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1년07월11일 제367호 

여행, 삶과 역사를 빚는 과정

그리스의 영웅들부터 조선의 문인들까지… 길 위에서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



세계화가 가속화되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공간의 이동은 더없이 빈번해지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1950년에는 전세계적으로 2500만명에 불과했던 국외여행자가 1995년에는 6억여명에 달했고 2010년에는 10억여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하니, 여행은 이제 그 목적이 휴식을 위해서든, 업무를 위해서든 현대인에게는 필수적인 행위가 되었다.

<서유기>는 구도의 기록

그러나 여행이란 현대에 와서 새삼스럽게 중요해진 일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어 본질적인 의미를 지니는 행위이다. 세계의 모든 신화와 전설에서 영웅적 존재는 언제나 여행 곧 길떠남을 경험한다. 헤라클레스는 사자의 가죽을 벗기고, 괴물 히드라를 퇴치하고, 용이 지키는 황금사과를 따오는, 12가지의 노역을 위해 여행을 해야만 했고 테세우스는 크레타섬의 미노타우로스라는 식인 괴물을 제거하기 위해 미노스 대왕의 미궁으로 떠나야만 했다.

우리 건국신화에서의 주몽 역시 적대자들의 핍박을 피해 엄체수(淹遞水)를 건너 광활한 만주벌판으로의 여정을 떠난다. 중국신화에서는 목천자의 여행이 유명하다. 목천자는 임금으로서 8필의 준마를 타고 서쪽세계로 정복의 길을 떠난다. 마침내 그는 서쪽 끝 불사의 땅인 곤륜산에 도달하여 여신 서왕모를 만나 환대를 받고 돌아온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세계의 모든 영웅신화는 동일한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그것은 출발-과정-귀환의 구조인데 영웅이 길을 떠나 적대자와 투쟁을 하거나 괴물을 퇴치하는 등의 모험을 하고 결국에는 미녀나 보물을 얻어 돌아와 결혼하거나 왕이 된다는 이야기 패턴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웅의 모험적 여행은 중층적 의미를 지닌다. 즉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먼 길을 떠나고 그 여정에서 영웅적인 업적을 달성하는 일이지만 내면적으로는 한 개인이 정신상의 단련을 거쳐 완성된 인격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국 환상문학의 걸작 <서유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서방 천축국으로 불경을 얻기 위해 험난한 여행을 떠나는 손오공 일행은 불완전한 인격, 정립되지 않은 자아를 상징한다. 삼장법사·손오공·저팔계 등이 표상하는 것은 나약함, 변덕스러움, 탐욕 등의 정화되지 않은 인간 본능이다. 이들이 여행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요마·괴물은 모두 우리 내면의 걷잡을 수 없는 욕망들이다. 요마와 괴물을 이겨낸 끝에 천축국에 도착하여 불경을 얻어오는 지상의 여정은 결국 거친 본능과 욕망을 다스려 온전한 성품을 이룩하는 정신수련의 과정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서유기>를 환상적인 여행담이 아닌 구도의 기록으로 읽을 수 있다.

역사 시기에 이르러서도 신화의 이러한 중층적 의미는 지속적으로 추구된다. 공자는 자기가 살던 집을 떠나 태산에 오른 이후에 천하가 작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登太山而小天下), 모국에서 이룰 수 없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수레를 타고 각국을 주유하게 된다.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은 젊었을 적에 중국 천하를 유람하면서 각지의 신화와 역사, 풍물과 민속을 체험하고 풍부한 감성, 웅장한 기상을 아울러 함양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그는 거세의 형벌을 당했음에도 불굴의 정신으로 만고의 문장인 <사기>를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란 영원의 나그네”

시선으로 일컫는 이백은 평생을 여행 속에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일찍이 고향인 사천을 떠나 천하를 유랑하면서 각지의 협객들을 사귀기도 하였는데 그때의 벗이었던 곽자의가 후일 대장군이 되어 반역죄로 처형 위기에 있던 이백을 구해주기도 한다. 이백 문학의 호탕하고 자유분방한 개성은 아마 그의 여행으로부터 길러진 기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백은 그의 산문 〈봄밤의 연회에 부쳐>(春夜宴桃李園序)에서 다음과 같은 명구를 남겼다. “천지란 만물의 여관이오, 시간이란 영원의 나그네이다.”(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 이러한 언급이야말로 이백이 여행 그 자체를 삶의 본질이자 우주의 본질로까지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진정한 여행인이었던 이백은 죽음마저도 여행길에서 맞았다. 이백이 술에 취해 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설화는 낭만적인 이백의 이미지에 맞게 각색된 것이다. 실제로 이백은 만년을 고독하게 방랑하다가 어느 시골 마을 친척집에서 병사했다.

공자·사마천·이백 이외에도 중국의 문인들은 여행을 즐겼다. 산문가인 한유·유종원, 시인인 소동파, 철학자인 주희 등은 귀양길과 같은 본의 아닌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평소 산수를 사랑하여 자주 유람에 나섰고 그 감흥을 글로 남겼다. 그들이 남긴 여행기는 유기(遊記)라는 문학형식으로 성립된다.

이같이 산수·자연에 대한 답사를 통해 성정을 도야하고자 했던 고대 문인들의 정신은 조선조 사대부들한테도 계승되어 15∼17세기 사이에 산수유기(山水遊記) 문학으로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 이들에게 산수는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응결된 장소였고 인간의 심성과 감정을 정화시켜주는 수양의 터전이었다. 이들이 조국의 산수를 순례할 때 그것은 민족의 숨결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스스로의 인품을 연마하는 행위가 되었다.

조선의 문인들은 금강산·지리산·소백산·묘향산·삼각산 등 명산을 유람하면서 무려 560여편에 달하는 유산기(遊山記)를 남겼다. 특히 고려말 길재로부터 조선의 김종직, 이퇴계로 이어지는 영남 사림 및 성리학자들에게 지리산·청량산 등을 중심으로 한 산행의 기록이 많다. 이들은 공자의 이른바 “지혜로운 자는 물을 즐기고 어진 자는 산을 즐긴다”(知者樂水, 仁者樂山)는 자연애호의 정신을 이어받아 산행을 독서와 마찬가지의 수행방식으로 인식했다. 대개 불우한 지식인에 속했던 이들 영남의 선비들은 산행을 통해 궁핍한 마음을 열고 호연지기를 배양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이퇴계의 제자인 조호익은 환난의 도에 처했기 때문에 산수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게 되며 바로 그것이 공자의 산수관의 요체라고 고백한다.

모든 역사는 여행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본다면 여행이란 실로 단순한 유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계발하고 성장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행위이다. 청년기의 방황을 그린 이문열의 <그해 겨울>에서 주인공은 도회를 떠나 경상도의 산촌을 거쳐 동해 바닷가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성숙한 자아로 거듭난다. 헤르만 헤세의 인도여행은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왔던가? 헤세는 34살 때 그토록 동경해왔던 인도로의 여행길에 오른다. 그러나 나쁜 기후와 건강 때문에 인도여행에서 실망감만을 맛보고 오히려 부수적으로 행해진 동남아 여행에서 중국인을 접하게 된다. 이때 느끼게 된 내면적 해방감은 이후 그로 하여금 중국문화에 탐닉하게 하여 그의 작품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이들뿐인가? 어떻게 보면 모든 역사는 여행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여행, 그리고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여행에 의해 동서양은 만나고 근대를 향해 진군해 갔다.

예외없이 올해도 여행의 계절은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삶, 어떠한 역사를 만들고 올 것인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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