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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노후, 흙냄새가 좋다 공무원 정년퇴직 앞두고 농촌으로 뛰어든 박태우·성덕선씨 부부 이야기
자기 손으로 모든 걸 한다는 각오
본적이 ‘종로2가’인 서울 토박이 박씨가 부인 성씨와 함께 이곳으로 온 건 지난 1999년 7월이었다. 이제 겨우 만 2년을 바라보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그는 서서히 은퇴 뒤를 생각해야 할 무렵, 농촌 이주를 결심했다. “그대로 정년퇴직을 맞았다가는 그뒤엔 영영 못할 것 같았다.” 그에게 제 손으로 먹을거리를 심고 거둬야 한다는 건 언제부턴가 ‘필생의 과업’이었다. 물맑고 공기좋은 곳에서 편히 여생을 보내겠다는 ‘노후의 낭만’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멀었다. 더욱 적극적인 건 성씨였다. 평생 도시생활만 해온 그에게 농촌생활은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부부는 틈나는 대로 경기도 농촌지역을 답사하며 이주할 곳을 물색했다. 그러다 이곳 검천리가 최종 낙점됐다. “서울과 멀지 않아 출퇴근이 가능해서”라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결과론일 뿐, 부부가 이곳을 선택한 건 두 다리 건너 아는 사람으로부터 집과 텃밭 740평을 공짜나 다름없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직장을 그대로 다니면서, 부부가 함께 분당의 집과 이곳을 오가며 농촌살이 ‘예행연습’에 들어갔다. “집은 폐가였고, 밭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지금은 제법 때깔나는 흙벽집과 땅심 좋아보이는 텃밭으로 바뀌었지만, 그건 ‘전원생활’과 ‘귀농’이 얼마만큼 다른지를 몸소 체험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나무는 서까래에서부터 툇마루까지 검게 퇴색해 있었다. 그걸 하나하나 사포로 문질러 닦아냈다. 벽은 군데군데 속살이 드러나 있어, 새로 모두 흙을 발랐다. 얼마 전에는 옆집과 사이에 있던 콘크리트담을 헐어내고 나무 울타리를 세웠다. 이 모든 걸 햇수로 3년에 걸쳐 부부 힘으로 다 해냈다. 집 근처 빈터에 음식물 찌꺼기를 널어놓고 햇볕도 쬐고 비도 맞히고 있다. 대관령에서 겨울을 나는 명태가 황태로 변하듯, 음식물 찌꺼기는 쓰레기에서 거름으로 차츰 변해가고 있다. 박씨는 정년퇴직을 몇해 남기고 지난해 11월 서울시에 사직서를 냈다. 본격적인 귀농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부부는 곧바로 충남 예산의 귀농학교에 나란히 입교해 한달 동안 교육을 받았다. 그동안 농사기술이 없어 화학비료도 조금씩 뿌려가며 푸성귀 농사를 지었지만, 제대로 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볼 참이었다. 귀농학교에 있는 사이 아들은 저 혼자 대학에 들어갔다. 올해는 딸아이가 입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부모는 모두 검천리에 나와 살고 있다. 머지않아 분당 집을 정리하고 나면 아들, 딸도 이곳에 들어와 살 것이다. 자식농사도 유기농법이다. 박씨 부부가 귀농해 가장 먼저 몸으로 배운 건 ‘자급자족’의 삶이다. “돈이 밖으로 새면 농촌생활은 결딴난다. 도시의 물질문명을 그대로 누리려다가는 2년을 못 버틴다고 한다.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고 내 손으로 모든 걸 다 한다는 각오로 살아야 한다.” 박씨의 말을 듣고 집안을 살펴보니 구석구석 자급자족과 재활용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방충망은 유리창과 아귀가 맞는 게 하나도 없다. 마당에 놓인 나무 원탁은 전기공사장에서 고압선 케이블을 감아놓는 얼레였다. 모두 밖에서 주워온 것들이다.
“농촌살이는 세월과의 싸움”
얼마 전부터 박씨 부부네에는 경남 마산에 귀농해 사는 귀농학교 동기 서대기(36)씨가 품앗이를 와 있다. 목공 기술이 있는 서씨는 박씨 부부와 함께 입식부엌과 목욕탕을 만드는 중이다. “이 자재들은 모두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뜯어낸 것들이다.” 자세히 보니 아파트 방문짝이 이 집 입식부엌 벽에 가서 붙어 있다. 잠시 뒤 성남에 사는 지인 김형관(63·고물수집상)씨가 작은 트럭에 목재를 가득 싣고 나타났다. “다른 데서는 쓸모없는 게 이 집에서는 쓸모있는 게 된다.” 김씨가 도시에서 얻어온 목재를 부려놓자, 여주인 성씨가 “가락시장에서 토끼 주려고 주워왔는데, 먹을 만하다”며 오렌지를 돌린다. 박씨 부부는 “농촌살이는 세월과의 싸움인 것 같다”고 했다. 경운기 대신 삽과 괭이로만 농사를 짓겠다는 그들에겐 “농사도 조급하게 지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박씨가 농촌에 들어와 가장 힘들었던 건 “아내가 집안일 때문에 나가 있을 때 혼자 밥상차려 먹으며 고독을 느꼈던 일”이라고 했다. “힘든 농삿일을 여유로 즐기고 외로움을 평안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박씨는 “그렇지 못하면 결국 몇년 허송세월하면서 노후자금 말아먹고 다시 도시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철저한 마음가짐과 사전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씨 부부의 ‘유기농 실습’은 아직까지 돈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주식인 쌀은 사서 먹어야 한다. 거둬들인 푸성귀는 가족과 이웃이 나눠먹는 것으로 끝이다. 철저히 자급자족과 재활용으로 살아가지만 최소한의 생활비는 필요하다. 그래서 박씨는 짬짬이 서울로 나가 두어 가지 아이템으로 개인영업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박씨네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부업일 뿐, 주업은 유기농 농사다. “그래도 큰돈 안 들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은 “우리 가족과 이웃이 농약에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먹을거리를 나눌 수 있고 도시에서 물질만능주의에 찌들어사는 벗들이 이곳에 와 위안을 얻고 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노후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못질하다 손등을 다친 남편에게 연고를 발라주며, 성씨가 농담을 던졌다. “박 동지. 조심해요. 몸이 재산이에요.”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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