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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종교개혁, 평신도들이 나선다 자정능력 상실한 교단·종단에 세습반대·투명재정 요구… 3대 종교 네트워크 움직임도
성직자 중심의 구도를 깬다
지난해 10월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울려 퍼진 천주교 평신도들의 ‘새천년 한국 평신도의 반성과 다짐’의 한 구절이다. 99년 평신도대회에 이어 열린 이 대회는 전국 15개 교구 평신도 대표자와 단체 활동가들 6천여명과 추기경을 비롯해 교황대사, 주교들이 참석해 천주교에서 평신도가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천주교 평신도들의 교회 쇄신운동은 오래 전부터 진행돼왔다. 1984년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전국사목회의는 역사상 처음으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하는 자리였다. 당시 회의에서는 천주교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논의됐으나 곧바로 큰 변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교회의 직무에 평신도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교회의 쇄신과 개혁의 길이라는 합의를 이뤘다. 그뒤로 주교회의 아래 평신도위원회를 두게 됐고 일부 교구에 평신도사목국도 신설됐다. 성직자 중심으로만 이뤄졌던 천주교계의 보수적인 정치구도 속에서 평신도들이 자신의 지위와 정당성을 확보한 과정은 이렇듯 지난한 것이었다. 개신교에서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건강교회운동본부를 고리로 해서 평신도들이 연대하는 틀을 만들고 있다. 건강교회운동본부 지유철 국장은 “교회마다 자치모임이 있긴 하지만 사회성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교회 밖으로 교단과 무관하게 연대할 수 있는 틀을 결성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는 담임목사 세습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광림, 충현교회와 교회재정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구로반석교회, 창신제일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일부 평신도들이 건강교회운동본부와 함께 세미나를 가졌다. 이들은 이 모임을 토대로 ‘기독교 범교단 교회바로세우기 평신도연합운동’(가칭)을 꾸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광림교회사랑 평신도연합은 지난해 6월 광림교회 세습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활동을 해오다 재정개혁 등 교회의 다른 문제들까지 규명하기 위해 광림평신도연합으로 확대했다. 광림평신도연합 오경승씨는 “이제 개신교가 개혁해야 할 때가 왔는데 교단은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며 “평신도들이 깨어나 담임목사 세습반대나 교회재정의 투명한 운영 등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림평신도연합은 역시 담임목사 세습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충현교회를 사랑하는 모임’쪽과 연대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연대가 성사될 경우 다른 교회에서 불거진 교회 내 문제들을 공동집회 등을 통해 함께 풀어나갈 생각이다. 광림평신도연합쪽은 “목회자들은 여러 가지 처한 입장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각 개별 교회 평신도들이 심정적 지지를 보내긴 하지만 개별 교회의 입장이나 영적인 문제가 얽혀 있어 적극 나서지 못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밝혔다.
‘재가연대’의 활약
서울대 이승종 교수는 “세습을 포함한 많은 교회부패의 근원적 요인이 되는 교회 내 권위적 지배구조는 타파되어야 한다”며 “그러나 기득권층인 목회자들이 지배권력을 쉽게 포기하려들지 않을 것이므로 이번 기회에 평신도가 깨어야 하며, 또 그래야 교회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불교의 경우 불교바로세우기 재가연대를 중심으로 평신도들의 불교개혁운동이 이뤄지고 있다. 재가연대는 50여개 불교계 시민단체가 모인 연대기구로 1999년 조계종 종단사태 당시 출범했다. 출가하지 않은 ‘재가 불자’들만으로 이뤄진 조직으로는 불교계 안에서는 처음이다. 이 때문에 교단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을 하는 바깥 사회의 ‘시민단체’와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재가연대는 지금까지 재정을 공개하고 재정운영에 신도의 참여를 구조적으로 보장하자는 주장을 펼쳐왔다. “장관의 판공비까지 공개하는 마당에 사찰의 재정구조를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재정공개는 개별 단위 사찰은 물론 전체 종단 차원에서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으로 인해 도심에 위치하고 있는 포교당들의 경우 재정운영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게 불교계 안팎의 평가다. ‘승려는 기도해주고 재정운영은 신도들이 한다’는 새로운 원칙이 서서히 세워지는 셈이다. 정웅기 재가연대 시민사회국장은 “1994년 종단개혁 이후 생긴 사찰운영위원회는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어 여전히 주님스님의 전횡이 가능한 구조”라며 “어용노조와 같은 현재의 구조를 개혁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광서 상임대표(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는 “인사, 재산관리, 포교 등 모든 문제를 백화점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출가자들의 행태는 기득권을 독점하는 모습일 뿐”이라며 “출가자와 재가자들이 함께 진지하게 역할분담을 모색할 때”라고 말했다. 재가연대 등 불교의 평신도들은 조계종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중앙종회 등에 재가자들의 참여가 구조적으로 보장하는 문제도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11일 천주교 우리신학연구소와 개신교의 기독시민사회연대, 불교바로세우기 재가연대 실무자들은 재가연대 사무실에서 접촉을 갖고 3대 종교 네트워크 구성방안을 논의했다. 이들은 교단 자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요 종단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공조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올해 초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종교를 초월해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종교자정운동을 전개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는 셈이다. 종교의 주인은 성직자들과 함께 다수의 신자들이다. 평신도들을 배제한 성직자들만의 종교는 모래성이 아닐까. 종교 내부의 쇄신과 개혁은 결국 평신도들이 정당한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종교 내부의 정치에 얼마나 제대로 반영되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김창석 기자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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