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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무덤 파러 ‘등산 가는’ 사람들 100년의 역사 도굴꾼의 세계… 고고학자 뺨치는 식견 갖춘 이도 적잖아
그런데 사내들은 엉뚱하게도 묘지에 쇠꼬챙이를 찌르는 기괴한 행동만 반복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묘지는 퇴계 이황의 일가인 진성 이씨 문중의 묘지였다. 사내들은 묘지 여기저기에 계속 쇠꼬챙이를 찔러대고 있었고, 묘지 한쪽에는 도자기 2점, 삽과 괭이 등이 놓여 있었다. 이씨는 그제서야 도굴을 떠올렸다.
가을은 ‘도굴의 계절’
마침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던 이씨는 곧바로 안동경찰서 도산파출소로 전화를 걸었다. 도산파출소 박용우 순경 등 두명의 경찰관이 즉각 출동했다. 전경 두명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결국 현장에서 임아무개(64)씨가 잡혔고, 현장에서 달아난 젊은 사내도 나중에 안동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붙잡혔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임씨 집을 추가 수색하던 경찰은 깜짝 놀랐다. 임씨의 집 창고에는 ‘작은 박물관’이라고 말할 정도로 숱한 유물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고려시대 항아리 2점, 목곽류 5점, 황동화로 1점, 벼루 1점, 고서적 277점 등 무려 286점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유물과 유적이 있는 한 도굴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화재 단속을 하는 한 경찰관의 말이다. “이제 도굴은 없다”란 문화재청 관계자의 말과는 분명 다르다. 실제 도굴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숫자가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을 뿐, 도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진짜 등산가들에게는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도굴꾼들은 도굴을 오래 전부터 흔히 등산에 비유해 왔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고미술품들이 암거래 되던 인사동, 청계천 등지에서 “등산가자”라는 말을 어렵잖게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문화재청에서 15여년을 문화재보호 업무를 해 온 강신태(50)씨는 말한다. 강씨는 “가끔 낚시가자”고 말하는 도굴꾼도 없잖다고 덧붙인다. 도굴꾼들의 활동시기는 보통 요즘 같은 가을철이나 봄. 땅이 너무 딱딱하게 굳은 겨울은 땅파기가 쉽지 않고, 여름은 녹음이 너무 우거져 묘지 진입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문화재 사범 단속을 전담하고 있는 경찰청 마약지능계에 따르면 국내 도굴꾼들은 보통 3∼4명이 한조를 이룬다. 한두명의 전문 도굴꾼과 인부들로 구성돼 있다. 장비도 매우 간단하다. 탐침봉, 야삽, 나침반 등만 있으면 얼마든지 작업이 가능하다.
요즘 도굴꾼 대부분 50∼60대
이 가운데서도 안동의 도굴범 임씨가 이씨 문중의 묘지를 찔러대던 쇠꼬챙이, 바로 ‘탐침봉’은 핵심장비. 도굴꾼들은 흔히 이를 ‘꼬질대’라고 부른다. 탐침봉은 가운데가 빈 강철인데, 보통 25∼30cm의 크기로 양끝에 암수나사가 있어 묘지 도굴 때에는 이들을 각기 잇대어 사용한다. 20∼30cm의 탐침봉을 여럿 연결해 보통 1.5m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 사용하는데, 무덤이 클 때는 5m까지 늘려 사용하기도 한다. 도굴꾼들은 이 탐침봉을 무덤 속에 찔러넣어 그 부딪히는 소리만으로도 유물이 ‘있고 없고’는 물론 유물 종류, 심지어 재질까지도 기가 막히게 파악한다고 한다. 고미술상들에 따르면 특히 이런 도굴꾼들 중에는 풍수지리, 봉분의 연대 등에 나름의 식견을 가져 그야말로 고고학자 뺨치는 이들도 적잖았다고 한다. 하지만 도굴한 문화재의 가치를 몰라 수억원의 물건을 심지어 해외에 단돈 수백만원에 팔아 넘기거나 소중한 문화재를 함부로 훼손하는 도굴꾼이 더 많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도굴꾼들은 전국에서 대략 3만∼5만명이 추산될 정도로 들끊었다. 그러나 그 수와 규모가 크게 줄어 90년대 이후에는 대략 1천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경찰은 추산하고 있다. 도굴꾼들이 준 이유는 경찰의 단속과 문화재청의 활약 때문이 아니다. 우선 구한말부터 도굴이 이뤄져 도굴역사만 해도 100년이 넘어 이제 국내에선 “팔 곳은 웬만큼 파서” 더이상 값나가는 물건을 땅 속에서 건지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 제일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다보니 최근 도굴 양상은 알려지지 않은 무덤을 파헤치는 경우보다 이미 알려진 무덤을 다시 파고드는 양상을 보인다. 도굴꾼들의 ‘세대교체’가 안 된 것도 또 하나의 이유라고 한다. 일제시대부터 움직여온 1세대 도굴꾼들은 대체로 지금은 70∼80대 고령. 이들은 이제 늙어 도굴현장에서 활동하기가 더이상 쉽지 않다. 요즘 적발되는 도굴꾼들도 2세대격인 50∼60대가 대부분이다. 활동할 수 있는 전문 도굴꾼들이 갈수록 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고미술품 시장이 90년대 이후, 특히 구제금융 이후에는 꽁꽁 얼어붙어 도굴을 해도 유통이 거의 안 되는 것도 나름대로 영향을 끼쳤다고 고미술상들은 전한다. 도굴꾼들이 업종전환을 한 탓도 크다. 수많은 도굴꾼들은 고미술품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실상 단순절도범으로 전공을 바꿨다.
나는 도굴, 기는 단속, 밑바닥 회수율
문화재 사범은 사실 이런 전문가형 도굴꾼이나 푼돈을 노리는 문화재 절도범만이 아니다. 가정주부, 심지어 스님까지도 끼어드는 경우도 있다. 지난 9월20일 경북 영주시 풍기읍 전구리에서 경북도 지정 문화재 제351호 석불입상여래불상 1점을 절취한 혐의로 검거된 문화재 사범은 뜻밖에 한 암자의 주지 신아무개(44)씨였다. 도굴꾼을 비롯한 문화재 사범의 범죄는 해마다 끊이지 않는다. 경찰청에 따르면 적발된 경우만 하더라도 95년의 경우 7건 679점이던 것이 되레 늘어나 96년 16건 1947점, 97년 23건 1038점, 98년 37건 1006점으로 증가추세를 보였다. 그러다 나라경제가 약간 호전되는 99년 들어 조금 줄어 32건 145점이었고, 2000년 상반기에는 12건 108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도난 속에서 문화재 회수율은 극히 저조하다. 95년에는 기껏 1건 18점에 불과했으며 96년 3건 6점, 97년 5건 18점, 98년 6건 399점, 99년 5건 6점, 2000년에는 1건 18점 등이다. 한마디로 “나는 도굴, 기는 단속 밑바닥 회수”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문화재청에서 단속업무를 보는 이는 단 2명뿐이며, 경찰도 경찰청 마약지능계가 나름의 수사를 펼치고 있지만 사실상 단속전문가가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도굴꾼이나 절도범들에게 “문화재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라고 외쳐댔자 한낱 공염불일 뿐이다. 문화재청과 검·경찰 등 당국의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문화재 보호대책만이 도굴과 도난을 막을 수 있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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