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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땅 속보다도 못한 대접 발굴된 뒤 창고와 박물관에서 썩어가는 유물들… 문화재에 대한 마인드부터 바꿔야
정확한 숫자파악이 안 된 경우도
“발굴은 계속 이뤄지고 있는데 수장고는 포화상태입니다. 대학당국에 예산지원을 요청하지만 박물관 예산은 언제나 뒷전으로 처집니다. 공간 확보도 안 되는 상태에서 하루 수십만원에 이르는 항온, 항습시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훼손상태가 심각하거나 환경에 민감한 철제 유물 같은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시설로 보내지만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훼손에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어요.” 이런 사정은 비단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 대학의 박물관으로 가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발굴보다 심각한 게 보존문제다. 세상에 나온 유물들은 열악한 보존환경에서 땅 속에 있느니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발굴유적에서 고개를 돌려 박물관에서 썩어가는 유물을 돌아볼 때라고 이야기한다. 풍납토성의 예처럼 발굴유적의 훼손이 조명받는 사이 창고 안의 발굴유물은 더욱 심각한 훼손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3만㎡ 이상 건설현장에 지표조사를 의무화하는 ‘문화재 지표조사 의무화’가 실시된 이후 지방대 박물관의 여건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발굴기관이 부족한 지방의 경우 한해에도 여러 건씩 대학에서 구제발굴에 나갑니다. 발굴 뒤 쌓이는 유물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보존 공간은 늘릴 엄두를 못내니, 빈 강의실이나 강당 같은 곳에 쌓아두는 실정입니다. 항온, 항습은 커녕 유일한 보안시설은 자물쇠뿐입니다.”(한 지방대 박물관의 학예연구원) 보관실태가 이렇다 보니 유물의 숫자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수백년 혹은 수천년 만에 세상 빛을 본 유물 중 수만점이 호적도 얻지 못한 채 떠돌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감사원에서 실시한 문화재 보호실태 특감에서 대학 박물관을 포함한 48개 박물관이 유적지를 발굴하면서 누락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16만4979점의 문화재를 국가에 귀속시키지 않은 사실 등 81건의 위법·부당사항이 적발됐다. 이 중 서울의 한 대학은 64년에서 74년까지 발굴한 구석기 유물 5만1493점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표본조사한 7개 대학박물관의 금속 문화재 801점 가운데 반수가 보존 및 관리대책 미비로 부식돼 보존처리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발굴되는 유물들이 모두 국가 귀속이 되는 만큼 ‘임시보관’을 하고 있는 대학들은 정부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올해 교육부에서 사립대학 박물관 지원에 투입되는 예산은 2억5천만원. 대학 한곳에 돌아오는 돈은 고작해야 몇백만원에서 몇천만원에 불과하다. 보존공간 확충을 위한 건물 설립은 말할 것도 없고, 하루 전기요금만 십만원이 넘게 들어가는 항온항습설비를 갖추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지원이다. 유물의 주인인 국립박물관 수장고 역시 포화상태라 유물을 넘겨받기 어려운 형편에서 위탁관리를 하고 있는 대학 박물관은 “탁아소에서 우유값과 기저귀값까지 부담해야 하는 격”이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부끄러운 현실
“구제발굴은 전장터에서 벌어지는 응급치료와 같은 것이다.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으면 매장유물은 도로나 건물 밑에 영원히 묻혀버리는 것이다. 밀려드는 구제발굴에 매달리다 보면 학술발굴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실정이다.” 시설 미비와 함께 두드러지는 문제는 보존인력의 부족이다. 이는 국립박물관과 대학박물관이 별반 다르지 않다. 국내 최대규모인 국립중앙박물관의 보존처리 요원은 4명, 여기에 해외에서 유학까지 다녀온 고급인력 12명이 일용직으로 근무한다. 보존처리원이 한해 처리할 수 있는 유물수는 많아야 500개 미만이다. 20만점이 넘는 중앙박물관의 유물과 한해 5만개 이상 발굴되는 유물 수를 감안할 때 이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경우 보존요원들만 수십명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의 현황이라기에는 부끄러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중앙박물관의 사정이 이러하니 지방의 국립박물관이나 대학 박물관의 보존요원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진주국립박물관의 이내옥 관장은 “가까운 일본만 해도 사전조사원과 발굴요원, 관리요원이 철저히 일분담을 하고 있는데 비해 박물관 인력이 부족하니 학예연구원이 발굴에서 관리, 심지어 전시디자인까지 하느라 정작 본업인 연구할 시간이 없다”면서 “이런 여건에서 우수한 연구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개탄한다. 현재 문화재보존과학 전공을 두고 있는 대학은 용인대학과 공주대, 그리고 지난해 설립된 한국전통예술학교 정도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건무 학예연구실장은 “정규 대학과정이 아니라도 국립문화재연구소 같은 전문기관에서 전문가양성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문화재청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전문가 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전문가 양성 급하다
그러나 호암미술관 문화재보존과학연구소의 이오희 실장은 “전문가 양성 이전에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박물관이나 연구소를 늘리고 이들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지적한다. “보존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외국에까지 나가 공부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정작 안정적으로 일할 자리가 없다. 하늘에 별따기인 국립기관에 들어간다고 해도 학예직보다 낮은 기능직에 속하고 그나마 자리가 없어 일용직으로 일자리를 잡는 것도 감지덕지해야할 실정이다.” 문화재 전문가를 단순한 기능공 정도로 받아들이고 그나마 박물관의 ‘품위유지’ 요건에서 배제하는 문화재청과 정부쪽 태도는 문화재에 대한 마인드 부재를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문화재 발굴과 보전을 위해 예산확보보다 시급하고 근본적인 과제는 문화재를 바라보는 정부 태도의 변화인 셈이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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