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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성백제’ 수수께끼를 풀어라 하남시 문화유적이 중요한 열쇠… 현장 보존과 체계적 발굴 시급 속수무책으로 훼손되고 있는 하남시 문화유적은 한국 고대사 연구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인 ‘한성백제’(B.C.18년∼A.D.475년까지의 초기백제 500년)를 푸는 중요한 열쇠란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제까지 백제에 대한 연구는 불과 200년에 해당하는 웅진(공주)과 사비(부여)시대에 맞춰져왔다. 아직 한성백제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88년 발굴된 몽촌토성에 이어 최근 드러난 풍납토성이 백제의 왕궁터라는 학설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이 역시 ‘결정적인’ 증거로 내세우는 데 많은 학자들이 유보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몇몇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하남시가 한성백제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위례성 백제사>의 저자이자 하남시청 문화재 전문위원인 한종섭씨는 “북으로 한강을 끼고 동쪽에 검단산과 객산 줄기가 이어져 남으로 남한산에 이르며 주변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 하남시의 지형은 <삼국사기>에서 진술하는 백제의 한성 위치와 꼭 맞아떨어지는 지형이다”라고 설명한다. 88년부터 하남시를 조사해온 건축가 강찬석씨도 “(하남시는) 객산의 산줄기가 남쪽으로 남한산과 금암산을 돌아 서쪽의 이성산까지 이어져 ‘ㄷ’자형의 천연 방어벽을 형성해 지형적으로 고대 도읍지로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면서 “하남시에서 발견된 고대 제방 흔적이나 춘궁성 토성과 객산으로 둘러싸이고 다시 안쪽에서 토성에 의해 겹겹이 에워싸인 구조는 고대 왕궁을 보호하기 위한 3중의 방어벽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강씨는 “궁터만 12만평에 이르는 평양의 장수왕 안압궁터와 비교할 때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은 전성기 백제 왕궁으로 보기에 턱없이 협소한 반면 현재 드러난 면적만 4천평에 이르는 교산동 건물지의 규모는 왕궁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재야사학자들은 조사과정중 발견된 ‘약정’이라는 명문기와를 중요한 단서로 내민다. 남한산성 근처에서 발견된 고려 사찰 약정사터에서 발견된 이 명문기와는 약정사가 한산에 위치하고 있다는 <신정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는 한산 아래 백제의 도읍을 정했다고 진술하고 있는 <삼국사기>에서 언급한 한산이 바로 남한산성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학계에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 임효재 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하남시 춘궁동 일대는 풍납토성, 몽촌토성과 함께 한성백제의 왕궁터일 가능성이 높은 유적지이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유력한 가설 가운데 하나로 본다”면서 “역사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물을 얻기 위해서는 현장의 보존과 체계적인 발굴이 시급한데 지금처럼 문화재청과 시당국에서 파손에 속수무책으로 방기하는 것은 일종의 역사말살”이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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