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0년11월28일 제336호 

[표지이야기] 국민적 자원을 활용하는 힘!

김만흠/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특별연구원

집권여당의 전략이 대통령의 의중읽기에만 매달린다면 희망없어



최근 집권여당은 언론에서 집단 뭇매를 맞고 있는 것 같다. 그럴 만도 하다고 본다. 물론 국정을 주도하는 여당으로서 속사정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정치는 야당과의 권력투쟁 등 여러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국정위기가 집권여당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권에 비해서도 정당한 명분과 소임을 갖고 있는 정부임에도 이를 격려하고 옹호하는 목소리가 차지할 공간이 극도로 왜소화한 사실은 집권여당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다.

여기저기서 제기되는 집권여당에 대한 주문과 비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당의 구조와 운영체계의 쇄신, 국정의 체계적 운영, 새로운 정치, 정권교체의 초심 잊지 않기 등 집권 초기부터 제기되어왔던 주문들이다. 그런데 집권 후반기 들어서도 똑같은 주문이 반복되고 있다. 주문과 비판의 강도가 더욱 세지고 있을 뿐이다.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문제를 방치하는 정부를 과연 ‘국민의 정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믿고 따르라는 주문만 있을 뿐, 국민의 요구와 기대에 못 미친 점을 반성하고 호소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집권 민주당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민주당은 전적으로 대통령에 의존하고 있다. 집권여당의 진로와 전략에 대한 전망이 오로지 대통령의 ‘의중읽기’에 달려 있는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역대 어느 대통령에 비해 김대중 대통령이 유능한 점은 공히 인정하는 바이다. 인간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생사를 넘나드는 역정을 겪으면서 정권교체까지 이끌어낸 대통령이다. 국제적으로도 김 대통령만큼 공인받고 있는 정치지도자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대의정치 시대에서 정치지도자의 유능함은 일반 국민보다 유능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자원을 활용하고 이끌어내는 데서 발휘되는 것이다. 미국의 트루먼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자기보다 미국 대통령에 더 적합한 사람이 몇만명은 될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자 당시 한 신문에서 그의 겸손함을 높게 평가하면서, 그러나 사실은 그에 못지않은 사람이 몇십만명이 더 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던 사실은 참고할 만하다.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도 성공하고 정권도 성공한다. 의중읽기가 중심이 된 정부는 국민의 정부가 될 수 없다. 소수정권의 위기는 전략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정당성과 국민에 대한 설득이 힘이다. 이를 위해서는 집권여당 스스로가 새로 태어나야 하며 국민의 비판적 요구에 답해야 한다. 지금이 국민의 정부로 재탄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이재덕/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

걷잡을 수 없는 분노… 분노

대선공약 이행은 둘째, 농민에 대한 신뢰부터 회복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는 지난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김대중 후보가 44.4%의 지지를 얻어 이회창(18.9%), 이인제(18.3%), 기타(18.4%) 등을 상대로 압도적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한농연뿐 아니라 많은 농민단체들이 DJ를 지지했다.

농민단체들이 DJ를 지지한 이유는 당시 대선후보 중 가장 개혁적인 농정공약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장기간 누적된 농업문제에 IMF파동까지 겹쳐 빈사상태에 있던 농민에게 농가부채 해결, 마사회 농림부 환원, 직접지불제 전면실시, 농산물유통개선 등 DJ의 농정공약은 단연 돋보였던 것이다. DJ야말로 농업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농업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유일한 후보라는 판단에 농민유권자들은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몰아닥친 IMF사태로 인해 김대중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최우선 방침으로 천명했으며 농업문제 해결은 이후로 미루겠다고 밝히게 된다.

