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고수 7명이 추천하는 피서지… 자연이 숨겨둔 마지막 풍경들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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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날의 생활을 인생의 사업이라고 한다면 여행은 인생의 즐거운 예술이다.… 생활이 인생의 산문이라면, 여행은 분명히 인생의 시다.”(안병욱, <사색의 노트>)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는 해방감. 바로 그 기분 때문에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를 위해 떠나는 것이다. 여행의 추억은 일생 내내 곱씹을 수 있는 끊임없는 휴양이다.
<한겨레21>은 국내 여행전문가들로부터 올 여름 번잡한 피서지를 피해 좋은 추억을 얻을 만한 곳들을 추천받았다. 매해 새로운 곳을 소개하기 위해 고심하는 여행전문가들은 어떤 곳을 추천할까. 여행에 관한 한 최고수들인 이들은 한결같이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곳, 사람들이 다소 찾는다 해도 천편일률적인 바캉스와는 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곳들을 꼽았다. 추천에 참여한 전문가는 모두 7명. 7명의 여행경력을 합치면 120년인 이들 여행가들이 꼽은 열곳의 피서지를 소개한다. 이 열곳의 여행지는 모두 편치 않은 여행지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즐기겠다는 각오가 서 있다면,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자는 의욕이 있다면 평상시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또다른 경험을 제공할 곳들이다. 찾아가보면 아직 우리땅에는 가볼 만한 곳들이 많이 남아 있다. 편집자 |
바다와 섬
경남 통영 소매물도
사진/ 소매물도 정상에서 바라본 등대섬의 모습. 해질녘 고즈넉하게 홀로 앉아 즐기는 일몰 풍경이 일품이다.(임인학)
여름에는 사람들이 다소 몰리지만 성수기만 피해 찾아간다면 조용한 작은 섬. 문명의 혜택이 거의 없어 밤 11시면 칠흑같이 어두워지는 외진 곳이다. 소매물도 최고의 매력 포인트인 등대가 있는 작은 섬과 큰 섬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두 섬은 물이 빠지면 돌길로 이어져 걸어서 오갈 수 있다. 큰 섬 정상에서 바라보는 등대섬과 가깝고 멀리 바다 위에 떠 있는 뭇 섬들의 풍경이 이 섬 최고의 볼거리다. 섬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최고일 때는 단연 일몰 때. 바다와 구름, 그리고 석양이 빚어내는 은은한 색조와 분위기에 젖어 명상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섬에서 하나뿐인 다솔카페는 테이블이 5개뿐인 작고 허름한 찻집이지만, 주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에도 꺼내 먹은 만큼 돈을 바구니에 넣고 가면 늘 문을 여는 인간미 넘치는 카페다.
경남 통영 여객선터미널(055-642-0116)에서 아침 7시와 오후 3시5분에 두 차례 배가 떠난다. 뱃시간은 간혹 바뀌기도 하므로 사전에 확인해야 하고, 날씨가 궂으면 섬에 묶일 수 있으므로 날씨를 꼭 확인해야 한다.
흑산도의 새끼섬 영산도
사진/ 흑산도의 새끼섬 영산도의 ‘영산8경’ 가운데 으뜸인 대문바위. 영산도는 홍도 등 다른 다도해 섬들보다 문명의 때가 덜 묻어 있는 숨은 여행지다.(정보상)
마을 하나 있는 작은 섬으로 사람들이 흑산도에 들렀다가 놓치고 오기 쉬운 곳. 흑산도서 배를 빌려 섬 주변을 일주하면서 구경하는 기암괴석과 섬풍경이 일품이다. 홍도처럼 번잡하지 않아 호젓하게 즐길 수 있다. 영산도에는 영산8경이 있는데 모두 암석해안이 만들어내는 풍경들로, 이 가운데 대문바위가 하이라이트다. 영산도 관광을 하려면 흑산도에서 유람선을 타야만 하는데, 영산8경을 모두 둘러보는 데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흑산도에 먼저 들러 진리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긴 뒤 영산도를 둘러봐도 좋고, 당일치기로 홍도까지 모두 찾아가볼 수 있다. 흑산도의 볼거리로는 촛대바위와 칠성동굴, 원숭이바위 등이 이어지는 바다 풍경이 손꼽히지만, 칠성동굴 답사 등 육상 여행도 가능하다. 흑산도 정상쪽 봉화대에서는 멀리 홍도까지 굽어볼 수 있다.
