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수구, 그 이상의 수구

통일·경제문제에 대한 <조선> <중앙> <동아>의 춤추는 보도행태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의 고려대 앞 행태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실제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이를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방상훈씨가 사주로 있는 <조선일보>가 보인 보도태도는 흥미롭다. 이 사건이 벌어지고 나흘 뒤인 10월16일치 <조선일보>는 ‘고대 앞에서 벌어진 반지성’이란 사설을 실었다. “고려대 총학생회가 자기 대학에 특강을 하러온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학내 진입을 막아버린 사건은 대학의 본질을 훼손한 반지성적인 행동이다”며 학생들을 닦아세웠다.

사주들이 군림하는 대부분의 신문들이 고려대 앞 김병관 회장의 추태에 대해 ‘침묵의 카르텔’을 가동한 것에 비해 <조선일보>는 오히려 학생들을 ‘반지성 폭력꾼’으로 몰아간 것이다. <조선일보>의 기자나 데스크의 눈에는 한국의 대표적 신문사 사주의 어처구니없는 ‘반지성’은 보이지 않았다.

‘정현준 펀드’언론인 왜 안 밝혔나

최근 불거진 ‘정현준 게이트’ 문제도 마찬가지다. 언론·시민단체들은 “과연 언론이 정현준 사설펀드에 가입한 정·관계 인사들을 욕할 자격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코스닥을 띄우고 벤처열풍을 부추긴 책임이 언론에 있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지난 10월22일 정현준 불법대출 사건이 드러나면서 열흘이 지나도록 언론은 정현준의 사설펀드에 다수의 언론인이 차명으로 가입했을 가능성에 대해 한마디 언급이 없었다. 정·관계 인사와 함께 언론인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사건 초기부터 강하게 흘러나왔음에도 오로지 ‘정·관계 인사’에 대해서만 대서특필하다가 지난 11월2일부터서야 비로소 언론인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와 언론의 왜곡된 ‘권언관계’의 한 특징은 정권의 권력 누수가 생길 때 언론이 무참히 ‘물어뜯곤’ 했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오던 주장을 바꿔가면서까지 비판에 열을 올린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대해오던 각종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에 대한 보도는 대표적인 예. <조선일보>는 4월19일치 ‘증시에 동원가능 연·기금 최대 2조원’에서 “증권시장의 수요기반 확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정부산하 연·기금의 가용재원은 최대 2조원 안팎이 될 전망”이라며 연·기금의 주식투자 한도를 늘리기 위한 절차 등을 소개했다. ‘퇴직 적립금·연기금 200조원이 잠자고 있다’(6월23일치 45면)에서는 “시중 자금난을 해소하고, 주식시장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기업들의 퇴직금이나 각종 연·기금에 잠겨 있는 휴면자금 등 200조원으로 추정되는 재원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고 썼다.

하지만 최근 논조가 ‘확’ 바뀌었다. 10월17일치 사설에서는 “연·기금 주식투자 안 된다”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보완책을 강구해 실시하라는 식의 논조가 아니라 “공적 연금과 기금은 그 수익성보다는 안정성 확보가 최우선시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제까지의 보도태도에 대한 전면부정에 해당한다. 이전과 사정이 달라진 것이라곤 정부가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조처에 들어갔다는 것밖에는 없다. 특히 <조선일보>가 연금과 기금의 주식투자 확대에 긍정적인 보도를 했던 때는 4월17일 국내 증시 대폭락을 배경으로 깔고 있었던 터라, ‘상황이 바뀌었다’거나 ‘조건이 변했다’는 해명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내년 초부터 정부가 실시하기로 한 2단계 외환거래 자유화에 대한 보도도 마찬가지다. 한국금융연구원이 2단계 외환자유화 청사진을 발표한 지난 4월22일 이후 침묵을 통해 암묵적인 동조 내지 지지를 나타내거나, 심지어 정부가 규제를 덜 푼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던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최근 들어 보완책이 실시된다고 해도 ‘뭉칫돈 탈출’이 우려된다며 2단계 외환자유화 유보나 연기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동아일보>는 10월13일치 2면(뭉칫돈 해외유출 우려, 2단계 외환자유화 앞두고 조짐)과 8면(2단계 외환자유화 문제점, 자본도피-환란 무방비 우려), 10월20일치 10면 ‘외환자유화 보완대책의 허와 실’ 등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다. <중앙일보>는 10월18일치 1면과 5면에서 ‘뭉칫돈 해외로 새나간다’란 기획으로 보도했다. 이어 10월24일치 사설 ‘외환자유화 서둘 일 아니다’에선 “경제가 호전될 가능성도 크지 않은 현 시점에서의 외환자유화는 자본유출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가 보완책을 내놓았지만 신고와 처벌 강화 정도로 ‘큰 구멍’을 막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고까지 선언했다.

