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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성이 다른 내 귀여운 ‘새끼’들 버려진 아이들 모아 키우는 최연화씨의 미니고아원… “아이들 떠나 보낼 때 제일 겁난다”
아이들을 태운 승합차는 학교를 벗어나 아스팔트길을 잠시 내달리는 듯하다 이번에는 겨우 차 한대 다닐까말까한 논길쪽으로 접어든다. 하얀 먼지를 내뿜는 차량. 그 한편에는 추수를 마친 들녘이 한적하고, 오른쪽 메마른 시내에는 갈대꽃이 눈꽃처럼 하얀 물결을 이루고 있다.
고아원 원장이 꿈이었던 여자
꼬불꼬불 논길을 숨가쁘게 달리던 승합차가 마을 어귀를 지나 골목길에서 멈춰선다. 아이들이 재빨리 차문을 열어젖혀 언덕을 향해 뛰어오르고, 여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저 뒤따른다. 그들이 다다른 곳은 언덕 위, 대덕교회에 딸린 대덕어린이집이다. 여자는 이곳에서 두명의 아이를 더 차에 태운다. 승합차는 또 한참 달리고서야 교회 반대쪽 마을의 한 가정집 앞에서 멈춘다. 우르르 차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 집은 한순간에 학교 놀이터처럼 떠들썩하다. 과자를 찾는 아이, 우유를 찾는 녀석, 가방을 내던지는 놈, 승합차를 줄곧 쫓아온 취재진을 잔뜩 경계하듯 겨누어보는 소녀. 마당에 나가 킥보드를 타는 꼬맹이…. “모두 이리와.” 여자의 외침에 아이들이 식탁 앞으로 우르르 몰려와 앉는다. 5개의 그릇. 우유를 곁들인 간식을 마주하자 집은 금세 조용해진다. “늘 이렇답니다.” 그제서야 여자와 마주앉는다. 최연화(48)씨다. 5명의 아이들은 모두 그가 데려다 키우는 ‘새끼들’, 동진(11), 소라(9), 소희(8), 연욱(6), 다운(6)이다. 소라, 소희는 친남매이고, 나머지는 전부 성이 다르다. 오늘따라 손님이 왔는데도 막내 연욱이는 풀이 죽어 있다. 동진이에게 묻자 “어제 까불다 나한테 한대 얻어터져 그런 것 같다”고 실룩인다. 까무잡잡한 얼굴의 다운이는 취재진을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다. “다운이는 아직 온 지 얼마 안 돼 낯선 사람을 기피합니다. 사진찍는 것도 싫어하죠.” 최씨가 취재진을 노려보는 다운이를 변호한다. 최씨가 말을 끝낸 뒤 다운에게 한마디 보탠다. “김다운, 엄마가 속옷 예쁘게 입으라고 그랬지, 빨리 속옷 예쁘게 넣어….” 최씨가 다운이 옷차림을 살피는데, 집은 어느새 한바탕 웃음망울이 터지며 다시 시끌벅적하다.
나이든 아이들은 가정위탁도 어려워
“어렸을 때 꿈이 고아원 원장이었습니다. 비록 내 핏줄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더불어 하루종일 정답게 시골학교에서 어울리는 게 제 바람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폐쇄된 학교를 구입해 아이들을 맘놓게 뛰어놀게 하고 싶은데, 이곳 몇 군데를 알아보니 너무 비싼 거예요.” 얘기 도중 또 한명의 아이가 가방을 메고 들어선다. 수진(11)이다. 수진이는 소라, 소희 자매의 오빠. 벌써 6명의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렇지만 아직 한명이 집에 오지 않았다. 바로 최씨의 유일한 핏줄, 수산나(11·초등 4학년). 수산나는 안성 시내 비룡초등학교에 다닌다. 그러나 ‘최씨의 아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녁 6시께는 두명의 아이가 더 최씨집을 찾아온다. “이웃동네 아이인데 엄마, 아빠가 일 나가 늦게 오기 때문에 유치원을 끝낸 뒤부터 부모가 데려가는 10시까지 제가 맡고 있죠.” 원종(7)·민종(6)이 형제다. 민종이는 오른쪽 손목 아래가 없는 장애아고, 원종이도 지능이 박약하다. 그래서 이들은 여섯살이 넘었지만 대소변도 아직 못 가린다. 최씨네 집은 이래저래 아이들만 9명. 그야말로 미니고아원인 셈이다. “애들이 많다거나 힘들다거나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이게 이미 제 생활이 된 지 오래니까요….” 최씨네 집에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95년부터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남편 이훈구(52)씨와 딸 수산나와 함께 솜털집을 하며 비록 방 2칸짜리 가난한 집이지만 단란하게 살았다. 그런데 그해 어느 날, 이웃의 한 아주머니가 가정불화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되자 딸을 맡아달라고 부탁해왔다. 이를 거절할 수 없었던 최씨는 수산나의 방을 비워 아이의 방으로 마련해 애를 잠시 맡았다. 당시 최씨의 생각은 간단했다. 아이를 잘 붙잡아두면 엄마가 아이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딱히 좋은 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애를 봐주고 엄마가 일자리를 얻으면 이 가정이 깨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아이를 맡아 키웠을 뿐이죠.” 이 아이는 나중에 가정이 회복돼 아빠가 데려갔다. 98년 12월, IMF의 겨울바람이 안성 땅을 휘감아돌 때, 연욱이와 지현(3)이를 동시에 맡게 됐다. 최씨는 당시 구제금융사태로 넘치던 노숙자들을 위해 안성제일장로교회 한켠에 무료급식소인 ‘사랑의 잔치국수집’을 열었다. 