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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핏줄’에 갇힌 사랑을 깨라! 버려진 아이들을 가정의 품으로 인도하는 수양·입양부모들의 행복, 고통, 그리고 거대한 사랑
입양한 뒤 ‘어른’이 된 사람들
하지만 여기, 버려진 아이들에게 가정과 품을 안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은 피보다 진하다’는 명제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 수양부모, 양부모란 익명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 “내 아이만”이란 핏줄의식이 유난히 강한 한국에서 남의 아이를 키우는 일은 “지옥으로 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어떤 까닭으로 ‘남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키우고 있을까. 이들이 남의 아이를 기르면서 겪는 기쁨과 아픔은 어떤 것일까? 대한민국과 우리 사회는 이들의 인권을 얼마나 소중히 하고 있나? 11월24일 오후 4시 서울 정릉의 한국수양부모협회 사무실에서 열린 ‘제14차 수양부모 토론회’. 수양부모들이 모여 아이를 키우는 경험담을 서로 나누고, 수양부모로서 겪는 고충을 풀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신승호(45)씨는 유일한 ‘아빠 참석자’였다. 불임부부인 신씨 부부는 느지막한 나이에 아이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었다. “아이고… 저놈이 사람 죽이네요. 죽여.” 8개월 된 현빈이를 바라보는 신씨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결혼한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여태껏 아기가 없었던 신씨 부부. 현빈이를 데려온 지 두달째 접어들지만 현빈이는 신씨 부부의 생활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전에는 둘만 있으니 술 먹으면 서로 짜증내고 토닥거리곤 했거든요. 요즘은 현빈이 재롱에 집안이 편해졌죠. 웃음이 그칠 날이 없고요.” 요즘 들어 세 식구가 함께 외출하는 일도 부쩍 잦아졌다. 전에는 모임이 있어도 부부가 따로 가곤 했는데 요즘은 엄마가 아이를 업고 나서면, 아빠는 기저귀 가방을 들고 쫓아간다. 신씨는 “애 하나가 사람을 그렇게 바꿉디다”라고 자랑하고, 신씨의 부인은 “애 같던 남편이 어른이 돼가는 것 같다”며 좋아한다. “수양부모가 되고 난 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더 넓어지고, 사람에 대해 더 너그러워졌다”고 말하는 신씨 부부. 현빈이를 입양해 키우고 싶은 게 가장 큰 바람이다. 혹시 친부모가 현빈이를 데려간다고 해도 계속 다른 아이를 맡아 수양부모를 할 생각이다. 물론 현빈이와도 인연을 끊지 않고 평생 왕래하고 싶어 한다. 같은 날, 경기도 포천 신북면 계류리 자택에서 만난 홍삼숙(38)씨는 결혼한 적이 없는 처녀지만 자식이 네명이었다. 부모가 포기하고, 사회가 책임지지 못한 아이들을 홍씨가 맡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잘생긴 큰아들 준석이(7), 수줍음 잘 타는 둘째 준혁이(5), 욕심꾸러기 셋째 민현이(4) 그리고 재롱둥이 막내딸 여진이(3)(가명). 비록 내 탯줄로 낳은 것은 아니지만 홍씨는 15년의 ‘산고’ 끝에 이 아이들을 자식으로 얻었다. 홍씨는 이십대 초반부터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참 예뻐했다. 젊은 시절 내내 집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는 게 그의 유일한 꿈이었다. 열한살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어서인지 버려진 아이들에게 유난히 마음이 갔다. 미래의 내 아이들을 위해서 ‘돈 못 버는’ 직업이었던 교회 전도사 생활도 그만뒀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돈 버는 일에 나섰다.
“왜 꼭 결혼해야 입양할 수 있나요?”
그를 “엄마”라고 부르는 모든 아이들이 다 소중하지만 홍씨는 특히 올 6월 맞이한 첫 번째 수양아들 용석이(8·가명)를 잊을 수가 없다. 집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말썽을 피우던 용석이는 이미 네 군데 수양부모 가정을 거치며 적응에 실패한 아이였다. 홍씨 집에 와서도 용석이의 심통은 계속 됐다. 도통 노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하루종일 홍씨를 따라다니며 뻔히 아는 질문을 쏟아부으며 귀찮게 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어른 눈치를 살폈다. 이런 용석이를 보고 이웃들은 “아이 눈빛이 심상치 않다” “저런 놈 키워서 뭐하느냐?”고 잔인한 말들을 내뱉었다. 그때마다 홍씨는 “저러니까 부모도 버리고, 다른 집에서도 적응 못한 것 아니겠느냐”며 “제발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용석이가 더욱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세살배기 민현이가 오면서부터다. 홍씨가 잠시라도 눈을 떼면 용석이는 민현이를 심하게 때리고 물어뜯었다. 가만두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홍씨는 용석이를 무릎에 앉히고 “어디서 이런 행동을 배웠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아빠가 술먹으면 그랬어요”라며 울먹였다. 마음이 아렸다. 홍씨는 마침내 용석이는 아빠 역, 홍씨는 용석이, 민현이는 용석이의 친동생 민지 역을 맡는 역할바꾸기 놀이를 통해 용석이의 상처를 읽어낼 수 있었다. 용석이는 술취한 아빠 흉내를 내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용석이 무릎꿇어! 민지도!” “너희가 잘못했지? 맞아야겠어!” 그리곤 회초리를 들고 심하게 홍씨와 민현이를 때렸다. 용석이는 그뒤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홍씨는 “녀석의 가슴에 맺혔던 게 그때 좀 풀렸던 모양”이라고 돌이켰다. 아이들과 함께 집 앞의 텃밭을 일굴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홍씨는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이 참 많다. 특히 입양제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왜 꼭 결혼을 해야만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입양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아빠가 있어야 제대로 큰다는 건 너무 단순한 논리 아닌가요? 전 돌보는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눈치 볼 남편이나 친자식이 없는 저 같은 사람이 어쩌면 아이들에게 더 적합한 환경일 수도 있죠.”
