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지적 게임이 나를 키웠다”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이어령 위원장이 털어놓는 ‘나와 논쟁’

“논쟁은 가장 치열한 대화다. 살아 있는 느낌은 대화에서 나오고 그 대화 가운데 가장 치열한 게 논쟁이다. 논쟁을 통해 난 성장할 수 있었다. 치열한 논쟁을 통한 자기 반성과 지적 확장이 내 지적 성장의 요체였다.”

이어령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전 문화부 장관)은 누구 못지않게 많은 논쟁을 벌여온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60년대 약관의 나이로 당시 문학계의 최고 거물들이었던 김동리, 조연현, 이현기씨 등과 일대 논쟁을 벌이며 등장해 이후 작고한 시인 김수영과의 참여문학 논쟁 등 일련의 논쟁으로 문학논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위원장이 보는 논쟁관은 바로 논쟁 양쪽의 공통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같은 분모를 지니고 나머지 부분에서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이 성립되지, 그렇지 않고 근본부터 다르면 논쟁자체가 성립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이 위원장은 두 가지를 꼽았다. 논쟁의 규칙, 그리고 수사다.

“논쟁은 물론 하는 순간에는 괴로워도 그 괴로움이 또한 즐거움이기도 해야 해요. 그래서 룰이 중요합니다. 그게 없으면 폭력적 싸움일 뿐입니다. 우리나라 논쟁은 그렇지 못해서 ‘상처뿐인 영광’으로만 끝나요. 룰이 제대로 지켜지면 이겨도 져도 불쾌하지 않고 서로가 지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스타일을 살리는 수사의 묘미도 중요합니다. 논쟁하면서 비꼬고 장난하는 낭만이 있는 지적 게임이어야죠. 예전 논쟁에는 비교적 풍류나 낭만이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룰도 없고 묘미도 없는 싸움으로 흐르는 경향이 강해요.”

문학평론가로 출발했던 그가 유명해진 것은 젊은 비평가로서 당대의 거물들과 직접 맞붙으면서였다. <표본실의 청개구리> 등 우리 현대문학의 걸작으로 추앙받던 작품들을 그는 과감하게 비판했다. 김동리, 서정주 시인 등 문단 거물들과도 직접 몇 차례씩 반론이 오가는 논쟁을 펼쳤다. 대중은 젊은 평론가 이어령의 등장을 주목했고, 그는 유명해졌다. 그뒤로도 그는 많은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벌였던 수많은 논쟁 가운데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 논쟁은 김수영 시인과 벌였던 ‘참여문학 논쟁’이라고 한다. 원래 김수영 시인은 이 위원장의 집에 찾아와 자고 가기도 하는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논쟁을 벌였다고 해서 척지고 원수가 되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김수영 시인이 ‘책상 속의 불온 시가 햇빛을 볼 때 진정한 문학이 나온다’는 글을 발표했어요. 거기에 내가 반론을 펴면서 논쟁이 붙어서 네다섯 차례 반론과 재반론이 오가는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저는 문학이 도구언어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값어치를 가진다는 거였죠. 김수영 시인은 예술의 사회기능을 강조한 거고, 난 예술의 고유기능을 강조한 겁니다. 그래도 나와 김 시인은 기본적으로 통하는 게 있었어요. 그 사람도 언어에 존재론적 요소를 지닌 사람이어서 나와 호흡이 맞는 사람이었어요. 공통분모가 있고 비슷하니까 논쟁이 되는 거지 그러지 않으면 논쟁이 안 되죠. 논쟁하면서도 전화하고 술먹으로 가고 평소처럼 살았어요.”

한때 문화권력에 도전하는 투지넘치는 청년이었던 그도 이제는 또다른 문화권력 같은 존재가 됐다. 과연 누가 제대로 논쟁을 걸어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그는 권력론으로 답을 대신했다. “권력이란 휘두를 수 있어야 권력이죠. 저는 평생 어느 모임이나 파벌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휘두를 권력이 없어요. 그리고 이제 저는 남과 대화하는 것보다 제가 걸어온 길을 살피며 저와 대화해야 할 나이가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