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0년10월03일 제328호 

[표지이야기] ‘문화유적 지키기’ 시민운동을

역사적 의미있는 마을 전체 보존토록 해야… 내셔널 트러스트 방식 검토할 만



30여년간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이로서 전국 각지의 문화유적을 답사하고 발굴현장도 가보았다. 하지만 많은 문화유적과 전통마을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파 아예 ‘안 가고 안 보는 것이 낫겠다’는 다짐을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왜 제대로 문화유적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가 원망만 했다.

상업주의에 짓밟히는 하회마을

그러나 지난해 구겐하임미술관 관장을 안내하면서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그리고 부석사를 둘러보며 문화유적 보호는 이제 더이상 누군가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자주 가는 유적지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외국인, 그것도 세계미술관문화를 주도해온 그의 눈과 입을 통해 우리문화 유적보존의 문제를 지적받은 심정은 참담하고 부끄러웠다.

안동 하회마을의 경우 지난 4세기 동안 마을을 지켜주었던 공동체정신은 사라지고 개인주의와 상업주의에 짓밟히고 있었다. 거의 집집마다 큰 민박간판을 내걸었고 예쁜 토담길들은 사람과 차에 치어 신음하고 있었다. 영국 여왕의 방문 이후 관광객 수가 늘어나면서 마을이 더욱 심하게 망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서원인 하회마을 병산서원 앞에는 컨테이너 민박·음식점들이 늘어섰고 외지 사람들이 지어대는 카페 등은 날이 갈수록 늘고 있었다. 하회마을은 그들이 지켜나가야 할 위대한 유산들을 물려받았지만 그 마을은 그 유산을 상업주의에 내줘버리고 있었다.

결국 이 여행에서 얻은 결론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두 가지를 생각했다. 이제 문화재란 것은 이 나라 온 국민이 참여해 지켜야 한다는 것이 첫째였다. 전통 문화유적과 주변환경을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주요한 유적이 집중된 지역과 역사적 의미가 있는 마을부터라도 마을 전체를 보존할 수 있도록 문화재 관리사업의 성격과 범위를 확대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문화재 가운데에서도 특히 문화유적의 보존은 더욱 시급하다. 경주 양동마을에 있는 이언적을 기리는 옥산서원과 그가 살던 독랑당도 지방문화재로서 몇년마다 많은 보수비를 들이고 있지만 실정은 처참하다.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건물인데다 관리유지조차 못하다보니 관람객은 신발을 신고 마루와 방에 들어가도록 방치되고 있다. 한국의 전통한옥은 사람이 살지 않고 가구도 하나도 없이 비어 있으면, 급속히 폐가가 되어버리고 만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문화재로 지정되었거나 지정될 정도의 전통마을과 건축은 건물 중심이 아니라 터 중심으로 공원화하여 보호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강과 병산이 보이지 않는 병산서원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문화재법, 터 개념 무시


(사진/경북 안동의 하회마을. 영국 여왕의 방문 이후 관광객 수가 늘어나면서 마을이 더욱 심하게 망가지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는 윌리엄스버그란 영국 식민지시대의 마을이 있다. 1960년대부터 록펠러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 마을은 박물관식 운영, 즉 ‘리빙 뮤지엄’ 개념을 도입했다. 민속학자들과 건축사가들을 기용하여 많은 건물들을 복원하고 옛 마을을 그대로 살려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민속마을을 꾸몄다. 그 덕에 이제는 주민들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돈도 잘 벌며 살아간다. 우리도 문화재로 지정된 마을 주민들에게 민박을 허용해주는 수준의 보상으로 되레 마을을 망치게 하지 말고 근본적인 개념을 바꿔 보존방식을 찾아야 할 때다.

문화유적 보호에서 이처럼 큰 그림을 그리고 마을터 전체를 생각하는 보존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경주 남산의 소나무 훼손사건만 봐도 쉽게 느낄 수 있다. 남산의 기암에 새겨진 마애석불들은 소나무들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것인데 석불을 더 잘 보이게 하려고 그런 짓을 했다고 하니 너무나 상식밖이어서 간담마저 서늘했다.

