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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래도 자금은 흘러야 한다 장기불황에 대비하는 서민들의 재테크… 안정성 높은 금융상품에 선별적 투자
이충근 신한은행 재테크팀장은 서민들이 지금 맞닥뜨린 자금운용(재테크) 환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부실기업 퇴출, 대우자동차 부도 등으로 나라 전체가 흉흉한데다 내년 경기 또한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아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안개낀 길을 어떻게 헤쳐갈 것인가. 이 팀장은 “편안한 휴식처에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며 체력을 보강하는 게 최선”이라고 정리했다.
세입자로 남느냐, 집을 사느냐
개인들의 체력보강을 위한 편안한 휴식처로는 확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은행의 금융상품이 바람직하다. 경제상황에 따라 변동폭이 크게 움직이는 주식 등에 대한 투자는 자제하고 기존 투자자금도 선별적으로 현금화해 은행권으로 옮기는 전략이 필요할 듯하다. 이렇게 기본을 잡고 좀더 구체적인 항목별로 접근해보자. 우선 집문제. 적지 않은 서민들에게 집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는 대단히 고민스러운 주제이다. 주택은행 추정에 따르면 전세 입주자들의 전체 재산 중 전세보증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부분 절반을 넘는다. 세입자로 남느냐, 집을 사느냐 하는 문제는 서민들의 재테크에서 크나큰 갈림길이다. 잘라 말하면 당분간 무리를 해서 집 살 욕심은 내지 말라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이다. 조금 길게 보더라도 집값이 오를 낌새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임병수 주택은행 지식경영팀장은 “그동안 주택공급이 많이 이뤄져 일부 지방에선 주택보급률이 100%를 웃돌 정도로 포화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제는 집이 투자 또는 투기의 대상에서 거주의 대상으로 굳어져가고 있다”며 “앞으로 2∼3년 안에는 집값이 오를 요인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서민들 입장에선 집에 대한 욕심이 생길 수 있다. ‘내 집’에 대한 심리적 애착도 있지만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하는 등 셋방살이의 고달픔 때문이다. 이처럼 꼭 집을 사고 싶은 경우엔 무엇보다 부담할 능력이 되는지를 잘 따져야 한다. 무리하게 집을 샀다가 대출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는 것은 재테크 전략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임병수 팀장은 “빚을 얻어서라도 집을 사고 싶다면 원리금 상환 부담을 소득의 20∼30%로 맞출 것”을 권한다. 대출기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월소득 200만원인 가계의 경우 대출규모를 3천만∼5천만원으로 맞춰야 한다는 얘기이다. 만기 20년짜리 주택금융을 얻어쓴다고 할 때 3천만원을 꿔쓰면 한달에 원리금 상환 규모가 대략 30만원 정도라고 보면된다. 물론 현재 집값이 바닥인 만큼 주택에 대한 투자에 적극 나설 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인터넷 부동산정보회사인 텐커뮤니티의 정상균 이사는 “뉴욕, 도쿄 등 선진국 대도시들과 비교할 때 서울의 집값은 결코 비싸지 않다”며 “전세금이 집값의 80%에 근접해 있는 목동 등 일부 지역 아파트는 투자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정 이사는 집값이 저평가된 근거로 집 장만하는 데 걸리는 시일을 예전과 비교해본다. “지난 91년의 경우 대졸초임 기준으로 따져 한푼도 안 쓰고 상계동 25평짜리 아파트를 사려면 10년이 걸렸다. 지금은 4년 정도 연봉을 모으면 같은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주택에 대한 투자에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평가돼 있다는 사실이 앞으로의 집값의 상승을 보장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산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당장 2천∼3천만원의 여윳돈을 확보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어서 서민들에겐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
