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섹션 : 커버스토리 | 등록 2001.08.08(수) 제37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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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피임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 고발을 뚫고 피임교육 펼친 마거릿 생어… 1965년에 법원서 인정받아
어느 시대에나 피임은 중요한 과제였다. 옛 문헌들은 고대에는 독특한 성분이 들어 있는 나무열매를 먹거나 풀을 섞어 성기에 발라 피임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각 지역에서 저마다의 문화적 특성에 따라 각종 피임법을 사용했고 중세까지는 약초를 이용한 배란억제 방법이 가장 널리 쓰였다. 이와 함께 오늘날의 콘돔 대용품도 사용되곤 했다. 동물창자나 물고기 껍질, 드물게 옷감을 쓰기도 했다. <피임의 역사>(책세상 펴냄)를 쓴 미국의 역사학자 앵거스 맥래런에 따르면, 서구의 사회과학자들이 꼽는 ‘피임 혁명’은 두 가지다. 18∼19세기에 보편화되기 시작한 중절성교(질외사정) 방법과, 1960년 미국에서 개발된 경구피임약 ‘에노비스10’의 상용화이다. 앞의 것은 자연적 행위인 성교에 인위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신적 혁명을 낳았고, 뒤의 경우는 여성들이 질에 기구를 삽입하는 불편에서 벗어나 출산과 성생활을 ‘실질적으로’ 분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사회적 혁명으로 평가받는다. 의료 영역에서 피임약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00년대 들어서였다. 유럽의 연구가들은 여성호르몬 조절을 원리로 수십년간 연구를 했고, 먹는 피임약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는 미국의 산아제한운동가 마거릿 생어였다. 1910년대 뉴욕시의 한 작은 산부인과병원 간호사로 일하던 생어는 가난과 피임에 대한 무지함으로 몸을 망치는 여성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반복되는 유산과 낙태로 죽어가거나 “35살 이전에 폐물이 되는” 여성들의 삶은 악순환 그 자체였다. 생어의 어머니 역시 19번의 임신과 11번의 출산으로 49살에 요절했다. 생어는 간호사를 그만둔 뒤 피임교육과 산아제한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악덕근절협회 회장인 앤서니 콤스톡이 만든 검열법(일명 콤스톡법)이 맹위를 떨치고 있을 때였다. 피임에 대해서는 말도 못 꺼낼 분위기였다. 성교육과 피임교육을 중심으로 한 생어의 글은 외설물로 분류돼 출판과 우편배달이 금지됐고 그는 풍속교란죄로 고발까지 당한다. 그러나 생어는 1914년 전국산아제한연맹 결성을 시작으로 구속을 불사한 활동을 펼친다. 그의 법정투쟁은 여론을 움직였고 재판부는 “성병치료와 예방을 위해 여성에게 피임기구를 줄 수 있는 권한을 의사에게 준다”는 판결을 냈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피임의 필요성을 최초로 공식 인정한 판결이었다. 종교계의 반발에도 산아제한 연구소들은 전국 각지에 속속들이 생겨났고 곧 불어닥친 경제불황과 함께 출산율은 곤두박질쳤다. 대중은 빈곤에 대한 공포라는 가장 구체적인 이유로 피임을 선택했고, 미국 정부는 복지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산아제한 연구소의 활동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전쟁 기간중 인구가 곧 국력이라는 국가정책에 따라 그의 활동은 다시 발목이 잡혔으나, 1950년대에 접어들어 세계적으로 인구과잉문제가 대두하면서 활동을 정력적으로 펼칠 수 있었다. 1952년 생어는 국제가족계획협회의 초대회장이 돼 안전하고 실용적인 피임약 개발에 대한 지원을 서둘렀다. 그 결과 최초의 먹는 피임약 ‘에노비스10’이 탄생한 것이다. 먹는 피임약들은 그뒤로 지금까지 여성호르몬 비율을 배란억제를 위한 최소한의 용량으로 줄여오고 있다. 1965년 미국 법원은 드디어 피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때까지도 여성의 임신하지 않을 권리, 즉 피임권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어머니가 될 것인가 되지 않을 것인가를 뜻대로 선택할 수 있기 전에는 어떤 여성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마거릿 생어는 이듬해인 1966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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