편견에선 아직 자유롭지 못해
11월23일에는 경기도 광명시 광명3동 최승욱(33)·조원배(38)씨 부부를 찾았다. 이들 부부는 친자식(용우·6)이 있는데 남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현진(4)이다. “결혼하고 난 뒤 바로 용우를 갖게 됐는데 이때는 멋모르고 길렀어요. 둘째 계획은 없었고요. 그런데 자식이 하나밖에 없다보니 용우가 여간 외로워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용우에게 친구를 갖게 하고, 좋은 일도 하자는 생각에 남의 아이를 입양하거나 키우고 싶어 문을 두드렸죠.” 부인 최씨의 말이다. 최씨와 현진이의 만남도 1년여의 산고 끝에 이뤄졌다. 입양계획을 세우고 최씨는 먼저 관할구청에 연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담당자는 수양부모나 위탁모가 뭔지도 잘 모르는 듯 무성의했다. 이번에는 한 고아원에 연락했다. 이 고아원에서는 “우리 원에는 입양할 만한 아이가 없다”고 말했다. 입양아는 친부모가 친권을 포기해야 하는데 고아원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입양을 하고 싶어도 친부모의 친권포기 각서가 없는 한 입양이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최씨도 한동안 길을 찾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모처럼 맘먹은 일인데다 애초 반대하던 남편에게 마지못해 그러마 하는 응답까지 얻었는데…. 그렇게 1년여가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최씨는 우연히 TV를 보다 수양부모협회가 있다는 걸 알게 돼 결국 현진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현진이와도 벌써 1년6개월. 최씨는 매우 만족하고 있으며 가능하다면 입양을 통해 현진이에게 영원한 가정을 갖도록 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현진이를 생각하면 최씨는 때때로 가슴이 미어진다. 수양부모협회에 알아보니 현진이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인해 스스로 세상을 저버렸다. 아빠는 아이들을 맡기면서 언젠가 돈 벌면 데려가겠다고 하고는 소식이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지만 뇌졸중과 노환으로 양육할 수 없다. 현진이는 또 위로는 6살 되는 오빠와 아래로 3살짜리 남동생도 있다. 이들 가족이 다시 함께 만나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소식없는 아빠가 친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현진이의 입양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열서너평 될까 하는 연립주택에서 전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최씨는 “비록 가난한 살림살이이나 현진이가 우리 가족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며 기뻐했다. 그런 최씨도 이웃들에게는 현진이를 조카라고 속인다. “현진이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을까봐, 혹은 동네사람들이 자기 집 애들에게 현진이와 놀지마라고 할까봐 그랬습니다. ‘아이를 못 낳아 남의 아이를 데려다 키운다’는 둥 이웃의 입방아도 두려웠고요.” 최씨는 아직은 이웃의 편견에는 자유롭지 않았다.
