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0년12월20일 제339호 

[표지이야기] “안 돼야 안 돼야…” 조바심 30년 세월

5대째 천주교 집안에서 성장한 두 사제의 가족사… 어머니의 근심은 오늘도 계속된다


(사진/노모 장순례씨와 함께한 형제신부. 어머니 앞에선 그들도 어리광쟁이가 된다)


좌 정현, 우 규현. 12월15일 전주의 큰형 집, 오랜만에 만난 두 아들은 미수(米壽)의 노모 옆에 붙어앉아 정겨운 입씨름을 벌인다. 어머니가 “어릴 적에 공부는 이 사람(문규현 신부)이 잘했제”라고 운을 떼자 형 문정현 신부가 “그럼 난 말썽꾸러기였소?”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응? 큰 신부님이 정은 많아. 어릴 때부터 내 싸안고 살았제”. 이번엔 동생 문규현 신부가 “그럼 셋째아들은 안 이쁘요?”라며 짐짓 어리광을 부린다.

정담을 나누는 내내 노모는 주름진 손으로 아들이 가져온 ‘한겨레 통일문화상’ 상패를 쓰다듬고 있었다. “유명헝게 감옥갔제.” 이젠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우며 아들 자랑을 할 여유가 생겼지만 어머니는 지난 30년 세월을 한결같이 조바심치며 살아왔다. “안 뒈야, 안 뒈야.” 운동하는 두 아들의 손을 붙들고 수백번 당부했던 말이다.

‘기브 미 초콜렛’공포의 경험

전북 익산군 황등면. 호남평야의 너른 들판이 두 신부의 고향이다. 아버지 문범문(79년 작고)씨와 어머니 장순례씨 슬하의 4남3녀 중 문정현 신부는 둘째, 문규현 신부는 셋째아들이다. 밭 몇 뙈기밖에 없는 살림이었지만 다행히 아버지가 과자 만드는 기술이 있어 그다지 궁핍하지는 않았다. 문씨 집안은 5대째 내려오는 독실한 천주교 집안.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했을 때도 온 가족이 이불 밑에 숨어 하루 세번씩 예배를 드릴 만큼 믿음이 깊었다. 문정현 신부는 “어릴 때 들었던 천주교 103위 성인들의 순교 이야기는 고난이 닥칠 때마다 큰 힘이 됐다”고 돌이킨다.

문정현 신부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미군에 대한 기억이 있다. 인민군이 물러간 동네 초등학교에 미군이 들어왔다. 아이들은 어설픈 발음으로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며 몰려들었고, 그 행렬에 소년 정현도 끼어 있었다. 미군병사 두명이 줄서서 기다리던 그를 불렀다. 뒷산으로 그를 데려간 미군들은 소년의 머리 위에 깡통을 얹어놓고 ‘표적 맞추기’ 놀이를 했다. 문정현 신부는 “아직도 미군을 보면 그때의 공포가 살아난다”고 치를 떤다.

곤궁한 시절이었지만 두 소년은 믿음 안에서 별탈없이 성장했다. 이웃들은 어려서부터 두 소년을 장래에 신부가 될 사람이란 뜻으로 “장래 신부”라고 불렀고, 어머니는 “우리 아들 신부 되면 영광이제”라고 말하곤 했다. 신부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문정현과 문규현은 소(小)신학교(서울 동성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문정현은 가톨릭신학대학, 문규현은 광주가톨릭대학을 각각 졸업했다.

문정현 신부는 66년, 문규현 신부는 76년에 각각 사제서품을 받았다. 평온하던 천주교 집안에 근심이 깃들기 시작한 것은 76년 ‘3·1 구국선언 사건’으로 문정현 신부가 구속되면서부터. 이후 반세기 내내 가택수색과 연행, 구속의 불안한 날들이 이어졌다. 어머니는 기관원이 덮칠 걱정에 아들의 책을 태워야 했고, 유신말기 체신청 공무원이었던 맏형은 장관에게 불려가 “동생들 간수 잘하라”는 호통을 들어야 했다. 대학생이던 조카는 미문화원 점거에 가담하기도 했다.

기관원 덕에 어머니 목숨을 구하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사사건건 두 사람을 따라붙던 기관원 ‘덕’에 어머니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린 90년, 한 기관원이 문정현 신부의 사제관으로 김일성 주석이 고위급회담 참석자를 통해 보낸 선물꾸러미를 전하러 왔다. 그 기관원은 자기 앞에서 꾸러미를 풀어보라고 요구했지만 순순히 응할 문정현 신부가 아니었다. 기관원은 사흘 동안 사제관에 죽치고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의 속이 편할 리 없었다. 위장병이 도져 약을 먹었다. 하지만 사각 비닐봉지에 든 그 약은 위장약이 아니라 근육통 약이었다. 병원에 실려가 위세척을 받고 퇴원하려다 “이왕 온 김에 진단이나 받아보자”며 엑스레이를 찍었다. 뜻밖에 위암이란 진단이 나왔고, 그뒤 어머니는 수술을 받았다.

노모의 손을 꼭 잡고 얘기꽃을 피우던 두 신부가 어둠이 짙어지자 큰형 집을 나선다. 마루까지 따라 나와 두 아들을 배웅하는 노모는 “조심혀”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12월16일은 문정현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은 날이다. 그래서 주말쯤 온 식구가 모여 조촐한 식사 자리를 가지려고 했지만 올해에도 무산됐다. 주인공인 문정현 신부가 만사 제쳐두고 파주의 쿠니사격장으로 ‘데모’하러 갔기 때문이다. 노모는 요즘도 “안뒈야, 안뒈야” 하신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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