흑산도까지 가는 길은 목포항에서 쾌속선을 타면 된다. 쾌속선으로 2시간30분이면 흑산도에 다다른다. 영산도 해상 유람선은 비정기적으로 운행되며 유람선 회사(0631-75-9115)에 문의하면 된다.
고흥 나로도
사진/ 고흥 나로도의 염포해수욕장.(유연태)
내나로도와 외나로도 두개의 섬으로 이뤄진 다도해의 섬. 기묘한 바위들과 쪽빛처럼 푸른 바다와 백사장, 소나무숲이 어우러져 있다. 특히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계단식 논밭도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고흥에서 나로대교로 바로 건널 수 있어 배를 타지 않고도 갈 수 있다.
내나로도에 있는 덕흥해수욕장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 해가 뜨는 모습과 지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 외나로도 동쪽에 있는 하반마을은 특히 일출을 감상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하반마을 해변은 물이 맑고 조개가 많아 잔재미를 느끼며 수영하기 좋다. 외나로도 서쪽의 염포마을 역시 일몰을 감상하기 좋기로 손꼽히는 곳.
주변의 볼거리로는 고흥반도 남쪽 도화면 발포리 발포해수욕장과 이순신 장군 사적지인 충무사가 있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흥까지 고속버스가 하루 3번 운행되며 6시간 가까이 걸린다. 승용차로는 호남·남해고속도로 송광사나들목 거쳐 27번 국로를 지나 벌교를 통과하면 된다.
경기도 화성군 국화도
사진/ 화성 국화도의 호젓한 해수욕장.(유연태)
행정구역은 경기도지만 배는 충남 당진에서 떠난다. 말 그대로 조용하고 깨끗하며 번잡스런 것이라고는 없는 적막한 섬. 갯벌의 대지성을 맨발로 체험하면서 굴을 비롯한 갯것들을 직접 캐볼 수 있다.
국화도와 형제섬인 토끼섬이 나란히 바다 위에 떠 있는데, 국화도에서 토끼섬까지는 500m 정도 암석 해안과 모래밭이 드러나 있어 썰물 때면 건너다닐 수 있다. 토끼섬 주변에는 고둥이 지천이어서 쉽게 주울 수 있을 정도다.
국화도 선착장 마을에서 언덕을 넘으면 조개껍질 섞인 모래가 곱게 깔린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이곳 해수욕장은 서해안 해수욕장인데도 물이 맑고 경사가 완만해 가족 피서지로는 제격이다. 가족끼리, 또는 친구나 연인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에 묻히기 좋은 피서지.
당진읍에서 장고항리까지 1시간30분∼2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니며, 승용차로 갈 경우 서해안 고속도로를 나와 송악나들목을 지난 뒤 석문방조제를 거쳐 장고항으로 가면 된다. 당진군 석문면 장고항리에서 횟집을 하는 양천길(041-353-3200)씨에게 연락하면 국화도행 배나 낚싯배를 빌릴 수 있다. 국화도 안에 있는 숙박시설로는 사계절휴양지(031-357-7311)가 있다.
제주 비양도
사진/ 제주 협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비양도. 비양도는 제주도의 마지막 숨은 피서지로 제주 사람들이 피서가는 곳이다.(유연태)
너무나 잘 알려진 피서지 제주도가 숨기고 있는 거의 마지막 명소. 뭍사람들이 몰리는 여름, 제주 사람들이 피서가는 곳이 바로 협재해수욕장에서 마주보이는 섬 비양도다. 비양도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언제 생겨났는지를 알 수 있는 섬이다. 1천년 전 화산 폭발로 솟아난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올 봄 섬 일주도로가 완공돼 트래킹이나 자전거 하이킹을 하기에 더욱 좋아졌다. 일주도로는 비양봉 등산로 입구, 해녀들 작업장을 차례로 돌아 선착장으로 이어진다. 20분쯤 걸어 정상까지 올라가면 1천년 전 용암을 내뿜었던 분화구 3개와 지름 5m짜리 작은 무인등대가 있다. 등대 주변??의 북쪽 바닷가에서는 고둥과 소라, 오분작을 캘 수 있다.