김 대통령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2년이 넘게 기다려온 농민들은 집권 2년이 지나고 IMF 환난의 위기에서 벗어났는데도 약속이행을 않고 있는 데 대해 조바심을 갖기 시작했다. 농사를 지어도 지어도 부채만 늘어나고 부채압박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농민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농심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번져나갔다. 그동안 수입농산물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와 국내 농축산물 가격은 폭락을 거듭해 부채상환능력을 상실한 농민들은 파산하기 시작했다. 과일과 채소, 축산물 등 전체 농산물 가격은 지난해보다도 30∼40%나 폭락했으며, DJ 정부 집권 2년 동안 농가소득은 5%나 감소하고 농가부채는 무려 42.4%나 증가해 총부채가 40조원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농가부채를 포함한 농정공약이 이행되지 않고 오히려 경제주의자들의 농업경시풍조가 만연하여 농민생존권이 벼랑에 내몰리게 된 것이 결국 11월21일 농민대회에서 분노한 농심으로 표출된 것이다.

대통령선거와 출범 초기에 모든 것을 걸고 지원했던 농심이 차디찬 분노와 불신으로 변해버린 지금 DJ 정부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가? 대선 공약 이행은 둘째치고라도 최우선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농정에 대한 농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약이행 실적을 적당히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상처받은 농심을 치유하고 무너져가는 농업과 농촌을 살려내겠다는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바로 무너져내린 DJ 정부 농정의 신뢰를 회복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신종원/ 서울 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2001년은 유일한 기회다

이제 젊고 패기있는 인사들에게 개혁작업의 중요한 역할을 맡겨라



현재 우리 사회는 위기인가? 위기라고 하면, 희망을 말하는 목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3년 전 IMF를 겪었을 때보다 더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웠지만, 그래도 다수는 한국경제가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것을 위해 협력하고 노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했다. 이 희망의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징후는 사회의 근간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전 사회적으로 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팽배한 상황, 사회 전반에 ‘승자 독식’과 힘이 보장해주는 정의론이 퍼져 있다. 잇따른 금융사고, 비리 등은 그 한 단면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룰을 공정하게 만들고 이를 형평에 맞게 집행하는 데에서 생긴다. 이번 의료계 파업 사태는 강자의 연합으로 사회적 합의를 깨고, 전 국민을 상대로 물리적 힘을 행사했으며, 이에 정부가 굴복했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김대중 대통령은 주위에 비서만 있고 바른 소리, 귀에 거슬리는 직언을 할 참모는 안 보인다는 비판에 귀기울여야 한다. 지난 경제팀 개편 때는 정말 보기 드물게 시장과 시민단체가 한목소리로 ‘개혁적 경제팀’으로의 개편을 요구했으나 결과적으로 ‘편한’ 사람들로 채워지고 말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은 “시민단체는 국정에 있어서 정부와 파트너십 관계에 있다”고 자주 말해왔다. 그러나 현 정부의 개혁적 소명을 기대한 시민사회의 요구는 외면당했으며, 재벌구조 개혁이나 의료개혁, 사법개혁, 교육개혁 등 특정 집단과 시민사회의 이해관계가 결정적으로 상충될 때, 시민사회의 판단과 주장은 밀려나버렸다. 정부 여당이 개혁의 원칙과 소명을 상실한 데서 온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정말 개혁세력과 연대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실제 자민련을 포함하여 영남의 보수세력 심지어 수구세력 등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왔고 그것은 지금까지의 정치·사회개혁 관련 의제의 향방을 퇴행적으로 결정하는 중요한 지렛대 구실을 해왔다.

앞으로 한번의 기회는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혁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선거가 없는 2001년이 개혁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 것이다. 40대 등 젊고 패기있는 개혁인사들에게 개혁작업의 중요한 역할을 맡기고, 힘과 권한을 부여하여 믿고 맡기는 것이다. 이런 총체적인 개혁작업을 위해 각계의 개혁적 세력들에 동참과 연대를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만중/ 전교조 정책기획국장

‘교육 망친 정부’로 남을 건가

‘교장 선출 보직제’ 등 교육민주화가 현재의 위기 해결하는 길



“국민의 정부가 교사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10월24일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국에서 몰려든 7천명의 교사들은 그들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교육이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교육 공약을 포기하고, 교육 부문을 시장논리로 개편하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발생하게 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초기에 국가정책의 방향으로 ‘민주주의와 시장원리의 조화’를 내세웠지만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교육 부문에서도 교육민주화나 교육복지의 진전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에 이뤄진 것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를 수요자와 공급자로 나누고, 교사와 교사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교원정책으로 일관해 온 것이다.

