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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DJ정권 산산조각나는가 각종 개혁은 패착으로 끝나고 지지세력은 등을 돌렸다, 이제 희망은 없다?
DJ정권 초기 권력핵심에서 일했던 여권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농민 10만여명이 농가부채경감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도로를 점거하고 나선 11월21일 기자를 만나 이렇게 하소연했다.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해 지지기반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게 집권당의 이점이다. 특히 DJ정권은 소수정권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정책으로 큰 규모의 집단을 하나씩 묶어내야 한다. 그래서 지지기반의 재생산구조를 형성해 소수정권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집권당으로서 정책수단을 갖고 있는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정책을 입안, 집행하고 그 정책의 수혜자들을 지지계층으로 끌어들인 뒤 다시 그들을 개혁의 응원군으로 삼아 개혁정책의 추진력을 얻어나가야 했지만, 오히려 현실은 거꾸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쉬운 개혁부터 추진했어야 했다
사실 DJ정권은 애초부터 기반이 취약한 소수정권이었다. 그럼에도 집권이 가능했던 것은 망국적인 지역감정 속에서도 DJP연대를 축으로, 노동계, 농민, 시민단체 등 진보·소외세력의 힘이 하나씩 보태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반적인 민심이반 현상의 와중에서 거꾸로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지지기반들의 ‘보태진 힘’이 모두 떨어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권 내부에서는 “어떤 정책이든 반대파의 저항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지지세력의 이반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더욱이 소수정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면 김대중 정권은 이들 지지세력 확충을 위한 정책수단들을 동원하지 않고 손놓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김대중 정권은 그동안 의욕적으로 개혁정책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개혁정책들은 하나같이 졸속추진, 국민불편 등의 논란을 빚으면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서 오히려 정치적 부담이 되는 패착이 되고 말았다. 특히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대처하기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국민연금 확대, 의약계 부조리와 약물 오남용을 막을 의약분업 등 복지관련 개혁안들은 국민반발에 따른 사회적 후유증을 낳았다. 집권 전반기 실시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개혁도 최근 다시 경제위기가 불어닥침에 따라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정권의 기반확대를 겨냥한 ‘야심찬’ 개혁정책들이 오히려 정권을 떠받치거나 잠재적 우군이었던 다양한 집단들의 이탈을 가속화한 셈이다. 왜 이런 역설적 상황이 거듭됐을까. 우선 개혁과제 선정의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는 주장이 여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그동안 국민의 정부에서 추진한 개혁의 경우 사회적 비용이 막대한데다 그 성과가 10∼20년 뒤 나타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확고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어렵다. YS의 경우를 보라.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해체나 역사청산 등 사회적 비용은 거의 들지 않으면서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개혁들을 했다. 국민의 정부도 이처럼 쉬운 것부터 추진해 국민적 신뢰를 쌓은 뒤 어렵고 중·장기적인 과제들을 추진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정권의 기반을 확고히 하지 못한 상태에서 역량을 넘어서는 개혁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개혁 프로그램을 조정하고 조율할 시스템 부족도 지적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북문제의 경우 통일부 장관, 외교부 장관, 국정원장 등 외교안보관련 책임자들이 참여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통해 전체적으로 조율되고 추진돼 왔다는 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농민 희생만 강요한 신자유주의
열악한 외부조건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실제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에 따른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등은 97년 대선국면에서 DJ와 정책연합을 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한국노총 등 노동계와 농민의 등을 돌리게 한 주원인으로 작용한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일방적으로 노동자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한 합리적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느냐. 사회안전망도 불충분한 우리 현실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다.”(이정식 노총 대외관계본부장) “대선 때 한농연을 비롯한 농민단체들이 DJ에 대한 공개지지까지 표명했지만 무차별적인 농산물 개방 등으로 농민들은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더욱이 정부의 개방농정 추진강도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이재덕 한농연 사무총장) 정영태 인하대 교수(정외과)는 “이미 세계적인 큰 흐름이 신자유주의로 가는 상황이다. 더욱이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신자유주의 처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경우도 사민당 정권의 정책이 세계적 규모의 무한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의 이니셔티브를 인정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지지기반이었던 노동조합쪽과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전체 흐름이 자기 기반을 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국제자본의 논리에 입각한 전면적 자유시장경제라는 시대적 흐름 앞에서 김대중 정권으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김 대통령은 집권 이전 쓴 <대중참여 경제론>에서 자유시장경제와 개방경제를 주장하면서도 독일과 일본식의 참여·협력적 노사관계를 경제모델로 제시했다. 그러나 강원대 이병천 교수(경제학)에 따르면 이런 견해는 ‘DJ노믹스’의 교과서격인 <국민과 함께 내일을 연다>에서 영·미형의 구조개혁과 전면개방 자유시장경제로 변모하게 된다. 이에 따라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기층세력의 희생이 불가피해지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에 따른 반발이 거세지게 된 것이다.