끝까지 키운다, 장애아라도…
11월25일 오후 대전시 둔산동의 한 아파트. 거실에 들어서자 신씨가 낮은 목소리로 맞았다. 아빠 전순걸(38)씨는 세살배기 하영이를 마루에서 재우고, 엄마 신주련(38)씨는 태어난 지 10개월 된 아영이를 가까스로 재우고 잠시 쉬던 참이었다. 너른 이마와 가늘게 처진 눈을 가진 맏딸 하영이는 아빠를, 가늘고 여린 체구에 쌍꺼풀이 있는 큰눈이 예쁜 둘쨋딸 아영(3)이는 엄마를 쏙 빼닮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영이는 아빠딸, 아영이는 엄마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하영이와 아영이는 태어날 때부터 전씨 성을 가진 아이들이 아니었다. 하영이는 98년 5월에, 아영이는 지난 3월에 이 집으로 왔다. 피를 나눈 자식은 아니지만 이 부부는 두 아이를 “다른 사람의 태에서 태어난 우리 딸들”이라고 여기며 주변사람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굳이 입양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공개 입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 이날은 아영이 아빠가 회사에 출근한 마지막 날이었다. 지난 10월24일 아영이가 선천성 뇌기형 판정을 받자 부부는 모든 생활기반을 포기하고 서울로 이사가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아영이를 치료할 만한 병원과 재활시설이 대전에는 부족한 탓이었다. 한시라도 급한 아영이의 치료를 생각하면 서울행을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이들 부부가 처음 입양할 때부터 아영이의 장애를 알았던 것은 아니다. 입양 뒤 잔병치레 한번 없이 튼튼하게 자란 하영이와는 달리 아영이는 유난히 발달이 늦고 7개월이 다 되도록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고 느낀 아영이 엄마는 뇌성마비가 아닐까 염려해 백방으로 병원을 찾아다녔다. 결국 지난 9월 한 병원에서 ‘선천성 뇌기형’ 진단을 받았다. 간질, 행동장애, 정신장애, 언어장애…. 아영이의 장애는 심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엄마는 안타까움에 대성통곡을 했지만 ‘끝까지 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영이 아빠도 같은 마음이었다.
기쁨만큼 고통도 깊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으레 그렇지만 남의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양육의 기쁨과 절망의 진폭이 더욱 깊고 크다. 사람들의 편견도 편견이지만 아이와도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과도 치열한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1995년 이래 11명의 버려진 아이를 키운 경력이 있는 박영숙 한국수양부모협회장은 “아이를 키울 때마다 반성하고 반성하고 또 반성하건만 자신에게 일어난 미묘한 갈등은 키워보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다”고 토로한다. 최근 박 회장은 이를 ‘수양부모의 희망과 절망’이란 글을 통해 낱낱이 고백한 바 있다. “성인군자처럼 대인처럼 큰마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오지만 그 순간부터 자신이 얼마나 소인이며 얼마나 미성숙한 인간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느낀다.… 지금까지 키운 11명의 얼굴 하나하나가 때로는 행복으로, 때로는 비수로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 그는 순희와 민희(가명)를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를 거쳐간 많은 아이들이 있었지만 이 두 아이는 1년간 데리고 있다가 결국 중도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박 회장의 가슴 한켠에는 순희와 민희에 대한 아픈 기억이 똬리져 있다. 순희와 민희의 아버지는 이들에게 앵벌이를 시키거나 구타를 일삼는 등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결국 아동학대로 고발돼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박 회장은 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아이들이 아버지에 대한 불안으로 가위눌리며 소리지를 때였다고 한다. 그럴 때는 그 자신도 그들의 아버지한테 도망치는 꿈을 꾸기도 했단다. 여기에다 아이들도 “아줌마가 모든 걸 다해주어야 한다”며 제멋대로인데다 도벽도 심했다. 결국 그는 아이들을 더 키우길 포기했다. 그 아이들에 대한 죄값이려나. 그뒤 다른 아이 서너명을 더 받아 키웠던 박 회장은 많은 수양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움을 내보일 때, 이런 경험담을 고백하며 그들에게 “스스로 완벽한 수양부모가 되도록 애쓰지 말라”고 권고한다. “특히 친자식과 함께 키우는 경우는 더 그래요. 남의 아이와 내자식에게 정을 똑같이 줄 수는 절대 없어요. 키워보니 정이 가는 순서가 따로 있더군요. 정은 키워온 순서대로 가요. 뱃속부터 키워온 내자식, 그다음에 5년 키운 애, 그다음, 그다음 식으로…. 이렇게 아이들마다 조금씩 나누다 햇수가 깊어지면 어느 날 똑같이 맘이 쓰이더라구요.”
당신은 그들의 상처를 아는가
신승호, 홍삼숙, 최승욱·조원배 부부, 신주련·전순걸 부부, 박영숙 회장….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절망감에도 꿋꿋이 남의 아이를 내 아이로 키우는 사람들. 그들의 사연 곳곳에는 수양 및 입양부모들의 희망과 절망은 물론 동시에 대한민국 아동복지의 인권지수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저여자 아이를 못 낳는 여자 아냐”, “저 사람들 속셈이 뭔지 모르겠어, 정치하려는 거 아냐”, “왜 남의 아이를 키워. 알다가도 모르겠어,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이렇듯 작은 나눔도 하지 않으면서 비꼬기만 하는 사람들의 지독한 편견, 학대와 유기 속에서 기본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는 대한민국 아이들의 아동복지의 현주소, 버려진 아이들에게 가정을 찾아주는 입양을 활성화하기는커녕 되레 고아수출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채 국내외 입양을 가로막는 각종 입양제도와 정책. 내 아이만 챙기는 지독한 혈연중심주의…(상자기사 참조). 한국수양부모협회 박영숙 회장은 “비록 수양 및 입양부모들의 사랑이 1%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1%도 나누지 않는 99%의 대한민국 국민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했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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