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0년11월21일 제335호 

[표지이야기] 실업공포, 엄살이 아냐

대량실직 잇따르고 취업전선은 꽁꽁 얼어… 정부의 미봉책에 노동계 종합적 대책 촉구


(사진/장기불황의 우울한 그림자에 숨죽이는 서울의 밤. 실업자들이 늘어나면서 인력시장에 인파가 몰리고 있다)


11월3일 퇴출기업 결정. 11월8일 대우자동차 부도. 2001년 2월까지 금융 및 공공부문 2차 구조조정 마무리 예정….

실업이 다시 사회적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기업퇴출, 금융·공공부문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데다 취업전선도 꽁꽁 얼어붙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IMF 이후 나라를 온통 뒤흔들었던 ‘실업대란’이 또다시 오는가? 최근 들어 다시 5천명 이상으로 치솟는 노숙자 수가 이런 불안을 서서히 가중시키고 있다.

실업자 100만명 시대는 예고되었다

실업공포는 막연한 미래예정형이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전재식 연구원에 따르면, 앞으로 전개될 구조조정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실직이 예상되는 노동자 수는 7만5천여명. 이는 11월3일 52개 퇴출기업 및 협력업체에서 발생할 2만8천명, 대우차 부도처리 과정에서 2만5천명, 금융기관 2차 구조조정과 한국전력 등 공공부문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2만2천명 등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겨울철 일감이 줄어든 건설직 노동자 등 건설·농림어업부문 9만5천명, 고용시장에 접근조차 못하는 대학 기존 졸업자 및 신규 졸업자 13만명 등 모두 30여만명이 추가로 실업파고에 휩싸인다는 게 전 연구원의 전망이다. 따라서 고용여건이 가장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2월에는 실업자가 약 1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유경준 연구위원도 “외환위기 직후 한때 8%선까지 올라간 실업률은 올 들어 계속 떨어져 3%대의 안정세를 보였지만, 최근 기업퇴출 등으로 다시 치솟아 내년 2월께 실업률은 4∼5%, 실업자 수는 10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에서도 이런 어두운 전망에 동의한다. 노동부 고용정책과에 따르면, 실업자 수는 연말까지 90만명(4.1%), 실업률이 정점에 이르는 내년 2월에는 최고 96만명(4.4%)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전망은 더욱 어둡다. 민주노총 이수봉 고용안정센터 소장은 “실업률 통계의 허점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민주노총 자체 분석결과 내년 2월 예상 실업자 수는 대충 잡아도 지금보다 적어도 50만명이 더 늘어나 14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96만명, 100만명, 110만명, 140만명. 사람마다, 기관마다 비록 그 수치의 차이는 있지만 내년 2월쯤이면 다시 ‘실업자 100만명 시대’를 맞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100만명 실업자라면 대략 5가구 가운데 1가구꼴로 실업의 고통을 겪는 셈이다. 대량 실업사태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전조는 벌써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근 인터넷의 채용정보 제공 사이트에는 구직자들이 여느 때보다 많이 붐빈다. 인크루트, 잡코리아, 잡링크 등 채용정보사이트엔 11월 들어 구직등록을 하는 숫자가 부쩍 늘었다.

하반기 대학졸업자들의 취업전선은 그야말로 ‘한겨울’이다. 대기업은 물론 공기업, 은행들이 지난해보다 채용규모를 대폭 줄이거나 아예 뽑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다, 실업난 해소에 큰 도움을 줬던 벤처기업에서도 구직가뭄이다. 올해 대학졸업 및 졸업예정자들은 IMF 직후의 대졸자들처럼 ‘버림받은 학번’으로 전락할 신세이다.