제주 한림항(064-796-7522)에서 비양도행 배가 오전 9시, 오후 3시에 두 차례 떠난다. 비양도 내 숙박시설로는 김영택(796-8450)씨네 등 민박집이 있다.
산과 숲, 그리고 외딴 마을
점봉산
사진/ 점봉산.(강재훈)
점봉산 하면 오지의 대명사처럼 여겨져서 왠지 사람들이 감히 못 가볼 곳처럼 여기지만 절대 그렇지 않은 곳.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과 마주보는 점봉산은 한계령쪽 산세가 험하지만 고원 평야지대 같은 곳이어서 초보자는 물론 어린이도 쉽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우리 숲 가운데 원시림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어서 숲을 만끽하고픈 이들에게 제격이다. 숲도 숲이지만 강선골 계곡도 좋아 숲과 물이 잘 어울린다. 설피밭까지 차로 간 뒤 걸어가면 강선골까지 20분 거리로, 오솔길이 아닌 너른 숲길이 거닐기에 그만이다. 강선골에서 10분만 더 들어가면 이름없는 폭포도 찾을 수 있다. 산타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설피밭에서 1시간만 올라가면 아름드리 나무숲이 울창하게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특히 숲의 자연 천이 과정, 즉 나무의 일생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막 뻗는 젊은 나무부터 노년에 접어든 늙은 나무, 그리고 버섯들의 집이 된 죽은 고목까지 나무의 죽살이와 다양한 버섯들이 인적없는 숲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점봉산은 숲의 신비로움을 흠뻑 느껴볼 수 있는 곳으로 “이게 바로 숲이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인제에서 내린천 물길 따라가는 진동계곡 드라이브 코스도 일품.
홍천에서 상남 거쳐 현리로 가는 길에서 현리로 우회전하면 진동리. 진동리쪽 길을 따라가다 나오는 비포장도로 끝이 설피밭이다.
강원도 정선의 아우라지와 화암계곡, 그리고 된장마을
사진/ 정선 아우라지.(송일봉)
물이 깨끗하고 산이 깊어 여름 무더위에도 서늘하게 보낼 수 있는 곳. 태백선 증산역에서 구절리까지 이어지는 정선선 꼬마기차를 타보는 것도 이색적인 재미다. 이 꼬마열차는 특히 우리나라 유일의 완영열차이기도 하다. 여량역에서 내려 걸어서 5분이면 정선 아우라지다. 아우라지는 물길 두곳이 만나는 지역으로 아직도 나룻배가 다니므로 배를 빌려 타볼 수 있다. 주변 명소로는 바위가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화암계곡이 단연 손꼽힌다. 화암계곡 주변에는 약수터도 있고, 종유굴 등 숨어 있는 볼거리가 많다.
된장마을은 여량에서 동해쪽으로 1시간쯤 가면 나오는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로, 정통 된장 생산자로 유명한 돈연스님과 첼리스트 도완녀씨 부부가 유명하다. 가목리는 해발 600m 고지대로 주변에는 우리나라 보호수종인 참솔나무가 울창하게 둘러싸고 있어 숲 감상하기에도 좋다.
진부읍내쪽으로 가다가 33번 국도를 타서 정선으로 가는 42번 국도를 타면 된다. 정선 입구에서 북면쪽으로 가면 바로 여량역이다.