딴죽걸기, 남북관계 속도조절론

그런데 <중앙일보>는 경제담당 에디터 김수길씨의 ‘자본유출이 겁나거든’이란 중앙포럼(10월30일치 6면)에서 또 뒤집었다. 여기서 김씨는 “외환거래 자유화를 예정대로 하든말든 그 자체로는 지금과 달라질 게 별로 없다. 나갈 돈은 이미 나갔거나 지금도 나가고 있고 어차피 못 나갈 돈은 못 나간다”며 문제는 “근본적으로 엉망인 국내상황”이라고 주장한다. 분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 완전히 널뛰기식 보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조선일보> 등 신문들은 ‘속도조절론’을 제기했다. 10월10일 노동당 창건 55주년을 맞아 북한이 남쪽의 정부기관과 정당, 사회단체 30여곳을 지난 9월29일 초청한 이후 이 주장은 더욱 강도가 높아갔다. 그런데 조명록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의 미국 방문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을 전후해서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뒷전으로 밀어넣으며 평화정착과 같은 본질적 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언제는 속도조절 해야 한다더니, 이번에는 본질적 문제 해결이 더뎌진다고 아우성인 셈이다.

<중앙일보> 10월2일치 사설 ‘챙길 건 챙기고 속도조절?’은 이 신문들에 포진된 일부 냉전 언론인들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준다. “6·15 남북공동선언 100일을 넘긴 남북관계에 ‘속도조절론’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쪽에서 지난 3개월여의 ‘과속’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속도조절 필요성은 정작 우리가 제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북한측에서 제기했으면 뭔가 심상치 않다. ‘챙길 것은 챙겼으니 이제 후퇴’라는 말처럼 들린다.”

결국 남쪽에서 속도조절을 내세우면 괜찮고 북쪽에서 하면 문제라는 얘기다. 남북관계가 속도조절 단계에 접어들었다면 어쨌든 자신들의 뜻을 이룬 것인데도 ‘북한이 속도조절을 내세운다’며 떼를 쓰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이 신문들이 내세우는 속도조절론이 순수함보다는 딴죽걸기에 있음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

논리적 비일관성을 보이는 <중앙일보>의 수구적 색채는 최근 두드러진다. 이 신문은 10월7일치 사설 ‘북파요원 떳떳이 대우하라’에서 “정부는 북파요원을 공식 인정할 경우 무장공작원 밀파를 금지한 정전협정 위반을 자인하는 결과가 되므로 고민이라고 한다”면서도 북파요원들을 “냉전시대의 희생양”이라고 규정하고 정부에 대해 이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명예회복과 보상하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지난 6일 국제테러에 관한 북미 공동성명 형식으로 모든 형태의 국제테러에 대한 반대를 공식 천명하자, 이 신문은 사흘 뒤 사설 ‘KAL기 폭파책임 그냥 넘어가나’에서 “북의 명백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미 공동성명을 통해 우회적으로 그동안의 테러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모든 테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임에도, 북한에게 직접적으로 ‘테러국이었음’을 인정하라는 얘기다.

오로지 “네탓”뿐

냉전시대 북파요원에 대해 “우리는 북파공작원을 72년 이전까지 보냈고 북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으며 간첩활동이 아닌 작전적 임무가 대부분이었다”(<조선일보> 11월3일치 사설 북파요원, 묵살해선 안 돼)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도 서로이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는 한쪽 당사자만의 얘기다.

과연 이런 주장으로 냉전시대 남북 양쪽에 의해 저질러진 수많은 상처들을 어루만지고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상처를 네가 더 많이 입혔으니 네 탓이야’라는 식의 이런 주장이 탈냉전 시대의 지혜일 수 있을까. ‘냉전의 상처는 공동책임’, 탈냉전은 우리에게 이런 ‘역지사지’의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는 한 미국과의 단독 평화협정 체결을 내세우던 북한이 이를 더이상 고집할 수 없게 되고 남한을 참여시킬 수밖에 없게 된 큰 변화가 이 신문들의 시야에 잡히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조준상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sang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