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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NMD 폭풍에 한반도가 떤다 미국의 강력한 의지에 발목잡힌 평화공존… 강대국 이해관계 얽혀 대처 방안 묘연
‘불량국가’의 미사일 공격 방어 내세워
NMD는 83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 시절 추진되던 전략방위계획(SDI)에 뿌리를 둔 대규모 대공방어망이다. 당시 ‘스타워즈’로 알려진 SDI는 기술적인 문제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500억달러에 달하는 예산만 낭비한 채 탈냉전시대와 함께 폐기됐다. 그러나 이 미사일방위계획은 아버지 부시의 집권 시절 91년 스타워즈의 축소판으로 ‘제한적인 공격에 대한 전 지구적 방위’(GPALS)란 발표를 통해 부활을 꿈꿨으며, 클린턴 집권 이후에는 공화당 지배의 의회가 주도적으로 나서 NMD와 전역미사일방위체제(TMD)로 되살려놓게 된다. 특히 98년 8월 북한의 위성발사 실험을 계기로 NMD법이 공화당 주도로 통과되는 등 미사일방위계획의 추진이 본격화된다. 그러나 지난해 3차실험이 실패한 것을 계기로 클린턴 행정부는 NMD의 추진 여부를 차기 정부로 넘기게 된다. 부시 정부는 북한이나 이라크 같은 이른바 ‘불량국가’들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육상과 해상, 우주공간에 첨단 요격시스템을 갖춘 이 미사일방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NMD 추진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부시 대통령은 취임식 직후인 1월26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핵무기에 관한 한 세계를 더욱 안전한 장소가 되게 하고 싶다. 공격적인 측면은 물론 방어적인 측면에서도 우리가 할 일을 하겠다”고 NMD 추진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이런 NMD 추진에 대해 미국의 군사패권을 강화할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군비경쟁을 촉발할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미국의 대공방어망이 구축될 경우 자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무력화함에 따라 군사적 균형이 무너지고 미국의 일방적 군사패권이 완성될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들 나라는 미국이 NMD를 강행할 경우 이에 맞서 군비증강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고르 세르게예프 러시아 안보보좌관은 2월 기자회견에서 “냉전종식과 함께 포기했던 전략무기 증강계획 자료를 갖고 있으며, 미국이 계속 NMD를 고집할 경우 겨우 중단된 전략무기 증강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NMD에 대항하기 위해 군사적 협력도 모색하고 있다. 탕자위앤 중국 외교부장은 3월6일 “장쩌민 국가주석이 7월께 모스크바를 방문해 양국간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할 예정”이라고 공식으로 밝혔다.
그럼에도 미국의 NMD 강행 의지는 강력하다. 부시의 외교안보팀은 틈나는 대로 NMD를 강행할 뜻을 밝히고 있다. 파월 국무장관은 3월4일 미국
대북 포용정책에 찬물… 냉전체제 유지할 듯
또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에 의해 촉발될 동북아의 군비경쟁 메커니즘은 남한의 군비증강에 대한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함으로써 남한이 주변 강대국과의 군비경쟁에 휘말릴 위험성도 있다. 이삼성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미사일방어체제인 NMD와 TMD의 구축을 통해 미국은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안보질서를 고착화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동아시아에 냉전시대와 유사한 준냉전적인 질서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 주도의 양자동맹과 중국을 축으로 하는 동아시아 분단을 상징할 수 있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 결국 중국·러시아·북한을 한편으로 하고 한·미·일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극심한 군비경쟁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NMD 배치결정→중국 러시아의 핵전력 강화→일본의 핵무장론 강화→북한·중국·러시아 군사동맹관계의 부분적 복원→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동북아 신냉전’의 도래라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인 것이다.