연말정산에 대비하는 금융상품 챙겨야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판매하는 투신권의 비과세 상품(비과세 수익증권, 비과세 고수익펀드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은행, 보험사 등에서 취급하는 ‘생계형 저축’의 경우 판매시한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가능하면 12월 말까지 가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대부분 은행들이 올해 말까지 가입하는 고객에게 일반 예·적금 금리에 0.2%포인트 이자를 덧붙여주거나 각종 사은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들로선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저축은 무슨…”이라는 푸념이 나올 만도 한데, 그렇다면 대출쪽에서 이자비용을 줄이는 전략을 동원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다른 금융기관의 대출을 갚는 조건으로 대출을 할 경우 이자를 1.5% 정도 깎아주고 있는 서비스가 있다. 조흥은행의 ‘리파이낸스 대출’이 대표적인 예이다. 조흥은행은 다른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을 갚는 조건으로 다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9.0%의 이자율을 적용하고 있다. 보통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11.5%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활용할 만하다. 물론 저당권을 풀고 다시 설정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용이 추가로 들기는 하지만 이자감축분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 시티은행, 홍콩상하이은행(HSBC) 등 일부 외국계 은행의 경우 아파트담보대출을 새로 받으면 저당권 설정 등 부대비용을 대신 물어주기도 하며 대출기간이 3년 이상이면 첫달 이자를 면제해주는 경우도 있다. 개인들도 기업처럼 부채구조조정을 통해 가계부담을 덜면 이 또한 훌륭한 재테크 전략이라 할 것이다.
대박의 유혹이 아무리 강렬할지라도…
서민들에겐 겁나면서도 달콤한 유혹이 주식이다. 은행에서 돈을 굴려 목돈을 만들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실정에선 주식에 투자해 몇배의 차익을 남겼다는 얘기에 솔깃해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지금 상황에선 주식시장에 발을 담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재테크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우리 경제의 발전단계상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대하기 어려운 마당인데다 요즘의 나라 안팎 사정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수익률 올리기’보다는 ‘리스크(위험) 낮추기’ 전략이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조흥은행 서춘수 재테크팀장은 “그래도 굳이 주식에 투자하고 싶다면 당장 달려들지 말고 은행 등을 통해 단기로 자금을 운용하다 짙은 안개가 좀더 엷어지는 때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권한다. 평소에는 이자를 챙기다가 필요할 경우 이내 현금화(유동화)할 수 있는 금융상품은 은행의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적금(MMDA), 증권사의 머니마켓펀드(MMF) 등이 있다. 세금우대를 받으면서도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상품으로는 1개월 또는 3개월마다 금리가 변하는 회전정기예금이 있다. 가입기간이 1년 이상이지만 중도해지하더라도 매1개월 또는 3개월까지는 약정이율을 적용받으므로 마땅한 투자처가 생기면 곧바로 대응할 수 있다. 만기까지 유지하면 2천만원까지 세금우대를 적용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이며 금리상승기에는 금리인상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금융상품을 선택하는 일 못지않게 금융기관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년부터 시행될 예금부분보장제의 한도가 애초 2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저소득 서민들로선 안전한 은행을 찾는 수고는 덜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금융기관간 경쟁이 심해진 점을 감안, 이자율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따져보고 자신에게 적정한 금융기관을 선택해 거래할 필요가 있다.
꾸준히 저축할 수 있는 뚝심도 미덕
한빛은행 개인고객본부에서 재무설계사(FP)로 활약하고 있는 김인응 대리는 “여윳돈이 아주 없는 서민들은 재테크 전략을 짜는 데 머리를 싸매기보다는 무조건 저축해서 목돈을 만든다는 자세를 가질 것”을 권했다. 재테크니, 세금우대니 하는 복잡한 기법도 좋지만 꾸준히 저축할 수 있는 인내력과 뚝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또 자동차 같은 부채성 자산(감가상각 자산)에 대한 투자는 가급적 억제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이제 갓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20대 초반의 젊은 직장인이나 신혼부부들은 차를 사기보다 자산을 늘리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젊은이들이 목돈을 만드는 데 가장 좋은 상품은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근로자우대저축이다. 연급여 3천만원 이하 근로자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만기는 3∼5년, 매달 50만원까지 넣을 수 있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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