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0년11월07일 제333호 

[표지이야기] “장관 바꿔” “너 뭐 하는 놈이야”

정치권 위에서 군림하는 듯한 족벌언론 사주들… 재산권 다툼으로 신문사 망치기도

지난 10월23일 한국일보 편집국 전·현직 기자들에게 팩스 한장이 도착했다. 한국일보 김성우 전 파리총국장이 보낸 ‘한국일보를 떠나면서’라는 제목의 A4 한장짜리 성명서에는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책임을 묻는 사람도 없는 게 위기의 한국일보를 더욱 절망케 하고 있다”며 “한국일보에 최장기 근속한 사원의 자격으로, 한국일보에 신명을 바쳐온 기자의 마지막 애사심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은 다 물러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김 총국장은 한국일보의 사세가 기운 원인이 “권력싸움으로 일관한 주주와 확고한 언론관 없이 종이장사처럼 신문사를 운영한 경영진 때문”이라며 “한국일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모두 일어나기를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김성우 전 총국장은 한국일보에 56년 입사해 편집국장, 이사, 일간스포츠·소년한국일보 사장 등을 지냈으며 상임고문을 거쳐 지난 6월 파리총국장으로 발령받은 뒤 8월16일 회사가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10여명의 원로기자들과 함께 의원면직됐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 기자들은 “재직 시절에는 왜 한마디 없었는가”라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성명서에 녹아 있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에는 동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면 현재 한국일보가 수천억원의 은행빚을 지고 자본잠식상태까지 온 위기의 원인은 뭘까. 노동조합과 기자들은 그 원인을 김 전 총국장의 지적처럼 사주들의 재산권 다툼으로 보고 있다. 창업주인 장기영 회장의 장남 장강재 회장이 죽고 난 뒤 그의 부인 이순임(예명 문희)씨와 재구·재국씨 등 가족간에 재산권·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사이에 한국일보는 점점 쇠락해갔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족벌사주들의 이런 행태는 언론사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이들이 한국일보에 ‘뒷문’ 입사한 것은 다른 족벌언론사 사주들과 마찬가지. 장재국 회장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0년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체육부 기자를 했으며, 군대를 다녀온 뒤 자회사인 한남레저스포츠센터 사장, 한국칼라 사장 등을 거쳐 90년 사장에 올랐다. HK인터넷 장중호 사장은 장강재 회장의 아들로 95년 곧바로 기획실 사원으로 입사한 것을 계기로 한국일보에서 분사한 인터넷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언론사주의 빗나간 행태는 개인의 비리 차원으로 심각화하곤 한다. 한국일보 장재국 회장의 카지노 도박 의혹 사건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보광그룹 탈세 비리,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의 세금탈세 의혹 등이 가장 대표적이다.

검찰과 국세청은 이처럼 족벌언론사 사주들의 비위와 비리를 조사해도 결과는 내놓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언론과 갈등 요인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와 족벌언론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홍석현 회장의 경우 유죄판결을 받은 지 3개월도 안 돼 8·15 사면·복권 대상자 명단에 포함됐다. 언론시민단체들은 전형적인 권·언유착이라고 반발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언론사와 정치권의 관계를 정·언유착이라는 단순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언론사 사주가 정치권 위에서 군림하는 듯한 모습이 간혹 외부로 노출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언론사 사주는 정치적으로는 대통령의 위치에 버금간다. 족벌언론사 사장들은 장관실에 전화할 때, 존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무리 언론사 사주일지라고 “장관 바꿔”, “너 뭐 하는 놈이야”, “똑바로 못해” 등의 쌍소리를 한다는 것은 학맥·인맥으로 얽힌 선·후배 사이라고 해도 비판받아 마땅한 행위임에 틀림없다.

김성완/ 미디어오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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