잇따라 사임 의사를 내비쳤다. DJP공조와 공동정권이 사실상 붕괴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더 큰 후폭풍이 정치권 전체를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해임안 처리 이후 여야 모두 정국주도권과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민주당 등 여권은 엄청난 상처와 부담을 떠안게 됐다. 당장 ‘햇볕정책’에 난관이 예상된다. DJ(김대중)는 신속하게 후임자를 임명해 손실을 최대한 줄일 방침이다. 국민에게 햇볕정책 지속의지도 거듭 천명했다. 하지만 상처난 햇볕정책을 향한 보수세력의 공격은 더 거세지고, DJ 집권후반 개혁정책 전반으로 공세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더욱이 여권의 공언대로 자민련과 공조가 파기될 경우 중대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그동안 싫든 좋든 자민련과 공조를 무기로 정국운영 주도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민주당은 소수당이 됐다. 앞으로 김 대통령의 통치력 한계가 드러나고 급속한 레임덕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크다. 당장 올 정기국회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이완구 자민련 총무는 벌써 “평양축전 파문, 항공안전 2등급 추락 등 정부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실책을 철저히 따지겠다. 또 언론사 세무조사 국정조사는 증인선정 등에서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여권은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다양한 돌파구를 구상중이다. 일단 여론에 직접 호소하겠다는 자세다. 이상수 민주당 총무는 “소수여당으로서 다수 야당을 이끌고 가기 위해선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다수를 압박하는 것이 유일한 수단이다.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출신 한 여권 인사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구는 국회와 언론인데, 언론은 이미 등돌린 지 오래고 국회도 만만찮은 상황”이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여권 내부에서 논의중인 선택은 3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먼저 한나라당과의 협조 아래 이른바 ‘상생의 정치’를 펼치면서 여론에 감동을 주는 방안이다. 민주당 한 핵심당직자는 “당에는 오래 전부터 자민련에 얽매여 정체성을 잃는 것보다 이회창 총재를 상대로 협조를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줄 것은 주는 상생의 정치를 벌이는 게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이제 더 미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한나라당의 협조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이 총재의 한 측근은 “상생의 정치는 정치혐오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계속 그것을 요구해왔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앞날이 순탄치는 않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모두 대통령선거에 미칠 손익을 계산해야 한다. 이회창 총재는 특히 당내 보수파의 저항을 견뎌야 한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협조의 대가로 여권에 이 총재에 대한 위상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반대급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상생의 정치는 여권을 옥죄는 더 큰 족쇄로 작용할 위험도 있다.
민주당 정면돌파?
아예 ‘정면돌파’하자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이번 사태를 지렛대로 정치지형을 개혁보수의 대결구도로 재편하자는 게 그 핵심이다. 민주당 한 고위관계자는 “어차피 지금까지 정국운영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 아예 정치판을 개혁구도로 몰고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면돌파론자들은 승산이 있다고 외친다. 자민련에 임대됐던 장재식 의원 등이 탈당하면서 이미 자민련은 교섭단체 자격을 상실했고, 정치적 유동성은 극대화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사태는 통일문제를 둘러싼 민주당과 자민련의 보혁갈등 성격을 띠고 있다. 민주당이 개혁노선을 명확히 내걸고 개혁대 보수로 전선을 명확히 할 경우 파괴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 이미 여야 개혁성향 의원과 시민·사회 대표인사들의 모임인 ‘화해전진포럼’에서 “남북화해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형태의 신당 창당”이 논의되는 등 여건도 성숙돼 있다. 