결국 우리 민족의 삶과 생각이 담겨 있는 문화유적을 보호하는 대안은 너무나 뻔하고 기본적인 것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는 더더욱 전방위적이고, 다차원적이며 범국민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차원에서는 법적 제도개선과 필요한 예산의 책정, 예산집행체제 재정비, 그리고 관리운영제도를 개선하는 것이고, 민간차원에서도 관변문화재단과 사립문화재단이 문화재 보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과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문화재법과 건축법을 재정비하고 악법은 바꾸고 필요한 신규법안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이 문화재의 관리·운영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법제적인 문제 가운데 가장 시급히 보완해야 할 것은 문화유적에 대한 잘못된 정의다. 한국의 문화유적의 보존정책을 각각의 건물 중심으로 세우고, 우리의 전통건축에서 너무나 중요한 터 개념을 무시함으로써 그 결과 원래 설계의 중요한 일부였던 주변경관과 환경의 훼손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아왔다. 또한 건축법과 문화재법이 상충되도록 되어 있고, 또 실제적으로 문화재법이 건축법의 하위법이라는 점도 문제다. 이런 점에 대한 전면적인 보완부터 이뤄져야 한다.

동시에 전통건축과 유적지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관리, 운영이 필요하다. 문화재청의 현재 인력과 예산을 개선하는 것은 시급하다. 지방문화재를 동네 사람들이나 일가친척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 자연환경의 보존과 문화재 보존은 양상이 다르다. 한옥건축의 경우는 특히 사람이 살아줘야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아무런 준비없이 그저 돈만 수억씩 들인 보수의 병폐는 심각하다.

문화관광부가 각 지방문화재의 관리운영을 지방의 국공립박물관에 연계시키도록 하는 것도 한 대안이라고 본다. 박물관학적인 해결책은 업무와 인력조직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다. 유적의 철저한 관리를 위해서는 해당유적의 특수성에 따른 학예연구직이 필요하고 교육직, 운영직, 시설관리직을 기본으로 한 조직구성이 돼야 한다. 그러나 각 유적마다 박물관학적인 체제를 완비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인력면에서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으므로 유적의 박물관화를 위해서는 결국 기존 국공립박물관과 대학박물관과의 연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만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에 내셔널 트러스트 방식으로 유적이나 유적인근 대지를 기금을 모아 매입하는 운동방식도 지금 시점에서 크게 기대해볼 만한 방식이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에게 문화유산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매장문화재 보존 도와줘야


(사진/기암에 새겨진 마애석불을 더 잘 보이게 하려고 소나무를 자른 경주 남산. 너무나 몰상식한 일이다)


그러나 문화유적은 현실적으로 거의 매입이 불가능하고 값도 엄청난데다 민간차원에서 구입해도 유지, 관리, 운영이 큰 숙제로 남게 된다. 그래서 내셔널 트러스트가 처음 도입된 영국은 내셔널 트러스트 회원을 귀족과 부유층에서 찾았다. 돈이 나올 수 있는 사회계층을 겨냥한 것이었고, 그들의 정치적 활약으로 영국 정부는 복권판매의 일부를 내셔널 트러스트 기금으로 써오면서 주요문화유산의 보수, 관리, 운영을 이 단체에 신탁할 정도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중앙의 내셔널 트러스트 본부가 대정부·범국민적 운동을 하는 한편, 지방을 도와 지방단위의 내서널 트러스트를 활성화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방법이야말로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주민주도의 자치제도인 향약계의 전통과 그 맥을 같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래에서부터 생겨난 사회적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계와 더욱 연관성이 있으며, 그 의미도 중요하다.

요즘 들어 북한 개성을 우리 기업들이 들어가 개발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반가우면서도 그래서 걱정부터 앞선다. 문화재의 보호는 아무리 빠른 걱정이라도 시기상조가 아니다. 북한의 고구려유적이 훼손되고 파손되고 있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일본으로 벽화의 일부가 팔려갔다 한국으로 밀수된 적도 있었다.

며칠 전 고구려 무덤을 돌아보고 온 한 미술사학자는 “고구려벽화를 보고 싶으면 늦기 전에 빨리 가보라”며 “물이 새서 다 망가지고 있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더라”고 한숨을 쉬었다. 식량난에 경제위기까지 겹친 북한이 남한의 도움을 청할 때는 경제적인 이유가 최우선이다. 따라서 문화재를 돌보고 특히 매장문화재를 사전에 제대로 조사할 여유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북한을 도와 먼저 조사한 뒤 개발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홍남/ 이화여대 박물관장·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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