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0년09월20일 제326호 

[표지이야기] 대법관들 ‘구멍가게’로 떠나다

퇴임 뒤 스카우트 추파 받으며 대부분 변호사 선택… 윤관 대법원장까지 로펌 고문으로


(사진/“대법관도 나그네.” 대법정에서 위엄을 갖춘 이들도 결국 퇴임 뒤엔 변호사라는 ‘구멍가게’를 선택한다)


“법관은 변호사 준비의 견습생 비슷한 나그네요, 영원한 직업은 변호사.” 감사원장을 지낸 이시윤 경희대 법대 학장은 법조계에서 법관의 자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한번 법관은 영원한 법관’이라는 자부심보다 중간에 변호사로 개업하려는 법관들의 속내를 ‘나그네’에 빗대 꼬집은 것이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좀더 신랄한 내부비판을 들어보자. “교사로서의 보수보다 구멍가게 수입이 더 낫다고 너도나도 교사를 그만 둘 생각을 하면서 수업을 하고 있다면, 학생들이 그 수업을 신뢰할 수 있을까? 심지어 교장 선생님까지도 퇴직한 뒤에 구멍가게를 차려놓고,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서울지방법원 한 부장판사의 강한 반문이다.

퇴직 법관들이 법원청사 앞에 변호사 사무실을 여는 모습을 퇴직 교사가 학교 앞에 구멍가게를 차리는 모양으로 빗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관예우’가 없다는 법조계의 말을 시민들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리 없다는 지적이다.

교사로서 최고 명예를 누린 ‘교장 선생님’이 학교 앞에서 구멍가게를 차리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다. 지난 7월10일 6년 임기를 마친 대법관 6명이 퇴임식을 치렀다. 법조인으로 최고 명예를 누리고 재야로 돌아가 2개월이 흐르는 동안, 이용훈 전 대법관을 제외한 퇴임 대법관들은 모두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돈희, 김형선, 지창권, 신성택 전 대법관은 개인 법률사무소를 냈고, 이임수 전 대법관은 국내에서 가장 큰 로펌으로 꼽히는 김장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개업했다. 대법관들이 퇴임 뒤 변호사로 개업하거나 로펌의 변호사로 활동하는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 이후 대법관직을 수행하다 퇴임한 26명 가운데 22명이 개인 법률사무소를 열거나 로펌에 소속되어 있다(표 참조). 대법원장 역시 이런 상황에서 예외가 아니다. 윤관 전 대법원장은 현재 화백 법무법인의 고문으로 있고, 최종영 현 대법원장도 대법관을 지낸 다음 변호사로 개업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이재명 간사는 “법관으로서 최고 명예를 누린 이들은 공익적인 소송이나 무료 변론 등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게 바람직하다”며 “대법관들이 변호사로 개업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변호사로 개업한 전 대법관들은 이런 비판을 어느 정도 수용한다. 이임수 전 대법관은 “변호사로서 전 직장을 상대로 직업을 갖는 것이 꼭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고, 윤리적으로 금한다면 최고 법관을 지낸 이들이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생계’와 ‘직업상의 제약’ 때문에 변호사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대법관들이 생활에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욕심을 내어 변호사로 나선 것은 아니다”며 “나름의 품위를 유지해야 하고, 연금으로만 생활하기에는 벅차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 일생을 보낸 만큼 변호사 이외에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제약도 있다.

이용훈 전 대법관은 “오랫동안 공직에 있었기 때문에 변호사로 나서 돈벌이 하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면서도 “연금으로만 살 수도 없고, 판사를 하다 퇴직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변호사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전 대법관은 마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변호사 개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법관의 정년은 65살이지만 올해 퇴임한 대법관들의 나이는 50대 후반∼60대 초반이다. 이 연령 때 사회 활동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이른 나이에 대법관이 되는 관행이 퇴임 뒤 변호사 개업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법관 출신 나오면 후배들 쩔쩔맨다





(사진/대법관 퇴임 뒤 변호사를 지냈던 윤영철 현 헌법재판소장, 대법관을 지낸 뒤 변호사를 했던 최종영 현 대법원장)