취업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 30만명의 고학력 구직자 중 많아야 8만명 정도가 직장을 구하고 나머지 22만명은 취업재수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기업퇴출의 여파로 지금 직장을 가진 사람들도 나름대로 생존전략에 여념이 없다. 부도가 난 대우차에서는 다단계판매회사를 기웃거리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IMF 한파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지난 98년의 실업대란(실업자 수 최고 178만명, 실업률 7.8%) 사태 때 볼 수 있었듯이 실업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의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멀쩡한 40대 가장이 노숙자로 전락하고, 단란한 가정의 부부가 파경을 맞기도 했다. 가장이 스스로 고사리손 자식들을 아동보호소에 맡기고 사라지는가 하면, 인생을 비관한 사람들의 자살이 속출하기도 했다. 실업은 한 가정 구성원 전체의 생존자체를 위협하며 사회적 안전망이 없으면 체제불안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실업은 가장 내연성이 큰 사회갈등 요인으로 꼽힌다.

“고용보험 적립금 충분해 실업사태 해결”

정부도 실업문제의 이런 심각성을 감안해 지난 11월16일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안정대책’이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내년 2월까지 20여만명의 실업자 증가를 예상하고 올해 1조2980억원, 내년에 2조1426억원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게 대책의 뼈대이다.

노동부는 이 재원으로 우선 실직자들의 재취업과 창업 지원, 직업훈련 등에 지원하고 실업급여와 대출 등 생계지원사업도 전개할 방침이다. 이 밖에 건설일용직에 대한 고용안정지원, 신규졸업자를 위한 정부인턴제 실시방안도 내놓았다.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김춘선 조정1과장은 “정부로서는 실업자 수가 30만∼50만명이 추가로 더 나온다 하더라도 그리 크게 걱정할 게 없다고 본다”면서 “고용보험 적립기금이 충분한데다 내년에 공공근로사업 등을 통한 일자리 제공도 지속적으로 이뤄져 충분히 실업사태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김 과장은 이어 “대우차 처리가 잘 안 돼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별도의 비상대책도 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정부의 실업대책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민주노총 이수봉 고용안정센터 소장은 “정부가 발표한 실업대책은 여전히 미봉적인 단기대책에 머물고 있다”면서 “실업대책은 애초 실업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거나 불가피할 경우에는 실업자를 최소화하는 방안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일자리 나누기 등 좀더 사전적이고 적극적인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예산문제만 하더라도 조삼모사입니다. 공공근로사업 예산의 경우, 올해 분기별 평균 25만명이 공공근로를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내년도 예산은 분기별 평균 8만명으로 책정돼 있습니다. 나머지 17만명은 어디에서 무얼하란 말입니까?”

공공근로 신청예정자 25만명 중 20%는 노동시장으로 재유입, 20%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한다고 치고 7만∼8만명은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게 이 소장의 분석이다. 정부는 내년도 공공근로예산을 올해의 절반 수준인 6천억원대로 줄였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앞으로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시간단축 운동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노동시간단축에 관한 특별법을 이미 국회에 입법청원을 했고, 이 밖에 실업예산 확대를 담은 사회보장예산 확대도 정부에 지속적으로 촉구하기로 했다.

체계적 직업훈련 프로그램도 없는 현실


(사진/대학졸업자들의 취업문은 아예 막혀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취업희망자들이 구인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유경준 연구위원도 “정부의 이번 실업대책은 사실 새로울 게 없는 임시방편”이라면서 “특히 중요한 실업대책 중 하나인 체계적인 직업훈련 프로그램 등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구제금융사태 초기에는 재취업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직업훈련 등 소모적인 실업대책으로 예산만 낭비했다는 비판을 샀다.

유 연구위원은 그러나 “4∼5% 수준의 실업률은 지금 구축된 사회안전망으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더이상 실업사태가 악화되지 않고 우리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이 되살아나도록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황에 맞부닥쳐서 땜질식 처방을 내놓을 게 아니라,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이고 중장기적인 실업대책을 서둘려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관계부처 장관회의나 차관회의를 통해 최근 구조조정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업지원대책을 논의하긴 했지만 정작 실업문제에 대한 범정부적인 논의는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일단 올해 가용예산을 최대한 활용해 대처하고 내년에는 적정한 예산을 미리 확보해 범정부차원의 ‘종합실업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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