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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주식촌지, IT언론을 유혹한다 기자들과 줄대기 위해 안달하는 벤처 경영자들… ‘벤-언유착’ 속에 소액투자자들만 피해
그 벤처사장은 공모가보다 낮은 가격에 2천주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시황으로 봐서 사두면 확실히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목적이 뻔히 보이는 제안이었다. 김 기자는 “필요없다”며 거절했지만 그 사장은 “나쁜 의도가 아니니 주식투자하는 셈치고 사두라”고 거듭 권했다. 김 기자가 이런 제안을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지난해 봄 다른 벤처기업으로부터 “사외이사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도 있었다. 사외이사를 제안한 벤처사장은 “도와주면 공로주 형식으로 보답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결국 두번 다 거절하긴 했지만 제안을 받을 때마다 김 기자는 입맛이 썼다. 이런 제안이 김 기자‘만’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식 달라” 먼저 요구하는 언론인도
“벤처 관련 기자라면 누구나 이런 제안을 한두번쯤은 받았을 겁니다. 심지어 ‘어디의 어느 기자도 도와주고 있다’고 슬쩍 내비치며 설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벤처기업의 ‘주식선물’을 선선히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주식을 달라”고 먼저 요구하는 언론인들도 있다. 매일경제 TV(MBN) 조아무개 PD 사건은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3월, 조 PD는 프로그램 제작으로 인연을 맺게 된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주식 양도를 요구했다. 이 사장은 마지못해 액면가 5천원짜리 주식 1400주를 주당 2만5천원에 넘겼다. 지난해 11월 상장된 다음커뮤니케이션 주식의 가격은 한때 주당 수백만원대에 이를 만큼 치솟았다. 조 PD는 양도받은 주식의 일부를 동료들에게 되팔아 이익을 ‘분배’하기도 했다. 조 PD와 동료들은 다음 주식을 통해 수억원이 넘는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벤처기업인은 “과연 언론인이라는 특수한 신분이 아니라면 주식을 받을 수 있었겠느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이처럼 일부 정보통신(IT) 분야 기자들이 ‘주식촌지’를 건네받은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벤처투자회사 직원은 “올 초 코스닥이 한창 뜰 때 주식을 받으려는 기자들이 줄을 섰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전자상거래업체의 한 이사는 “한 벤처기업 사장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10%를 회사를 지원해 주는 이들을 위해 내놓겠다고 해서 기자를 소개시켜 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또 한 인터넷 서비스업체 사장은 자신이 직접 기자에게 ‘주식촌지’를 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솔직히 말해 알고 지내던 차장급 기자에게 500만원어치 지분을 준 적이 있다. 우리 회사 주식은 아니고, 나에게 들어온 투자제의를 그 기자에게 돌린 것이다. 우리 회사 지분을 주는 것은 좀 찜찜한 면이 있어 다른 회사 지분을 넘겼다. 물론 돈을 날리게 되면 원금은 책임져 준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기자들이 벤처기업의 주식을 받는 형식은 여러 가지다. 대표적인 방법은 상장 전에 증자나 신주 발행을 할 때 액면가나 공모가로 주식을 취득하도록 편의를 제공받는 것이다. 이렇게 취득한 주식을 상장 전에 장외에서 되팔아 차액을 남긴다. 증권업협회 강홍기 시장관리 팀장은 “증권거래법은 등록 법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들을 처벌할 근거가 마땅히 없다”고 밝혔다. 무상으로 주식을 건네받은 게 확인되지 않는 한, 마땅한 처벌조항이 없다는 얘기다. ‘주식’이라는 형태의 새로운 촌지를 없애기 위해서 기댈 언덕은 ‘기자윤리’밖에 없는 형편이다.
‘청문회’ 같은 술자리
벤처기업인들이 기자들에게 ‘주식촌지’를 제공하는 배경에는 벤처업계의 특수한 상황이 놓여 있다. ‘무’에서 출발하는 벤처기업의 특성상 아무리 참신한 아이디어와 탁월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일반인에게 알릴 기회가 거의 없다. 언론이 유일한 통로다. 그만큼 정보통신(IT) 분야에서 언론의 힘은 막강하다. 단신기사 하나가 벤처의 성장과 투자유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코스닥 상장을 앞둔 기업들은 사활을 걸고 ‘홍보’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기사가 상장 여부와 공모가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탓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김성호 기획홍보팀장은 “벤처기업들은 신문에 기사 한줄 나가는 걸 엄청나게 생각한다”며 “수요가 크다보니 무리한 요구를 해도 속수무책”이라고 말한다. 이런 절박한 필요성 때문에 벤처경영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기자들과의 접근을 모색한다. 먼저 학연 등을 연줄로 술자리를 만들고, 몇번 만나면서 안면을 익힌다. 점점 친해지면 자연스레 주식 얘기도 오가게 마련이다. 특히 이런 접근에는 학연이 많이 이용되는데, 최근 각 대학별 벤처클럽에 언론인들이 가입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 고대벤처클럽에는 ‘특별회원’으로 분류된 IT담당 기자들이 28명. 이 중에는 편집국장 등 언론사 간부들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준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학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뒷거래로 발전할 개연성은 없지 않다. ‘정보교환과 친목 다지기’를 내세우며 결성한 IT 기자 모임이 의혹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올해 중앙 일간지와 경제지 기자 10명이 모여 결성한 모임이 대표적이었다. 한 기자에 따르면, 이 모임은 컴퓨터 자판 두드리기에 따라 한 벤처기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을 만큼 영향력이 막강했다. 이들과 술자리를 같이한 적이 있는 한 벤처기업 사장은 “술자리가 아니라 마치 청문회에 선 기분”이었다고 돌이켰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어떤 화를 당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는 얘기다. 이 모임은 안팎의 말들이 많아지면서 최근 해체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조직은 4∼5개 이상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T 기자라면 누구나 한두번쯤 이런 모임에 들라는 제안을 받게 되는 게 현실이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벤처와 언론의 관계는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마치 갑과 을의 관계 같다”고 묘사했다. 지난해 말부터 떠돌던 벤처와 언론의 ‘유착설’은 이번 정현준 사건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되고 있다. 정현준 사설펀드에 30명 이상의 현직기자들과 부장급 간부들이 포함돼 있다는 설이 바로 그것이다. 펀드 가입자로 확인된 한 기자는 정씨가 구속되기 전 정현준씨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기사를 지면에 내보낸 적도 있었다. 주식촌지의 효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단 촌지를 받으면 기자는 그 벤처기업의 주주가 된다. 주주가 된 기자가 그 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는 힘든 노릇이다. 현금으로 촌지를 받는 것보다 더 기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주식촌지는 이중의 족쇄가 돼 기사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물론 벤처기업 입장에서는 보험에 든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주주 기자’가 어찌 비판적으로 쓰랴
물론 IT 기자 전체를 매도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승부를 겨루려는 대다수 선량한 벤처기업들도 예외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그나마 촌지 관행이 많이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 ‘주식촌지’라는 새로운 관행이 “주식투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자기합리화 논리를 통해 암암리에 자리잡는 것이 문제다. 벤-언유착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새로운 언론개혁의 과제로 떠올랐다. 다른 유착관계가 그렇듯 벤처와 언론의 검은 유착관계 속에서 피해받는 사람은 결국 소액투자자들과 대다수 국민들일 수밖에 없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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