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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고품격 장식, 업종이 헷갈려! 미니멀리즘 내세운 청담동 건물의 인테리어… 고급 재료의 단색조 재질감 드러내
미니멀리즘(minimalism). 청담동 문화를 대변하는 경향은 바로 미니멀리즘이다. 특히 실내 디자인의 경우 청담동 대부분의 업소들이 미니멀리즘적인 인테리어 경향을 선호하고 있다. 이런 유행은 카페는 물론 중국집, 단란주점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동양적 이미지 차용한 서구 양식 역수입
청담동 지역 카페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젠(zen) 스타일도 일종의 미니멀리즘으로 유행을 타고 있다. ‘선’(禪)의 중국식 발음을 그대로 딴 이 경향은 서구에서 동양적인 이미지를 차용해 발전시킨 동양 취향의 인테리어 경향이다. 90년대 미국에서 유행이 시작됐고, 이제는 우리나라로 역수입돼 들어오고 있다. 젠 스타일은 중국의 실내장식이나 일본의 정원 느낌을 강하게 풍기며, 단순하면서도 선적인 이미지를 주는 것이 특징이다. 젠 스타일의 대표적인 것은 대나무를 건물 옆에 심어 꾸미는 것인데, 실제 청담동에서는 단순하고 깔끔한 건물 옆에 대나무를 심은 카페나 미장원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청담동을 비롯한 서울 시내 고급 쇼핑지역 부티크들은 상품 진열방식에서도 미니멀리즘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바로 넓은 공간에 몇 가지의 특징적인 상품만을 띄엄띄엄 여유있게 배치하는 것으로, 이런 경향 역시 일종의 미니멀리즘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부분 상점들이 상품을 최대한 많아 보이게 쌓아서 진열하거나 최대한 화려하게 가게 내부를 꾸미는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업적이고 가장 비싼 상품만이 몰려 있는 청담동에서 가장 절제된 느낌을 강요하는 미니멀리즘이 강세를 띠고 있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현상으로 비친다. 그러나 사실 인테리어 측면에서 보면 이것 역시 청담동적인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원래 순수미술에서 미니멀리즘은 인테리어에서의 미니멀리즘과는 개념이 다르다. 미술에서 미니멀리즘은 전위적인 아방가르드 미술의 한 갈래로 출발했다. 사람의 손을 대지 않은 기성품들을 오브제로서 전시장에 전시하는 방식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순수미술에서 미니멀리즘은 금욕적인 성격을 강하게 띤다. 그렇지만 인테리어에서만큼은 금욕과 거리가 멀다.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비용은 최대한 화려하고 장식적인 것과 견줘 결코 만만치 않다. 오히려 국내에서는 다른 지역의 현란한 실내장식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경우가 많다. 물론 어설픈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는 값싸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하자면 추가되는 비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디자인에 큰돈이 들어간다. 전문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지 않은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는 청담동의 수준을 결코 만족시키지 못한다. 또한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는 재료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고급 재료를 써야 제맛이 살아난다. 카페 인테리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고동색 호두나무의 경우 대부분 수입산이어서 청담동 지역 카페에선 평당 인테리어 비용이 평균 300만원꼴이다. 일반 다세대주택 공사비가 기초공사부터 내부마감까지 전 과정을 포함해 평당 200만∼250만원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비용이다. 실내 분위기로 승부를 거는 카페들로선 인테리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일반 가정집의 몇배나 되는 비용을 투자하지 않고서는 도전장도 내밀 수 없다. 사실 미니멀리즘은 최근 전세계에 걸쳐 가장 유행하는 사조다. 인터넷 등을 통해 세계적인 사조가 곧바로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 유행을 빠르게 뒤쫓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담동에서의 미니멀리즘의 강세는 단순한 유행쫓기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다름 아닌 ‘차별화’다. 청담동을 찾는 30대 고소득층에 미니멀리즘은 다른 계층과 자신을 차별화하는 하나의 상징처럼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적인 대중문화의 특징은 과도한 장식을 붙이거나 의도적으로 시각적 자극을 강하게 주려는 화려함이다. 온갖 원색과 표현이 덧씌워진 상품이 넘쳐나고, 그러다보니 따로 무리짓기를 선호하는 젊고 세련된 부유층들은 이런 양적인 것에 싫증을 내고 질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최소한의 표현으로 구별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그런 요란한 대중문화와 구별되는 고급문화의 표상으로 미니멀리즘이 선택된 것으로 본다.”(미술평론가 이주헌)
고급문화 표상으로 선택된 또 하나의 키치?
그러나 차별화를 위해 받아들인 이 미니멀리즘이 넘쳐나면서 청담동의 주요 업소들은 분위기가 서로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해 보이는 점이 우리의 염량세태, 그리고 외국문물 선호현상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지적도 있다. 미술평론가 강홍구씨는 “너무 미니멀한 경향이 강해 결국 이 유행 역시 또 하나의 키치(kitsch:촌스러운 베끼기란 뜻의 독어)처럼 보이고, 원래 우리 동양문화에서 나온 젠 스타일을 우리 고유의 양식으로 차용하기보다는 외국에서 뜨고 있다는 점만을 따라 거꾸로 수입하는 것도 우리의 얕은 인식을 다시 확인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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