NMD 반대하면 한-미관계 긴장 불가피
정부 관계자들도 NMD에 대해 이런 악영향을 우려해왔다. 이정빈 외무장관은 2월21일 한·일협력위원회 초청 강연에서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미국이 NMD 문제를 생각하는 원인은 일부 국가가 장거리미사일을 개발하고 그 미사일로 미국 본토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미국이 NMD를 강력히 추진하는 것보다는 이런 ‘원인제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빠르고 손쉬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 미사일 문제를 NMD라는 군사적 수단보다는 북·미협상을 통해 외교적으로 해결할 것을 희망한 것이다. 한-미관계를 고려해 NMD에 대한 정부 차원의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NMD와 관련해 정부의 가장 큰 딜레마는 NMD를 지지할 경우 지금과 같은 중국과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고 반대로 미국의 안보우산에 의존하고 있는 처지에서 NMD를 반대할 경우 한-미관계의 긴장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갈수록 강대국들 사이에서 NMD에 대한 찬반의 선택을 강요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월27일 김대중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한·러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이 언제든지 NMD의 소용돌이에 내몰릴 수 있는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날 양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대한민국은 지난 72년 체결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이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며, 핵기 감축 및 비확산에 대한 국제적 노력의 중요한 기반이라는 데 동의하였다. 양측은 ABM조약을 보존하고 강화하는 가운데 전략무기감축협정Ⅱ(STARTⅡ)의 조기발효와 완전한 이행, 그리고 STARTⅢ의 조속한 체결을 희망하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는 한·러 공동성명에 ABM 조약의 보존과 강화를 명시한 것이 미국의 NMD에 대한 반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국내외로부터 분명한 태도표명의 압력을 받게 돼 3월2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대책마련에 나서게 된다. 이정빈 외교장관은 회의 뒤 △세계 안보상황은 새로운 접근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새로운 접근방법을 추구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부시 대통령의 지도력을 신뢰한다 △미국 정부가 국제평화·안전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동맹국 및 관련국가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이 문제에 대처해 나가기 바란다는 등의 3개항을 발표하고 “미국이 NMD 계획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정부가 반대나 찬성을 밝힐 입장이 아니다”라고 해명한다. 김대중 대통령도 8일 부시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ABM 문제에 대해선 우리 외교부에서 오키나와 G8회담에서 그런 발표가 있었던 것을 기초로 해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견은 결코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NMD에 대해 반대표시를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러시아가 반대를 표시하자고 요청했을 때 확실하게 거부했다. 우리는 ABM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긴 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고, 외교부 장관으로 하여금 우리의 입장을 즉시 해명하도록 한 바 있다”고 설명해야 했다.
이 논란으로 정부는 구차한 해명까지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완전히 매듭지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간 정상회담으로 미국의 우려를 잠재우고 NMD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미봉책이라 할 수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 나름대로 합리적 해결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는 이번 논란이 오히려 새로운 과제를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ABM조약이 군축과 우주의 평화적 사용이라는 점에서 역할을 했다는 것은 국제적 컨센서스다. 이런 정당성에 대한 도덕적 코멘트를 한 것을 해명까지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 한국은 NMD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것처럼 돼 있는데,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어떻게 설득하고 이해를 구할지가 새 과제가 됐다.” 오히려 정부의 굴욕적인 태도로 대미 종속성을 다시 한번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중국과 러시아의 신뢰기반을 무너뜨린 데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 미사일 문제 해결돼도 불씨 여전
미국은 NMD를 강행하는 공식적인 이유로 △북한을 비롯한 불량국가들의 제한적인 탄도미사일 위협 △중국과 러시아의 우발적인 미사일 발사 △테러리스트 같은 비인가자들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다는 것 등을 들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북한의 미사일을 가장 위협적인 것으로 꼽고 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현직에 취임하기전 이끌었던 럼스펠드위원회는 98년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5년 이내 미국 본토에 다다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이 가능하고 10년 뒤에는 실전배치가 가능하다”고 밝혀 NMD 추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1년 뒤인 99년 9월 발표된 CIA 보고서도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할 경우 적성국가 가운데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능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보고 2015년께는 소련의 생화학무기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 공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최근에는 조지 테닛 CIA 국장이 지난 2월21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미국에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시험발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북한은 상당히 부정확하지만 소형의 생화학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로의 전환이 이론적으로 가능한 대포동 1호를 이미 시험했다. 