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참을 수 없는 정부의 직무유기일본에서 열린 국제여성전범법정·강제징용자 세미나 참석자들의 탄식과 분노
12월8일 일본 도쿄의 구단회관에서는 어느 국가와 정부도 거두지 못한 역사의 한 장막이 열렸다.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국제법정’.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범죄의 본질을 드러내고 일본의 책임을 밝히기 위해 세워진 이 법정은 한국, 중국, 필리핀 등 8개국에서 2천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180분에 걸쳐 진행된 남북공동기소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 재판은 50년 동안 연기된 정의의 실현이자 민중에 의한 재판이다”라는 말로 기소를 시작한 박원순 변호사를 비롯한 8명의 남쪽 검사단과 3명의 북쪽 검사단은 전 일왕 히로히토, 전 총리 도조 히데키 등 8명의 피고인을 전쟁범죄 혐의로 고발했다. 남과 북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나와 증언도 했다.
정식법정에 세우지 못한 일제의 만행
기소가 끝난 뒤 열린 남북 검사단 공동기자회견에서 북쪽의 정남용 검사(사회과학원 교수)는 “우리는 이 법정이 단순한 모의법정이나 일본 여론 환기용에 그치지 않고 실제 구속력을 가지는 법정으로 이어지는 데 초점을 둔다”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김윤옥 공동대표는 “이번 법정의 파장은 현재 진행중인 북일수교 협상이 1965년 한·일기본협정처럼 잘못되지 않도록 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법정은 그 의미가 가지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 없는 상징적 행사에 그쳤다. 일본의 공식사과와 보상은 여전히 무망하다. 정부가 올바른 과거청산에 대해 진지한 의지를 가지고 대처해왔다면 실제 구속력을 가진 정식법정이 이미 오래 전에 열렸을지도 모른다고 참석자들은 말한다. 한국 정부는 93년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을 만들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의료, 생활비 지원 등을 법제화했다. 이에 따라 98년부터는 일본이 정부쪽 배상을 회피하기 위해 지원한 민간쪽 기금을 저지하기 위해 정대협이 요구한 생활지원금(1인당 3150만원) 등 1인당 총 4300만원을 정부에 공식등록한 위안부들에게 지급해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작 중요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문제 해결을 통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에는 정부가 아무런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정부쪽 태도는 “65년 한·일기본협정으로 국가간 배상문제는 다 끝났다”고 말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와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65년 한·일기본협정 때 맺어진 청구권 협정에서 위안부 문제가 명시되지 않았고, 시효 역시 20년으로 만료되었기 때문에 더이상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인 것이다. 지은히 정대협 공동대표는 “무수히 보낸 위안부 관련 공문에 대해 정부는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국가간 배상은 끝났지만 개인배상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애매모호한 답변만을 반복할 뿐이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개인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면 개인배상을 하라는 정부차원의 요구를 일본 정부에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뭐냐”고 반문했다.
왜 정부는 개인배상도 요구하지 못하나
정부가 신성불가침처럼 거론하는 한·일기본협정은 세부적 내용의 모호함 때문에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의지가 소홀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예로 94년 국제법률가위원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긴급권고안에서 일본 정부에 책임인정과 배상을 촉구하는 한편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맺어진 조약에 대한 해석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의뢰하라고 권고했다. 이것은 한·일기본협정의 재해석을 통해 위안부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었지만 정부는 어떠한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이번 법정에 참여한 미국의 배리 피셔 변호사도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 재일동포 강제징용 피해자의 일본 기업 상대 손해배상소송과 한국인을 포함한 15명의 아시아 지역 위안부 피해자의 일본 정부 상대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1996년 유대인 나치 피해자의 독일 기업 대상 손배소송인 이른바 홀로코스트 소송을 성공적으로 이끈 피셔는 “홀로코스트 소송 당시 피해당사국의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보여왔던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 정부는 피해자의 뒤에 서주지 않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개인의 청구권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한국정부가 한·일기본협정을 원고쪽에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노력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와 달리 북한쪽은 92년 정부 관계자들과 역사학자, 국제법학자, 인권문제 전문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희생자 보상대책위원회(종태위)’를 설치하면서 위안부 문제의 전면적 조사를 시작했다. 92년 2월 제6차 남북고위급 회담 때는 식민지 지배하의 민족 피해에 대한 공동대응책 협의를 제안했고, 같은 해 3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민족공동회 구성을, 6월에는 이에 관한 공동결의문 채택을 제안했지만 한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성사되지 않았다. 이런 북한의 태도는 기본협정에 매인 채 위안부 문제를 현안으로 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해온 남한 정부와 대조를 이룬다.
강제징용 부상사·행불자 등에도 무관심
남북기소장의 초안을 작성한 조시현 성신여대 교수는 “정부는 기본협정과는 무관하게 일본에서 쌓아놓고 있는 위안부 문서 공개 요구 등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상조사를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2차대전의 피해자가 아닌 미국 연방의회에서도 진상조사와 피해자 배상을 위한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에서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12월9일, 도쿄의 다른 한편에서는 태평양전쟁 강제징용자의 소송에 대한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었다. 진상파악 부족으로 정확한 숫자를 가늠하기는 불가능하지만 600만명 이상의 한국인이 징용에 끌려간 것으로 추정되는 강제징용자 문제에도 정부의 잘못된 태도는 여전하다. 지난 5월 국내 최초로 일본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을 맡은 장완익 변호사는 “일본 정부뿐 아니라 한국 정부 역시 정부의 잘못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잘못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고 좀더 강도높게 비판했다. 청구권 협정 때 경제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받은 무상지원 3억원, 유상지원 2억원으로 정부는 ‘대일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 등을 정해 75년 정부가 지정한 기간 동안 신청한 8천명의 군속 사망자의 유족에 한해 30만원이라는 터무니없이 작은 배상금을 지급했다. 부상자나 생사불명자에 대한 진상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배상금은 고속도로 건설과 공장 건설에 쓰면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징용자들에게 “국민소득이 1만달러 되면 제대로 보상하겠으니 조금만 기다려라”라는 약속을 했다. 이 약속만을 철석같이 믿어온 징용자들은 가난 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있다. 장 변호사는 “이것은 국가에 의한 횡령이기 때문에 국가가 배상해야 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또 “앞으로 5년만 지나도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사망하기 때문에 모든 흔적은 사라지게 되고 그때는 조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면서“일차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피해자와 피해의 종류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고 일본에 자료공개에 대한 협조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태평양 전쟁희생자 유족회 서울지부와 정대협,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는 ‘강제연행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단과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청원을 준비중이다.
너무나 부끄러운 노벨상 대통령의 나라
국제법정 심리 마지막날인 12월10일 검사단의 최종논고가 끝난 뒤 윤순만(72) 할머니는 갑자기 법정에 올라가 국제검사단에 큰 절을 올리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13살 때 일본에 위안부 로 끌려가서 일본놈들에게 칼로 찔리고 불에 지져지고 매질당해가지고 이렇게 왼팔 하나가 아예 병신이 됐어. 그런데 같이 끌려갔던 고모도 일본서 죽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부모, 오빠, 삼촌까지 다 죽었대. 대통령이 2000년까지만 기다리면 사죄받고 다 해결될 거라고 했는데 되긴 뭐가 됐어. 나 죽기 전에 우리 부모가 어디 묻혔는지나 알고 싶어.” 할머니가 이야기하며 연신 눈물을 훔치는 동안 김대중 대통령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연설을 하고 있었다. 도쿄=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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