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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학아세’에서 찾는 희망 실천을 추구하는 지식인의 지식인 비판… 행동하는 지성을 위하여
그러던 그가 어느 국영기업에서 묵직한 의자를 하나 차지하더니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주장하던 민주적 원칙은 온데간데없이 자신의 거취와 관계되는 일이라면 편법을 동원해서까지 처리하는 무리수를 범하기도 했고, 자신의 그런 이기적인 행동을 옹호하기 위해 온갖 궤변을 늘어놓는 일이 흔해졌다. 공적 영역에서 그가 그동안 주장했던 ‘이론’과 사적 영역에서 실제로 보여준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는 너무나 큰 것이었다. 정권이 바뀌고 어느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그는 아예 ‘반체제 인사’로 나서기도 했다. 새 정부의 정책이 평소에 그가 주장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자신을 몰아낸 정권의 처사가 괘씸해서인지 그는 노골적으로 이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더이상 정교한 이론을 내세울 필요조차 없었다. 북받치는 감정만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정부에서 내놓는 안건마다 욕설로 평가를 대신하곤 했다. 그에게 개혁이란 자신의 이익이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일이 단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요즘 세태만의 일도 아니다. 이탈리아의 지식인 안토니오 그람시도 제 잇속 차리기에 급급한 지식인과 사회적 약자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지식인을 구분해서 부르기도 했다. 그람시에 따르면, 변호사·신문사 편집장·동네 의사와 약사 등은 ‘전통적’인 지식인이 분명하지만, 그들의 행동양식은 대체로 체제의 변화에 커다란 거부감을 느끼는 부류라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주로 지배그룹의 이익을 옹호하지만, 간혹 약자와 강자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전통 지식인에게서 사회변혁을 위한 역할을 기대할 수 없었던 그람시는 또다른 유형의 지식인에 주목했다. 세상을 좀더 민주적인 사회로 바꾸는 데 지식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람시는 지식인들이 해야만 하는 일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보살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유기적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이 ‘유기적 지식인’들은 지배그룹과 ‘전통 지식인’들이 만들어놓은 불평등한 구조를 해체하고 사회를 새롭게 건설하는 데 직접 나서는 행동대원인 셈이다. 그러나 행동하는 지식인이란 말이 쉽지 실제 주변에서 찾아보기 무척이나 힘든 지식인상이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가치중립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현상을 관조하는 옵서버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와 중립적 묘사를 객관적 지식으로 제시하면서 또는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면서 지식을 거래하는 ‘지식상인’으로 전락한 터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지식을 ‘사회과학’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하고, 사회의 발전과 안녕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진리라고 주장한다.
미셸 푸코는 그러나 지식이 세상의 ‘진리’라기보다는 약자들을 옭아매는 기존의 권력관계를 정당화시켜주는 감시와 통제의 기능을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식은 힘과 서로 상승효과를 발휘해 급기야는 사회제도를 유지하는 전략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푸코의 눈에 지식인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지식인이란 고작해야 ‘사회적 픽션’을 생산하는 패거리요, 전략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푸코는 일찌감치 간파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과연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이 현대에도 유효한 개념인지, 아니면 푸코의 주장대로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지식인이 나설 수 있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람시가 유기적 지식인을 강조한 나머지 전통 지식인의 역할을 과소평가한 반면, 푸코는 지식인의 공적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가 반쪽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통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식인은 모름지기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우선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바로 프랑스의 피에르 부르디외의 주장이다. 상업적인 언론과 권력이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지식인들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즉, 지식인들이 지식 생산자로서 기능하면서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기반을 갖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부르디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심사 중 하나는 지식인 세계를 위협하는 독재적 힘과 그들의 위선과 기만을 폭로하는 일이다. 결국 이들 세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지식인상은 이론보다는 실천을 중시하고, 거대 담론을 표방하기보다는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살펴주면서, 동시에 지식인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하는, 독립적인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푸코가 우려한 대로 지식인은 자본과 권력의 달콤한 유혹을 거절하지 못하고 지식을 매명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지만 한국 상황에서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곡학아세’하는 무리들 속에서 실천하는 지식인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민주사회로의 전진은 그래서 희망적이다.
조흡/ 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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