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0년12월12일 제338호 

[표지이야기] 표지판만 꽂으면 미국 땅?

농토 빼앗길 위기의 경기도 파주군 진동면 농민들… 일방적 출입금지 조처에도 정부는 무대응


(사진/누가 이들의 땅을 미국에 넘겼는가.생존의 기반인 농토를 빼앗긴 진동면 초리의 농민들은 사정을 하소연할 곳조차 없다)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초리는 또 하나의 ‘매향리’이다. 농사짓는 것밖에 모르던 농민들이 지금 미군과 국방부를 상대로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나무 한 그루 남지 않은 민둥산엔 폭격으로 시커먼 구덩이가 군데군데 패여 있고, 멀리 보이는 초소와 사격연습을 알리는 붉은 깃발은 이곳이 사격장임을 한눈에 알게 해준다. 바로 스토리사격장이다.

이 지역은 1973년,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에 의해 약 215만평의 땅이 공여지가 됐지만, 땅 주인들은 97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방부가 사유지를 공여지로 미군에 제공하면서 주민들에게 보상은커녕 통보도 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각종 제한과 포탄소음, 탄피세례 속에서도 농사는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미군이 공여지에 대한 사용권을 거세게 주장하면서 국방부가 사유지 매수에 나섰다.

수용지 보상액은 평당 1만원선. 협의취득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토지수용법에 의해 공용수용 한다는 입장이다. 보상액이 턱없이 낮은데다, 실제 이곳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80%는 땅주인이 아닌 임대농을 하고 있어, 300여 농가 1천여 농민들은 하루아침에 생계수단을 잃게 될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 10월 말, 미군이 영농출입전면금지 조처를 내리면서 차단기를 설치해 농민들이 땀흘려 가꾼 6만여평의 다 익은 벼를 수확하지 못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차단기를 부수고 들어가 농작물을 수확하기는 했지만 이미 낟알의 3분의 1은 떨어지거나 말라버린 상태였다. 이곳은 미2사단 소속 탱크 100여대가 건조를 위해 도로에 널어놓은 벼 600여 부대를 짓이기고 지나가 주민들의 반발을 샀던 지역이기도 하다.

지금 스토리사격장 내 논과 밭에는 ‘경고’, ‘미정부재산’, ‘접근금지’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박혀 있다. 스토리사격장폐쇄대책위원회 조봉연(44)씨는 “미국 정부재산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SOFA상으로도 사용권을 주는 거지 재산권을 주는 건 아닙니다. 이걸 국방부 용산사업단에서 설치했어요. 이 정부가 한국 국민의 정부라 할 수 있나요?”라며 분노한다.

사격장 안의 또 하나의 표지판. 사격피탄지 바로 아래 웅덩이에 세워져 있는 표지판에는 ‘이곳의 물을 사용하지 마시오. 사격장의 중금속을 침전시키는 정화시설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바로 이 웅덩이가 ‘중금속 침전지’라는 것인데, 눈을 씻고 봐도 그냥 웅덩이일 뿐 정화시설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안하무인격 미군과 배알도 없는 한국 정부



실제로 사격장 곳곳에 표적으로 설치된 헬기, 장갑차, 승용차 같은 군사폐기물과 총탄과 포탄에서 나오는 납과 카드뮴 중금속으로 사격장은 심각하게 오염돼 있다. 비가 오면 이 웅덩이의 물이 넘쳐 하류에 있는 임진강으로 그대로 흘러들어간다. 주민들이 스토리사격장 바로 아래 금파취수장을 건설하려는 파주시의 계획에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민들이 하루아침에 농토를 빼앗기게 생겼는데, 미군은 한국 정부에 미루고, 정부는 미군에 떠넘기고, 대체 우리는 누구를 대상으로 싸워야 합니까?” 지난 6일 용산미군기지 앞 소파개정시위에서 만난 장파리 청년회장 신동국(40)씨는 이렇게 반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73년처럼 순순히 빼앗기지 않겠다고 말한다. 농사를 천직으로 살아온 이들에게는 더이상 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기 때문이다.

스토리사격장의 두개의 표지판. 이 땅을 미국 정부의 재산이라 주장하는 안하무인격 미군과 그 표지판을 만들어 바치는 배알도 없는 한국 정부의 현주소는 지금의 한-미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유진/ 녹색연합 사업1국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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