이해찬씨가 교육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국민의 정부는 5·31 교육개혁조치를 계승하고 보완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른바 무한경쟁의 세계화에 대비하여 교육부문을 시장논리로 재편하는 것을 골자로 한 지난 정부의 5·31 교육개혁 조처가 이 정부에 들어와서도 교육정책의 골간이 되었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선거의 공약으로 교육재정 GNP 6%와 유아교육의 공교육화, 중학교 의무교육 전면 실시를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교육예산은 오히려 삭감되었다. 또한 교원 정년단축 과정에서 나이든 교원은 무능력과 비효율의 표본으로 내몰렸다. 반면 2000년 들어서 추진한 조기유학 허용, 자립형 사립학교 도입, 외국인학교 내국인 입학 허용과 7차 교육과정 도입은 서민정당을 표방하고 민주화 세력의 지지를 얻어 집권한 이 정부가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를 의심케 하는 것들이다.

이제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현 정부가 교육을 망친 정부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미국이 2004년까지 학급당 학생 수를 18명으로 줄이기 위해 지속적인 예산을 투자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인문계 고등학교의 학급당 인원은 48명 수준이다. 교사들의 80% 이상이 지지하는 승진 위주의 교육풍토를 개선하고 학교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교장 선출 보직제’, 교육 주체인 교사·학부모·학생들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교무회의와 학부모회, 학생회의 법제화도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교육재정 확대’와 ‘교육민주화’가 현재의 교육위기를 극복하고 위기에 빠진 현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부로 거듭나는 유일한 방안이다.


이정식/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전면수정하고 실업자 등 껴안을 사회안전망 마련해야



‘믿는 사람에게 발등 찍혔다’, ‘아는 놈이 더 무섭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이민 갈 수 있으면 이민이나 가야겠다’ 등등. DJ 정권과 현시기 한국사회에 대한 노동자들 이야기 중 일부이다.

지난 대선에서 DJ 후보와 정책연합을 통해 정권 교체에 일조했던 한국노총의 경우 더욱더 큰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DJ 정권에 대한 비판이 곧 야당 지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여기에 한국 정치사회의 비극이 있다.

왜 노동자들은 DJ를 지지했는가. 첫째,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한 한국사회의 총체적 개혁에 대한 열망이다. 둘째, DJ가 살아온 인생 및 정치역정이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 셋째, DJ가 표방 또는 약속했던 사항이 상대적으로 노동자, 농민 등 서민대중의 이해를 좀더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넷째, IMF 경제위기를 맞이하여 DJ의 경륜이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고 또 정리해고 2년 유예 및 수많은 공약에 대한 믿음과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극은 시작되었다. IMF 경제위기를 이유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가 ‘노사정위원회’의 합의형식으로 전격 도입되었다. 그 이후 수많은 노동자가 해고됐다. 그런데도 경제위기의 주범인 재벌, 정치권 그리고 경제관료 중 책임을 지고 물러나거나 구속된 사람은 없다. 전체 노동자의 53%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개혁으로 포장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을 강행한 결과다. 그런데도 재벌개혁의 핵심인 소유와 지배구조는 거의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런 가운데 ‘2년 내 경제위기 극복’ 약속을 지킨 것처럼 축배를 들었다. 국민들의 희생과 부담으로 경제위기가 ‘극복’된 것처럼 보였는데, 또다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이다. 그리고 사회 부유층과 지도층 등 기득권 계층의 도덕적 해이와 탈법행위는 극에 달했다. 그러더니 이제 ‘제2의 경제위기’라며,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있다.

DJ는 지금이라도 마음을 비우고, 초심으로 돌아가 진정한 개혁을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노동배제적 구조조정 정책을 전면 수정하고, 참여적 사회통합적 구조조정을 해야 하며,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생기는 실업자 등 희생자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성의있는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끝으로 필자도 개인적으로는 DJ를 세번이나 찍었다. 아직도 기대를 접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무관심은 희망을 일구는 데 최악의 선택일 것이므로.

박병수 기자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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