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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가 언젯적 동아냐! 조선일보와는 똑같지 않되 ‘색깔없는 3등신문’퇴락… 일부 기자들에게서 작은 희망을 본다
매일 쉬어야 되겠네?
광고는 하반기 들어 이렇게 바뀐다. 공항 활주로에서 항공기가 이륙 직전 갑자기 멈춰선다. 잠시 뒤 항공기 문이 열리고 신문 한부가 안으로 던져진다. 여승무원으로부터 <동아일보>를 받아든 기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신문을 읽은 뒤 비로소 항공기를 이륙시킨다. 마지막 카피는 “놓칠 수 없는 정보가 있습니다”이다. 항공기 이륙시간까지 연기시키는 소중한 정보란 도대체 뭘까. 다시 후속편은 항공기가 목적지 공항에 도착했는데도 승객들이 내리지 않는 장면을 설정했다. “왜 안 내리는 거죠?” 바깥에서 초조한 표정의 항공사 직원이 무전기로 묻는다. 이내 기내가 비춰진다. 기내의 그 많은 승객들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동아일보> 읽기에 여념이 없다. 이번에도 “놓칠 수 없는 정보가 있습니다”로 끝을 맺는다. 안타깝게도 광고·마케팅 전문가들은 이 세편을 “실패한 광고”라고 평가한다. 왜일까. “시청자들의 공감을 전혀 얻어내지 못했다. 첫 번째 광고는 ‘매일 쉬어야 되겠네’라는 냉소적 반응을 얻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광고는 ‘동아의 정보가 그렇게 대단했다니 정말 웃기는 노릇’이라는 반응이었다.” 한 전문가는 “결국 항공기 후속편 광고는 예산도 다 못 쓰고 며칠 만에 거둬들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올 초 독자 이미지 조사를 해보니 조선은 권위와 가장 많이 팔린다는 이미지가 있고, 중앙은 정보가 많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동아는 양쪽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전혀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동아는 광고에서 자신의 특징을 설명하지 못한 채 신문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이다.” 이 전문가는 “광고가 컨셉도 없이 널을 뛴 건 제품 이미지가 뚜렷하지 못한 탓이었다”고 평가했다. 어쩌면 이건 처음부터 광고 얘기가 아니라 신문 얘기였는지 모른다. ‘광고의 실패가 아닌 신문의 실패.’ 광고에다 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아니 뭐라고 꼭 집어 내세울 만한 말이 없는, 그래서 하던 광고조차 슬그머니 거둬들여야 하는 동아일보의 슬픈 자화상이 이 광고 마케팅 실패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그러나 동아일보에게 현실세계는 광고세계보다 훨씬 엄혹하다. ‘조·중·동’은 이제 고유명사나 다름없다. 스스로 ‘빅3’를 자처하는 이들 신문은 ‘조·중·동’이라는 외부의 표현을 ‘음모’나 ‘적대감’으로 이해한다. 더구나 동아일보의 불편한 마음은 좀더 각별하다. ‘동·조·중’도 ‘조·동·중’도 아닌 ‘조·중·동’은, 동아일보 처지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들은 ‘대한민국 대표신문’인가
동아일보는 자신을 가리켜 더는 ‘최고 신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이젠 ‘대한민국 대표 신문’이다. 동아일보가 ‘대표(적)’라 함은 1위에서 3위까지를 가리킨다. 한국광고주협회의 ‘2001년 인쇄매체 수용자조사’에 따르면, 동아일보의 시장점유율(10.1%)은 조선일보(13.7%), 중앙일보(13.2%)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1·2위의 격차와 비교할 때 아주 확실한 ‘3등 신문’이다. 더욱 중요한 건 치고 올라가는 3위가 아니라 꺾인 3위라는 점이다. 시장점유율을 놓고 볼 때, 1위와 3위 사이는 3위와 4위 사이보다 훨씬 가까운 게 사실이다. 동아일보가 스스로 이름 붙인 ‘대표 신문’은 그런 의미에서 적절하다. 그렇더라도 동아일보에 ‘대표(적)’는 결코 명예롭지 못한, 씁쓸한 ‘자위’일 뿐이다. 더구나 이마저도 불안하다. 하강세는 가속화하거나, 적어도 지속되고 있다. 1위에서 밀려난 지 오래지 않아 다시 2위에서도 밀려났듯이, 머지않아 ‘조·중·동’에서 탈락해 ‘대표 신문’ 간판마저 떼어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사람들은 동아일보에 서슴없이 ‘위기’라는 진단을 내린다. 위기는 시장에서만 찾아온 게 아니다. 좀더 심각한 위기는 신문의 본래적 기능에서도 동아일보가 꾸준히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간 매체비평지 <미디어오늘>이 지난 95년 창간 기념으로 전국의 언론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중앙일간지와 TV방송 3사 종합평가를 할 때만 해도 동아일보는 좋았다. 당당한 종합순위 1위. 이 조사는 시장점유율과는 별개로, 신문의 품질을 평가한다는 취지로 이뤄졌다. 평가항목은 공정성, 정확성, 영향력 등이었다. 이 조사에서 조선일보는 영향력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공정성에서 5위로 밀려, 정확성 1위와 영향력·공정성 모두 2위를 차지한 동아일보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다음해 조사에서는 순서가 서로 바뀌고 말았다. 조선의 선전이 아니라 동아의 졸전이었다. 동아는 정확성에서도 3위로 밀렸다. 이어 97년 조사에서 동아는 다시 중앙에 종합 2위 자리를 내주고 3위로 주저앉았다. 특히 동아는 그해 조사에서 처음으로 영향력에서도 중앙에 밀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한겨레는 공정성 3년 연속 1위, 정확성 2년 연속 1위, 영향력 4∼5위를 기록했다.
