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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지나친 의욕, 혼선을 빚다 빨리 업적 내려는 조급증… 재벌 상속방지 등 분배문제의 근본 건드려야
일거에 개혁하려다 부작용
분배정책에 관한 한 현 정부는 종전의 정부와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을 보이는데, 그것은 경제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크고, 분배문제가 정책에서 높은 우선순위를 가진다는 점이다. 청와대 ‘삶의 질 향상기획단’의 발족이나 노사정위원회의 설치 등이 그 증거이다. 이런 점은 현 정부가 노동자, 서민의 복지, 삶의 질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며, 양적 성장에만 치중하여 우리 사회의 그늘에 애써 눈을 감아온 과거 정부에 비해 내세울 만한 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책의 내용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말까지 “우리나라의 소득분배구조를 OECD 국가 중 상위권 국가가 되도록 하겠다”(2000년 신년사)고 선언하였는데, 이는 의욕은 좋으나 달성이 불가능한 목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득분배는 다른 경제현상과 달리 단기적으로 크게 변동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2∼3년 만에 이런 기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인지? 큰 의욕을 갖는 것이야 나무랄 수 없지만 문제는 지나친 의욕이 정책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의 국민연금 파동, 현재 진행중인 의료대란, 앞으로 부작용이 우려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의 도입 등이 모두 그런 맥락에서 일어났다.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는 이런 중대문제에 대해 왜 충분히 시간을 두고 검토하지 않고 일을 저지르고 보자는 것인지. 이런 중대한 정책 변환이라면 적어도 한두 군데 시범지역을 정해서 2∼3년쯤 실험을 해봐야 하지 않는가? 결국은 빨리 업적을 내려는 조급증이 문제다. 그리하여 후세 사가들은 김대중 정부를 이렇게 평가할지도 모른다. 그 전의 정권들은 지나치게 성장에만 집착하여 저소득층의 처지에 눈을 돌리지 않았으나 김대중 정권은 분배, 복지에 관한 한 일거에 개혁하려 한 나머지 부작용과 혼선을 불러일으켰다고. ‘과유불급’이란 공자 말씀이 생각난다. 최근 통계가 보여주듯이 우리 나라의 빈부격차는 경제위기 이후 급속히 확대되고 있고, 앞으로 정보화, 세계화 추세와 더불어 날이 갈수록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정부가 분배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지당하고 반가운 일이다. 선진국의 국가 예산이 복지, 사회개발 중심으로 짜여 있는 데 비해 여전히 우리의 예산은 국방, 경제개발 위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장차 지양되어야 한다. 열악한 사회보장 수준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하면 복지 확대는 바람직하며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책목표도 옳아야 하지만 정책수단도 적절해야 한다.
화급한 정책과제가 얼마나 많은데…
정부는 지나치게 근시안적으로 생각하여 우선 당장 눈앞의 실적을 올리겠다는 태도를 버리고, 좀더 장기적, 점진적으로 분배문제의 근본을 다스려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볼 때 할 일은 많다. 전환사채, 신주 발행을 통한 교묘한 상속수법에 대한 대책 마련이 재벌 2, 3세로 거대 재산이 넘어가는 한국의 현실에서 화급한 정책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시한폭탄과 같은 부실한 4대 사회보험의 정비, 우리 사주제도의 보완, 노동자인수기업과 자활공동체의 지원, 디지털 격차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투자, 자산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부동산 보유과세의 강화,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실시, 서민의 얕은 주머니를 쥐어짜고 있는 높은 과외비, 주거비, 의료비의 감축 등도 한결같이 중요한 정책들이다. 이런 정책들은 경제적 불평등을 좀더 근본적으로 해소해주면서, 또한 시장경제의 활력을 훼손하지 않으므로 가장 바람직한 분배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정책 중 상당수는 이미 ‘삶의 질 향상기획단’이 지난 5월 대통령에게 건의한 분배정책에 들어 있다. 문제는 실천 의지다. 차분히 기초를 다져가는 것이 백 마디의 미사여구나 깜짝 정책보다 훨씬 내실있는 분배정책이 될 것이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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