정면돌파론자들은 여권이 제대로만 움직이면 한나라당 내 개혁성향 의원들도 견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레임덕이 가시화된 소수정권 수장인 DJ가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반발에 맞서면서 정계개편을 끝까지 추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자민련과 공조의 끈을 계속 유지하자는 쪽도 일부 남아 있다. 이들은 레임덕 가시화에 따른 현실적 고통과 자민련을 몰아내는 모양새를 보일 경우 JP에게 재기의 명분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 등을 공조지속 명분으로 내세운다. 이들은 특히 올 정기국회를 원만하게 넘겨야만 내년 대선판을 유리하게 짤 역량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방안은 자민련에 굴복해 끌려다닌다는 인상을 줘 사실상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자민련은 이번 표결로 힘을 과시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실리는 별로 없는 상처뿐인 승리를 거뒀다. 5% 미만의 낮은 정당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자민련은 DJP공조의 대가로 장관직 등 ‘과실’을 톡톡히 챙겼다. 그러나 이제 권력의 곁불도 쬐기 어렵게 됐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뿌리인 이른바 ‘JP 대망론’도 물건너갔다. 자민련에 남은 것은 비교섭단체로 다시 춥고 배고픈 현실을 견디며 홀로 서야 한다는 엄혹한 현실뿐이다. 그러나 비교섭단체로 대선이란 대격변을 넘고, 2004년 총선 때까지 당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동안 JP는 공동정권이 보장한 과실을 무기로 자민련을 결속시켰다. 하지만 과실은 사라졌다. 춥고 배고픈 현실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각 당의 자민련 흔들기가 본격화될 경우 내분에 휩싸일 수 있다. 이한동 총리가 “공조지속”을 내세우며 해임안 표결에 불참한 것은 그 균열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JP가 “공조와 관련해 어떤 말도 한 적이 없다”며 당혹스러워한 것이나, 표결 직후 자민련이 “해임안 가결은 임 장관과 민주당의 오판에 따른 실책”이라고 책임을 떠넘긴 것은 이런 속사정을 반영한다. 들판으로 내몰린 자민련의 선택폭은 그리 넓지 않다. 자민련은 일단 공조지속을 요구하며 민주당을 압박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하다. 공동정권을 창출한 만큼 해임안 표결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끝날 때까지 자민련은 지분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JP는 표결 직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우리는 공조를 했고, 유종지미를 거두게 하기 위해 공조는 안 깬다”고 거듭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여권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아주 적다. DJ는 이번 사태에서 JP를 용도폐기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더욱이 올 정기국회만 넘기면 대선 정국이다. 더욱이 원내 다수의석을 발판으로 야당과 경쟁해야 할 필요성은 적어진다. 표결 직후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이 “DJP공조는 사실상 끝났다고 보는 게 옳다”고 말한 것은 여권의 이런 판단을 대변해 준다. 뒤늦게 DJ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버티는 듯한 JP에 대한 비난여론도 자민련한테는 부담스럽다. 자민련이 선택 가능한 다른 활로는 이른바 ‘한-자 동맹’이다. JP는 이미 야당과 “선택적 공조”를 언급했고, 이번 표결로 그 공조를 구체화했다. 이회창 총재도 “자민련이 우리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우호적 몸짓을 보이고 있다. 자민련이 살아남으려면 교섭단체 요건완화라는 확실한 대가를 받아내야 한다.
한나라당과의 평화체제 구축도 가시밭길
자민련과 관계설정은 더 곤혹스런 대목이다. 안정적 정국주도권 장악을 위해 자민련과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총재가 충청권을 놓고 경쟁하는 JP와 지속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또 수구적 이미지의 JP와 공조하는 모습이 궁극적으로 대선에서 도움이 될지도 불분명하다. 자민련의 교섭단체 요건완화 요구는 더 큰 딜레마다. 자민련과 협조를 위해서는 이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그러나 이 총재가 말을 바꿔야 하고, 자민련 요구대로 교섭단체 요건을 10석으로 낮출 경우 비주류의 운신폭을 넓혀줄 수 있다. 개혁성향 의원과 박근혜 부총재를 비롯한 대구·경북의원들이 최악의 경우에 딴살림을 차릴 수 있다. 이 총재의 한 측근은 “진지하게 검토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은 임동원 장관 해임 표결에 따른 후폭풍 속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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