그는 당시 노숙자들을 위해서는 공짜, 일반인들에게는 이들을 위한 후원금 명목으로 1천원을 받았다. 이 급식소를 이용하던 할아버지들의 손을 잡고 추위에 떨던 아이들이 연욱이와 지현이었다. 최씨는 이들을 도저히 할아버지들 밑에서 떨게 할 수 없었다. 지현이는 1년 반 정도 최씨집에 머물다가 눈물을 잔뜩 안기고는 얼마 전 할아버지를 따라 떠났다. 그해 여름 장마철, 이번에는 수진이 삼남매가 최씨 집을 두드렸다. 수진이네는 동네이웃이었는데, 알코올중독자인 아빠로 인해 엄마가 그만 집을 나가버려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게 된데다 밀린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야 할 신세였다. “하루는 수산나가 그러는 거예요. 엄마, 수진이네 이제 저 앞 다리 밑에서 살아야 한대요.” 보다 못한 최씨는 애들을 집으로 오라고 했다. “며칠 재워줄까 했는데 어느덧 2년이 다 흘렀군요. 소희는 제 손으로 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러다 99년. 이번에는 한국수양부모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다운이와 동진이를 맡았으면 한다는 전갈이었다.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이나 위탁의뢰된 아이들 중 나이많은 아이들은 입양은 물론 가정위탁도 상당히 어렵다. 양부모나 수양부모들조차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는 나이많은(?) 애들은 다루기가 힘들어서 기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갈곳이 별로 없거나 가더라도 내쫓길 확률이 높다. “동진이도 그런 경우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동진이는 나이는 초등학교 4학년 되지만 아직 초등 2학년생입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를 제 입맛대로 가려 키울 수는 없었습니다. 동진이는 단지 미혼모의 아이라는 것만 알려져 있어요.” 가장 늦게 최씨네 식구가 된 이는 다운이다. 온 지 이제 6개월째. 다운이도 어떤 연유에선지 이곳저곳 거쳐 최씨집으로 오게 됐다. 다운이는 아직 모든 게 낯이 선가보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다운이는 아이들 중 매우 조숙하고 어른스러워요. 이곳에 와선 잘놉니다.” 가능한 대로 아이들 장점을 찾아 예뻐하는 최씨의 마음자리가 도드라져 보인다.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최씨는 그동안 언론과의 인터뷰를 기피해왔는데, 이제는 맘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좀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이 더이상 없길 바라는 맘”에서다. 최씨는 왜 이렇듯 남의 아이를 키울까. “어릴 적 엄마가 그랬어요. 먹을 걸 다 먹고, 입을 걸 다 입고, 남 구제 못한다고요.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니 그보다 (아이들을 키우는 이유를 굳이 대라면) 저 버려지는 아이들을 잘 키워놔야 결국 내아이가 보호를 받는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남의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아이를 위한 일이란 게 최씨 생각이다. 그렇지만 최씨에게도 남의 아이 키우는 두려움이 있다고 한다. “내가 잘못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늘 가지고 있다는 것. 최씨는 본디 봉사정신이 몸에 붙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97년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이미 신장기증을 했고, 노숙자를 위한 사랑의 잔치국수집을 하면서도 터미널에서 차비가 없어 대합실에서 잠자리를 청하는 실업자에게 차표를 끊어주기도 했다. 아이들과 더불어 사는 생활이 행복하다는 최씨지만 그에게도 슬픔이 물밀듯 밀려올 때가 있다. “아이들을 떠나 보낼 때가 제일 겁나요. 못 봐요. 며칠 전부터 잠도 못 자고 몸살을 앓습니다. 가끔 주정뱅이 아빠가 데려가겠다고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철렁합니다. 또 아이들 아플 때도 맘이 아파요. 버려지는 아이들이라 예방접종을 안 한 탓에 자주 아파요.” 또 하나. 친딸 수산나가 그의 가슴 한쪽을 아리게 한다. “수산나에게 가장 큰 소원을 물으면 아빠, 엄마와 함께 세 식구만 단란히 식사하는 것이라고 늘 말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말 맘이 아팠죠.” 취재노트를 접는 기자에게 최씨가 한마디 보탠다. “그런데 얼마 전 수산나에게 소원을 물으니 엄마처럼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 뭐예요.”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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