김병관의 돌출발언과 지면의 흥분
“독자 조사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건 동아일보에는 더이상 정체성, 즉 색깔이 없다는 것이다.” 광고·마케팅 전문가는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한마디로 갈지자를 걷고 있는 지면 논조”라고 지목하며 “동아일보 지면은 총체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의 말대로 요즘 동아일보의 지면은 꼼꼼히 살피지 않더라도 요철과 기복을 심하게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런 경향은 세무조사 이후 두드러졌다. 7월14일 김병관 명예회장 부인 안경희씨 사망 직후 동아일보의 지면은 비교적 차분하게 시작됐다. 고인의 사망소식과 함께, 고인이 평소 신경쇠약증이 있었으나 언론사 세무조사 뒤로 증세가 악화됐다는 내용만을 짤막하지만 격식에 맞게 보도했다. 흥분한 것은 오히려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이었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지면은 며칠 뒤 갑자기 격해졌다. 세무조사 결과 발표 뒤 가장 격렬한 보도를 해왔던 조선일보를 무안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7월17일치 1면 통사설과 18일치 1면 톱기사는 신문사(史)에 남을 하나의 ‘파격’이었다. 제헌절에 맞춰 쓴 ‘제헌정신 바로 세우기 위해 싸울 터’라는 비장한 제목의 통사설은 “현 정권이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로 퇴행했다”고 맹비난하며 “제헌정신을 훼손시키는 세력에 맞서 과감하게 싸우겠다”고 끝을 맺었다. 사실상 대정부 선전포고인 셈이다. 18일치에서는 미국 하원의원 8명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국 언론자유의 억압을 우려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을 1면 톱기사로 다루며 무려 5개 면에 걸쳐 관련 내용과 해설을 곁들여 자세히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1면에 간략하게 사실보도를 한 것과 견줘봐도, 동아일보의 지면이 이틀째 흥분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강경기조가 계속 이어질지 돌출행동으로 그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어쨌든 눈여겨볼 일은 지면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잠잠해졌다는 점이다. 차분하던 지면이 돌출적으로 흥분한 시점이 김병관 명예회장의 ‘돌출발언’이 있고 난 직후라는 점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김 명예회장은 16일 부인 빈소를 찾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를 만난 자리에서 “안정남 청장이 6월9일 만나자고 해서 만난 뒤 ‘(대통령께) 내 말을 직보해달라’고 했더니 안 청장이 ‘나는 직보할 입장이 안 되니 박지원 수석에게 말씀드리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동아 논객들은 해부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날 발언은 김 명예회장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안 청장이 곧바로 “동아일보쪽에서 먼저 만나자고 요청했고, 약속장소도 그쪽에서 결정해 알려줬다”고 반박했다. 김 명예회장의 돌출발언과 동아일보의 돌출지면이 서로 조응한 것은 양자의 ‘비극적 만남’을 암시한다. 안경희씨의 죽음에 대해 “나 대신 죽었다”라고 한 김 명예회장의 심기와 “어머니를 죽인 정권”이라고 한 김재호 전무의 울분이 지면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정황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뒤로 국세청장을 만나고, 앞에선 국세청을 욕하는 두 얼굴의 사주가 지금 동아일보의 가장 큰 딜레마라는 점은 외면하기 어렵다. “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언론사주가 편집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워싱턴 포스트>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할 때도 결국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의 결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사주는 신문 제작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오래 전 동아일보를 떠난 한 인사는 “지금 동아일보 편집진의 신문 제작 방향이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주의 간섭이 없다면 일관성은 있을 것”이라며 “지금 동아일보의 위기는 방향이 잘못돼서라기보다는 방향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지적했다. 왜 안티조선은 있는데 안티동아는 없을까. 왜 조선일보 비판은 넘쳐나는데 동아일보 비판은 찾아보기 힘든 걸까. 거기에는 1등과 3등의 차이나 좋은 신문과 나쁜 신문의 차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내게 왜 동아일보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일보와 달리) 동아일보 논객들은 해부하기가 참 어렵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그게 바로 동아일보의 특성”이라고 말한다.(<인물과 사상> 2000년 2월호) 무언가 주도면밀한 언론비평가를 헤매게 만들고 있다. “물론 동아일보도 어떤 면에선 못 말리는 수구성과 보수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조선일보처럼 심하지 않다. 대표적인 논객과 간부급들의 성향이 다양해 조선일보처럼 일사분란한 정치적 행동을 하기 어렵다. 각각 예비군과 해병대 훈련병을 연상시킨다. 신문은 군대와 달라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동아일보가 조선일보보다 훨씬 건강하다.” 동아일보의 특성이 여기까지라면 칭찬만 해줘도 좋을 터이다. 그러나 사정은 한층 복잡해진다. “동아일보는 기업으로서 라이벌인 조선일보와의 싸움에서 이기거나 적어도 대등한 관계를 지켜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게다가 그 목표는 역사적으로 오랜 라이벌 관계에서 비롯된 정서적인 것이기도 해서 경제적인 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목표이다. 동아일보는 김대중 정권도 조선일보와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그래서 동아일보와 김대중 정권간의 관계가 참 묘하다는 것이다.”
