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정권재창출의 욕심을 버려라DJ여, 냉철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추려내 성공시키는 똘똘한 정권으로
김대중 정부가 출범 이후 최악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마치 곪은 환부들을 도려내려다 피고름이 터지고 갑자기 환자의 용태가 위급해져 어디를 어찌 처리할지 당황하는 어설픈 집도의의 표정이다. 정치개혁은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고, 검찰탄핵안 처리를 둘러싼 정치갈등으로 국회는 파행을 면치 못하고 있다.
4대개혁의 범위와 목표를 좁히자
또 정부가 추진해온 이른바 ‘4대개혁’ 중 어느 하나도 속시원히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개혁은 개혁조처의 미진함이 지적되는 가운데 개혁주체의 도덕성이 의심을 받기에 이르렀다. 기업개혁 역시 재벌개혁쪽으로 나아가는 듯하다가 경제심전도에 경보가 나타나자 부랴부랴 ‘자구책을 받고 살려주는’ 식의 뜨뜻미지근한 결말로 가고 있다. 노동개혁과 공공개혁도 최근 한국전력이나 한국통신 사태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하기 어려운 암초들에 부딪히고 있다. 농민들은 부채탕감을 외치며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곳곳에서 정부의 실정을 질타하는 고성이 들린다. IMF 3년, 경제는 이제 또다시 위기를 말한다.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역사적 업적의 빛이 바랠 정도이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가. 사람들은 묻는다. 준비되었다던 대통령과 정부는 무엇하고 있었는가. 집권당의 수권능력 부족 때문이었을까. 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한 듯한 외형적 성공을 성급하게 자축하느라 그 속에 예비된 또다른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던 탓이었을까. 정부의 개혁이념이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관료적 권위주의 사이를 오가며 갈팡질팡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가 개혁의 시간표를 너무나 단기적으로 졸속하게 짰다는 데 있다. 4대개혁만 해도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려고 하는 조급함으로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거나 우선순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 정부가 당사자들을 설득하기보다는 고압적으로 몰아붙이다가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오히려 개혁의 우군을 잃어버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각종 개혁프로그램이 가지는 정치적 맥락에 있었다. 정권재창출을 궁극 목표로 삼아 개혁을 추진하다보니 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반대하는 야당을 제치고 독주하는 일도 자주 벌어지게 되었다. 정치가 실종되고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우리는 다시 총체적 위기의 손아귀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DJ정권의 선택은 무엇인가. 이제 기쁜 일보다는 힘들고 우울한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추진해온 개혁 중 우선순위와 실천가능성이 높은 것에 집중하여 마무리를 짓고 현 정권에서 해결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과감하게 다음 정권에 넘겨야 한다. 이제 정권재창출의 욕심은 버리자. 냉철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추려내 온 힘을 모아 성공시켜 차돌처럼 똘똘한 정권으로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을 계속하려면 재집권이 요구된다는 논리 아닌 논리로 개혁에 흙탕물을 튀겨서는 아니 된다. 우선 추진중인 4대개혁의 목표와 범위를 제한하고 그중 단기간에 실현할 것만을 추려내 추진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이다. 금융 및 기업개혁은 경제의 사활을 건 문제이므로 최대한 신속하고 선명하게 마무리지을 필요가 있다. 재계에서 기업개혁보다 공기업개혁이 먼저라는 논리로 정부의 개혁추진방식을 비판하고 있듯이, 공공부문의 개혁도 늦출 수는 없다. 다만, 채택된 개혁방안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개혁을 위한 여야간 연대의 공간을
거래비용이 너무 크다면 개혁이 관철된다 해도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권법, 부패방지법의 제정 등 인권을 실효적으로 보호하고 정부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개혁을 강력하게 펼쳐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이 모든 일들은 결국 정치권에서 종결지어야 할 문제들이다. 정치를 복원하고 여야간 개혁을 위한 연대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먼저 야당과 중요한 개혁의 과제와 우선순위, 일정 등에 관한 대화를 열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정치적 화약(和約)을 맺어야 한다. 다음 정권을 누가 맡든 현 정권에서 해결곤란한 것들은 허심탄회하게 차기정권으로 넘기자. 결국은 정치가 제대로 되어야 나라가 산다. 김 대통령이 다시 정치적 리더십을 회복하기를 기대한다. 홍준형/ 서울대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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