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1년05월22일 제360호 

“차라리 확실한 상품이 되겠다”

인터뷰/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

수술 뒤 잃은 것은 불편함, 얻은 것은 자유… 여성성 과잉으로 비쳐져 유감



카메라 앞의 하리수씨 이미지는 어쩌면 ‘새빨간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얼굴을 알린 그 화장품 광고의 카피처럼 말이다. 한 시간 넘게, 카메라 앞에서 연신 요염한 미소를 흘리던 스물세살 처녀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소탈한 이웃집 아가씨로 돌아왔다. 평소 옷차림대로 검은 쫄티에 꽉 끼는 청바지로 갈아입자 얼굴에 생기가 살아난 것이다. 남은 인터뷰도 제쳐둔 채 “배고프다”고 보채던 하리수씨. 그는 상추쌈을 탐스럽게 싸먹고 공기밥도 한 그릇 뚝딱 비웠다. 인터뷰는 내내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앞에 두고 이뤄졌다.

평소 성격은 어떤가.

화장도 거의 안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즐긴다. 한마디로 털털한 편이다.

어릴 때를 돌아보면.

돈만 생기면 미미인형 사모으는 계집아이였다. 어릴 적 사진을 봐도 항상 인형을 들고 서 있다. 집에서 나무라거나 말리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화장을 시작했는데 엄마한테 “나 콤팩트 떨어졌어!” 하면 두말 않고 사다주실 정도였다.

성전환수술 뒤 잃은 것과 얻은 것은.

잃은 것은 불편함이고 얻은 것은 자유다. 수술하기 전에도 난 여자였고, 수술받고 난 뒤에도 난 여자다. 애매모호한 삶이 싫었기 때문에 수술을 결심했다.

가족들은 수술을 반대하지 않았나.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셨다. 당시 아버지는 모르고 계신 상태였다. 지금도 아버지는 “이해는 하지만 딸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연예계 데뷔는 언제부터 준비했는지.

1년 반 전이다. 처음에는 국내 데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일본에 먼저 진출하려고 했다. 다행히 한국에서 내 이미지를 살리는 광고를 맡게 됐다.

트랜스젠더 연예인은 데뷔가 곧 커밍아웃이다. 두려움은 없었나.

왜 갈등이 없었겠나.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세상에 다 알려지는 건데. 또 그렇게 되면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데. 나만 생각했다면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물론 개인적인 성취욕도 있었지만 대중매체에 의해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굳어진 트랜스젠더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트랜스젠더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여자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출근하는 트랜스젠더를 받아들일 회사가 얼마나 될까? 적응하기 위해 자신을 숨기느냐, 아니면 솔직히 드러낸 뒤 도태되느냐 두 가지 선택뿐이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평범한 길을 걷고 싶어하지만 사회가 자꾸 밀어낸다.

당신의 연예계 데뷔를 성적 소수자들이 지지할 것이라 보는가.

물론이다. 데뷔를 결심한 것도 그들이 도와줄 것이란 믿음이 컸기 때문이다.

여성성이 과도하게 강조된 이미지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획일적인 시선을 갖게 하는데.

실제 트랜스젠더의 이미지는 다양하지만, 대중매체에서는 여성성이 항상 과잉된 채 비춰져왔다. 일종의 이미지 조작이다. 안타까울 뿐이다. 그것 때문에 트랜스젠더운동과 여성운동이 기꺼이 연대할 수 있는 부분도 줄어드는 것 같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도 있다.

안다.(약간 목소리가 높아지며) 내가 아무리 ‘여자’라고 우겨도 세상은 나를 한 평범한 여자로 보지 않는다.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하리수는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는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편견이 들어 있다. 그런 세상에서 난 차라리 확실한 상품이 되겠다.

그는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리며 간간이 목젖이 보일 만큼 웃기도 했다. 후식으로 나온 식혜까지 깨끗이 비우고 난 뒤 “허겁지겁 너무 많이 먹었다”고 울상지었다. 인터뷰 도중 내내 쾌활하던 그의 얼굴이 문득 어두워진 순간이 있었다. “연예인으로 성공해도 내 삶이 얼마나 행복해지겠어요”라는 말을 할 때였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덧붙였다. “그래도 어렵게 선택한 새 삶인 만큼 나를 더 아낀다”고.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Back to th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