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0년09월20일 제326호 

[표지이야기] “애정어린 비판과 투자를”

시민 참여 배심원제 도입은 부적절… 법원의 가장 큰 문제는 관료화와 효율화

서울지법 한 부장판사와의 도전인터뷰

-법관의 판결이 상식과 부합하고 있다고 보는가.

=글쎄, 판결이 일반 국민의 상식과 맞아야 한다는 부분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분쟁이 해결되지 않아 결국 법원까지 오는 게 아니냐? 항상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는 것이 법에 의한 판단이다. 위법한데도 취소할 정도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고 취소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법관의 선택 문제로 들어가는 만큼 판사의 가치판단이나 세계관은 중요하다.

-법원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 적이 전혀 없는데.

=법관의 판결에 대한 사후 문책은 전혀 없다. 하지만 명백한 오판이나 법리오해가 있었다면 그 법관에 대해 법원 내부적으로 평점을 매기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법관이 스스로 분쟁에 휘말리게 되면 본인의 문제 때문에 다른 재판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판사의 판결이 평가 대상이 되면 기존 판례만 답습하는 법원 관료화가 심화할 우려도 있다.

-우리의 높은 항소율이나 상고율은 법원판결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상급심과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것은 필수적으로 생기는 비용이다. 대개 상·하급심 판결은 사실증거에 대한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달라진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문서를 잘 안 쓰고 거짓말이 쉽게 통용되는 독특한 우리 문화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다보니 모든 사건에서 증인조사를 해야 하고 위증도 많아 우리는 재판의 80%가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데 소요된다. 이는 판사의 오판여지를 많게 하는 요인이다.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원제 도입은 어떻게 보나.

=배심원제가 판사의 판단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보완하는 기능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의 사법 관료화 문제를 배심제로 보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관료화는 법원 내부에서 정면돌파해야 한다. 배심원을 뽑는 것도 어려운데다 소송당사자가 자기 재판에서 배심제를 선택할 경우에는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일부 계층만 혜택을 볼 수 있다. 특히 법률상식이 없는 일반 배심원이다보니 이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칠 수 있다.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소장판사 모임이 있다는데.

=법원 내부의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성향의 젊은 판사 100여명으로 구성된 모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가보안법이나 노동판례 등과 관련해 법을 연구하고 사법현실을 고민하는 판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밖에서는 욕하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판사들처럼 양심적이고 자존심 하나로 사는 분야도 적을 것으로 본다.

-그동안의 사법개혁이 말뿐인 구호에 그쳤다는 지적이 많은데.

=국민들의 ‘사법불신’이 더 깊어지면, 사법부를 거부하고 사설법원을 만들라는 요구가 일어날 수도 있다. 지금 법원의 가장 큰 문제는 관료화와 효율화다. 대법원 판결이나 상급 법관의 의사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면 위험시하는 분위기가 법원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턱없이 적은 수의 법관으로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다보니 다들 바쁘고 따라서 문제의식을 가질 겨를도 없다. 이런 사정을 제대로 알고 법원을 살리려는 방향에서 애정어린 비판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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