언론인과 월급쟁이 사이에서의 방황
동아일보의 지금 모습은 옛 동아일보 출신들에겐 깊은 회한을 던진다. 친일과 독재정권에 무릎꿇은 과거의 어두운 굴절사야 동아일보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기업정신이든 기자정신이든 조선일보와는 달랐다는 게 그들의 기억이다. 동아투위 출신의 한 언론인은 “기본적으로 동아와 조선은 자본의 형성과정이 달랐다”며 “신문사 건물과 호텔을 짓기 위해 일본에 4천만달러의 상업차관을 좋은 조건으로 들여오는 특혜를 받았던 조선일보의 역사에 견줘보면 동아일보는 오히려 빼앗기는 역사였다”고 말했다. “광고탄압을 겪은 동아일보와 정권과 독자 사이에서 눈치보며 잇속만 챙겨온 조선일보의 내부 정서와 기자정신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다른 동아일보 출신 인사는 “동아일보 기자들은 75년 광고탄압 이전에도 부당한 권력의 요구에 맞서 갈등을 빚어왔다”며 “1968년엔 선거 유세장에 사람을 동원해 가던 버스가 뒤집히는 사고가 나서 기사화했다가 중앙정보부의 압력으로 기사가 빠진 일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수습기자들이 회의를 열어 중앙정보부의 출입금지와 문공부 개입금지를 결의한 일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동아일보 출신들은 최근 후배기자들이 난상토론 끝에 대정부 투쟁 결의문 채택을 무산시킨 것에서 살아 있는 기자정신의 전통을 읽어내려고 애쓴다. “비록 선배들은 떠났지만 후배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끈질기게 전통을 이어가는 것으로 본다.” 한 동아투위 출신 인사는 “기자가 월급쟁이가 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하면 이겨내지 못하고 곧바로 흔들릴 것”이라며 “후배들이 언론인의 사명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기자들이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배들의 기대만큼 후배들의 생각은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무조사 결과가 워낙 큰 위기로 다가오기 때문에 사주와 선을 긋는 것까지는 생각할 수 없다. 미우나 고우나 사주는 우리의 파트너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언론의 정도를 걷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 노조 관계자의 이런 토로에서 언론인과 월급쟁이 사이에서 방황하는 동아일보 구성원들의 딜레마가 엿보였다.
일부에서 싹트는 전통에 대한 고민
올해 초 동아일보 논설위원직을 떠난 김재홍 경기대 통일안보대학원 교수(80년 해직 뒤 88년 복직)는 “예전에는 사주가 신문 제작에 개입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편집국장과 생각이 달라도 소신껏 글을 쓸 수 있는 풍토가 있었다면 지금은 편집국장과 생각이 다르면 평기자라도 자기 뜻대로 기사를 쓰기 어려울 만큼 획일적인 통제가 가해지고 있다”며 “어느 정도 지사적인 기질을 가진 젊은이가 기자가 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그런 생각을 품고 기자가 되려는 경우도 드물고 그런 젊은이는 뽑지도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끝내 동아일보를 떠나는 기자들도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의 기자들이 돌아오지 않을 해외연수를 떠나기도 하고, 사표를 쓰고 유학을 가기도 한다.” 동아일보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동아일보가 위기라면 사주의 구속이나 거액의 세금 추징이 아니라 조직이 전망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라며 “일부 기자들 사이에 동아일보의 전통에 대한 고민이 싹트고 있는 게 작은 희망이라면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 작은 희망은 옛 동아일보를 기억하는 많은 독자들에게도 똑같은 희망이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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