화천 비수구미마을
평화의 댐 앞에서 모터 보트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마을. 마을이래봤자 달랑 세 가구뿐이어서 때묻지 않은 오지마을에서 문명의 흔적을 모두 떨치고 사색하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비수구미마을 최고의 볼거리는 아침에 강가에 서리는 물안개와 별이 쏟아지도록 밝은 밤하늘. 복작대는 도시 생활을 잊게 해준다. 바로 옆 방개마을도 비슷한 분위기이므로 한꺼번에 둘러봐도 좋다.
비수구미마을로 들어가는 선착장 부근에는 가곡 <비목>의 탄생지인 비목공원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초급 장교였던 한명희씨가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만나 가사를 쓰게 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공원에는 녹슨 철모를 얹은 나무 십자가들이 당시의 참상을 전해주고 있다.
비수구미마을은 먼저 민박집에 전화해 배를 예약하는 것이 필수다. 화천읍을 지나 해산터널을 통과한 뒤 평화의 댐을 향해 가다보면 수하리 낚시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마을 주민 장윤일(033-442-0145)씨에게 전화해 모터 보트를 불러야 한다.
강촌 구곡폭포
사진/ 강촌 구곡폭포. 비오는 날 가야 제대로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김순경)
여름비가 내릴 때 찾아가면 그만인 곳. 강촌 구곡폭포는 흔히 대학 시절 모꼬지나 야유회로 가본 이는 많지만 비오는 날 폭포의 매력을 제대로 감상해본 이는 적다. 모든 여행은 시기가 중요한데, 특히 폭포는 더욱 시기가 중요한 볼거리. 물 마를 때 가서 보고 별로였다고 여겼던 이들이라면 올 여름 장마철, 또는 비가 많이 오는 날에 가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구곡폭포는 아홉구비로 둘러싸여 움푹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무척 습한 곳. 그래서 청개구리 소리가 매미소리처럼 울린다. 주차장에서 20분 쉬엄쉬엄 올라가면 된다. 그 올라가는 길은 신선하고, 중간중간 산림욕을 즐기도록 벤치도 마련돼 있다.
머리 위로 바로 물이 떨어지는 듯 웅장한 폭포소리를 듣는 것이야말로 폭포 여행의 요체. 폭포소리는 양계장에서 닭에게 들려주며 키울 정도로 정서적 효과가 크다. 실제 폭포소리를 듣고 자란 닭들은 알을 잘 낳는다고 한다. “물소리로 마음을 식힌다”는 말처럼 자연이 빚어내는 웅장한 화음을 듣는 것만으로도 땀이 식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강촌역에서 폭포까지 자전거 도로가 나 있고, 빌려 탈 수 있어 가족단위로 당일치기하기에 좋다.
도움말 주신분
김순경/ 여행 및 음식칼럼니스트. 국내 오너드라이브 여행의 선구자로 <베스트 드라이브 코스 101선> <음식기행 사계절> 등 많은 책을 냈다.
김산환/ <사람과 山> 기자를 거쳐 현재는 전문 여행작가로 활동중. <배낭 하나에 담아온 여행> 등의 책을 냈고, 현재 문화방송 <모닝스페셜>에 고정출연해 여행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송일봉/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 캄> 편집장을 지냈고, 한국 땅이름학회이사를 맡고 있다. <주제가 있는 여행> 등을 펴냈으며 현재는 여러 여행클럽을 진행하고 있다.
유연태/ <국민일보> 여행 전문기자를 거쳐 현재 케이블방송 리빙TV에서 여행프로그램을 진행중이며 향토문화기행클럽 대표를 맡고 있다. <우리는 오늘 그 바다로 떠난다> 등을 썼다.
임익환/ 전문 여행작가이자 토종개인 진돗개와 삽살개를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작가로도 유명하다. 지난 1994년에는 한국의 토종개를 주제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정보상/ 자동차와 여행 전문 웹진 ‘와우 트래블’(travel.waw.co.kr) 대표. 자동차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욱재/ 답사형 여행프로그램 전문 여행사인 여행자클럽&스마일고속 대표. 21년째 여행업에 종사하면서 직접 관광객을 안내하며 여행을 다니고 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