인사정책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이런 외부환경에 따른 자기모순 상황을 극복할 방안은 없었던 것일까.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시민사회학)는 ‘확고한 개혁주도 세력의 조직화와 잘못된 개혁방향의 재설정 등을 통한 정면돌파’를 주장했다. 조 교수는 “DJ의 개혁은 정부관료와 의회 등의 압도적인 보수세력으로부터 ‘포위된 개혁’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집권 초부터 시민사회 내 개혁세력의 힘을 동원하는 모델을 찾았어야 했다. 그러나 DJ정권은 급격히 관료화 현상을 보이면서 기존의 정치구조에 적응하고 편승하려 했다. 그러다 정책적 오류와 권력형 비리의혹들이 잇따르면서 보수세력으로부터도 도전받고, 실망한 개혁세력으로부터도 신뢰를 상실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 압력도 정치권의 취약한 개혁세력과 시민사회의 개혁세력이 만나는 지점을 확대해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 초부터 사회 내 개혁세력을 동원할 시스템을 구축해 기득권 세력과 대결했어야 했는데 어설프게 기득권 세력을 끌어안고 가려는 안일한 태도로 개혁은 수렁에 빠지고 오히려 보수세력의 힘이 강화되는 부메랑이 됐다는 것이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도 “DJP공조는 DJ집권을 위한 현실적 대안이었지만, 실상은 지극히 모순된 구조다. 이념적 동질성도 이해관계도 없이 집권을 위해 손잡은 것에 불과하다. 제대로 개혁을 하려면 개혁주도세력을 개편해 개혁방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이다. 그럼 이제 돌파구를 찾기에는 너무 늦은 것일까. 여권 내부에서는 집권 후반기라는 점을 들어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크다. 그러나 우선 가능한 현실적 대안으로 대국민신뢰 회복을 위한 인사정책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사실 집권 후반기로 접어든다는 점에서 대안이 마땅치 않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감동의 정치를 보고 싶어한다. 따라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인사들로 당·정·청와대의 면모를 일신해 ‘정말 뭔가를 해보려하는구나’ 하는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급선무는 신뢰회복이다. 지금 진용으로는 더이상 안 된다. 그리고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차근차근 벌여놓은 일들을 마무리한다는 각오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김대중 정권의 권력 담당층은 갈수록 특정세력에 의해 독식되는 퇴행적 모습을 보였다. 97년 대선 당시 김 대통령 진용의 전면에 선 그룹은 이종찬 전 안기부장, 천용택 전 국방장관,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 조세형 전 총재권한대행, 김원길 전 정책위의장 등이었다. 이른바 비주류와 외인부대가 힘을 보태 정권창출을 이뤄낸 것이다. 그러나 집권 이후 이런 다양성은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집권 1기 정권담당 핵심세력은 김중권 전 청와대비서실장, 이강래 전 정무수석, 문희상 전 정무수석, 이종찬 전 국정원장, 조세형 전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등으로 꾸려졌다. 지금은 한광옥 실장, 남궁진 정무수석, 권노갑 최고위원, 김옥두 사무총장 등 당·정 핵심라인이 동교동계로 채워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른바 동교동 가신들이 권부핵심을 독점하게 된 것이다. 다양한 민심의 통로가 막히고 획일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정치권 밖에서는 정권재창출도 포기할 수 있다는 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상병 정당정치연구회 정책연구실장은 “최근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정은 해결책이 아니다. 이미 신뢰를 잃은 정부의 사정에 대해 누가 동의하겠느냐. 누구나 그런 사정은 레임덕 방지용으로 생각할 뿐 정의의 칼로 생각하지 않는다. 과감히 정권재창출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참신한 인물로 면모를 일신해 국민들로부터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수 기자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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