하지만 변호사로 개업한 선배 법관을 바라보는 법조계 일각의 시각은 차갑다. 서울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관들부터 변호사 개업을 포기하는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전 대법원장이 변호사로 개업을 하거나 로펌에서 일하는 것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사법부의 수장을 지낸 이로서 명예롭지 않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는 “명예를 다 누리고도 벌 수 있는 돈을 다 벌 생각을 가지고서는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 헌법재판소장에 임명된 윤영철 전 대법관은 지난 93년 재산공개 때 7억6천여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이후 변호사로 개업하고,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법률고문으로 일하면서 재산은 22억8천여만원으로 불어났다. 변호사로서 그는 97년 1억2천여만원, 98년 9700여만원, 99년 8700여만원의 사업소득세를 낼 정도로 높은 소득을 올렸다. 대법관 출신이 변호사로 개업했을 때의 수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직 고위 법관을 둘러싸고 벌이는 로펌들의 스카우트 경쟁은 변호사업계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상당한 금액의 스카우트 비용이 들어간다. 전직 고위 법관을 영입하려는 이유에 대해 ㅇ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눈에 보이는 효과가 명백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라는 점만으로도 소송 의뢰인들한테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의 이름이 들어가면 소송에서 지더라도 의뢰인은 ‘질 수밖에 없었다’고 여긴다. 또 전직 대법관을 통해서 큰 사건을 수임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로펌이 전직 고위법관을 영입하려는 이유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전 직장에 끼치는 이들의 영향력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맡은 상고심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기각되지 않고 대법원의 심리대상으로 올라간다는 이야기는 법조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내 법정에 서서 변론을 하는 전 대법관의 모습을 대하는 후배 법관들의 부담은 만만치 않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대법관 출신 선배가 변호사로 나서면 절차의 편의를 봐주고, 증인 조사도 적절한 선에서 그만두라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것이 판결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간접적으로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대법관이 변호사로 직접 재판에 나왔던 경험을 몇 차례 한 다른 판사는 “심적 부담을 느끼느냐 그렇지 않느냐보다 심적 부담을 느낄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용납되지 않는 일

최고 법원의 법관을 지낸 이들이 변호사로 개업하거나 로펌에서 일하는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한동대 이국운 교수는 “제도는 서로 다르지만 영미법계나 대륙법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최고 법원의 법관 출신이 대기업이나 사익을 위해 변호사로 일방 당사자를 편드는 일은 없다”며 “가장 명예로운 법조 경력을 지닌 이들이 사적인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을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위 법관들의 변호사 개업을 막을 방법은 없다. 변호사로 나서지 말라는 요구도 엄연히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는 만큼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비판도 직업윤리적인 차원에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시민단체와 법조계는 일정 기간 변호사나 검사를 거친 이를 판사로 임용하는 판사임용 제도의 개혁(법조일원화) 등도 현직 법관들의 ‘나그네 의식’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90년 이후 퇴임 대법관
및 변호사 개업 현황

 이 름 (전 직)

 현   직

김덕주 대법원장

동남합동법률사무소

최재호 대법관

성광합동법률사무소

이회장 대법관

한나라당 대표

박우동 대법관

법무법인 광장 대표

윤관 대법관,대법원장

법무법인 화백 고문

배석 대법관

사망

이재성 대법관

정년퇴직 뒤 변호사 개업

배만운 대법관

변호사 개업

안우만 대법관,법무부장관

변호사 개업

윤영철 대법관

변호사 개업,현 헌법재판소장

김용준 대법관

-

김상원 대법관

변호사 개업

김주환 대법관

변호사 개업

김석수 대법관

변호사 개업,삼성전자 사외이사

박만호 대법관

변호사 개업

최종영 대법관

변호사 개업,현 대법원장

천경송 대법관

법무법인 화백 고문

정귀호 대법관

바른법률사무소 대표

안용득 대법관

변호사 개업

박준서 대법관

법무법인 광장 고문

이돈희 대법관

변호사 개업

김형선 대법관

변호사 개업

지창권 대법관

변호사 개업

신성택 대법관

변호사 개업

이용훈 대법관

-

이임수 대법관

김장법률사무소

황상철 기자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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