미국의 도시들이 앞으로 15년 이내에 탄도미사일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북한의 미사일문제가 해결되면 미국이 NMD 추진을 포기할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NMD는 미국의 세계 안보전략 차원에서 고려된 것이다. 북한보다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다. 더욱이 이 문제는 미국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군산복합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따라서 북한 미사일 포기가 NMD 철회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의 NMD 추진은 멀리는 83년 레이건 행정부의 전략방위구상(SDI)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현재 NMD 계획의 직접적인 출발점도 북한의 98년 대포동미사일 시험발사 이전인 94년 공화당이 중간선거 승리를 계기로 깅리치 하원의원 등의 주도로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보고서 발표를 통해 클린턴 행정부에 NMD 개발 압력을 가하면서부터이다. 깅리치 의원 등 보수파는 이 보고서에서 “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방어체제를 배치할 수 있도록 국방부는 새롭고 효과적인 NMD 개발에 착수할 것”을 요구했다. NMD는 북한 등 이른바 ‘불량국가’의 미사일 방위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방위전략 차원에서 구상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인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 미사일 문제의 해결이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NMD 추진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데는 대부분 이의가 없다. 실제 NMD는 특히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강조하면서 추동력을 얻어왔기 때문이다. 98년 대포동미사일이 시험발사되자 공화당은 이 문제와 관련한 청문회를 통해 여론을 주도하며 NMD를 기술적으로 실행가능하면 빨리 배치하도록 하는 ‘NMD법’을 통과시켰다. 또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사일방위망이 중국이나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북한 등 ‘불량국가’의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북한 미사일 문제는 NMD 찬성론자들의 입지를 강화해온 핵심사안이었던 것이다. 서주석 국방과학연구원 북한군사연구팀장은 “이란, 이라크 등 다른 불량국가의 미사일 개발능력은 아직 북한에 뒤져 있기 때문에 북한 미사일 문제 해결은 NMD 추진의 시급성을 상당부분 희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이외의 다른 나라를 들먹이기에 아직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3월9일 미국 방문중에 기업연구소(AEI)와 미국외교협회(CFR) 공동 주최로 열린 오찬연설회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이 문제는 미국이 대화를 통해 주도적으로 해결해 가야겠지만 우리도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적극적인 태도를 밝힌 것은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평화정착이 샌드위치로 몰리면 안된다
문제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북한 미사일 문제를 위해서는 북-미간 협상이 필수적인데 조만간 열릴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외교안보팀이 핵심 포스트를 제외하고는 아직 구성되지 않았다는 사정과 함께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을 NMD 추진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서동만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미국의 최근 태도는 검증을 강조하고 재래식 무기 문제를 들고나오는 등 북한 미사일 문제를 협상으로 풀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미국으로서는 북한 미사일이 NMD 추진의 좋은 빌미가 되고 있는 상황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든다”고 말했다. 실제 파월 미 국무장관은 3월8일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기자들에게 “북한에 우롱당하지 않을 것이다. 대북협상은 북-미관계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밝혀 당분간 북·미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일까. 이삼성 가톨릭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NMD는 미국의 21세기 군사전략의 핵심이다. 미국사회에서는 정치적 기반을 갖고 호소력도 갖고 있다. 문제는 속도와 추진방법이다. 부시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상황에서는 중국, 러시아 등의 반발이 뻔하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정착이 샌드위치처럼 몰린다. 이 부분에 대한 외교적 노력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남북이 어떻게 하느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확고한 정치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그 토대 위에서 남북간 군사신뢰구축을 할 수 있는 남북축을 형성한다면 미국으로부터의 역풍을 견디는 가장 확고한 기초가 될 것이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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