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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A급, B급과 동침하다 광고·미술·영화 등 A급문화에 전방위적으로 파급되는 B급문화의 에너지
유치하거나 혹은 진지하거나
제프 쿤스와 박불똥씨가 B급문화의 가벼움과 유치함을 무기로 주류를 조롱했다면, 반대로 B급영화의 진지함이 주류영화계에 놀라움을 던진 사건도 있다.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B급영화는 주류 자본이 만들지 않았으면서, 스타 출현이 없고, 동시에 상업적 지향성이 있는 대중영화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인디영화이면서 B급영화”라고 영화평론가 남동철씨는 말한다. 공업고등학교 출신 친구들의 고단한 삶과 죽음을 그린 이 영화는 전국에서 다섯개 극장도 확보 못하고 개봉했다가, 관객의 엄청난 호응과 쏟아지는 평론가들의 찬사에 힘입어 35㎜로 블로업해 확대 개봉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B급은 촌스럽다”는 기존의 관념을 깨부수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경우로 평가된다. 이렇게 B급문화가 상업적으로 힘을 받으면서 A급문화와의 구별이 모호해진 대표적인 장르가 만화다. 전통적으로 만화란 일반인들에게 있어 예술의 한 갈래라기보다 오락을 위한 킬링타임용 문화상품으로 인식되어왔다. 많은 B급문화가 그렇듯이, 만화는 A급문화의 유통경로와 다른 경로를 통해 유통됐다. 즉 소설책이나 시집은 서점을 통해 유통되는 반면 만화책은 만화방이라는 독자적인 유통체계를 통해 향유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만화가 재평가되면서, 만화도 서점을 통해 많이 구해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슈피겔만의 만화 <쥐>가 피카소와 뉴욕 모던아트미술관에 나란히 놓여 있을 정도로, 만화가 A급문화에 속하는지 B급문화에 속하는지를 단정적으로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거칠지만 솔직한 낙서의 매력
전혀 상업적 성격이 없었던 B급문화가, 성장하면서 상업적 성격을 띠게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B급문화인 낙서에는 상업성이 없었으나, 낙서문화가 활발해지면서 낙서를 모아 출판하는 사람도 생겼다. <낙서금지: 대학가 낙서의 비밀을 파헤친다>(진선출판사)는 낙서 사진을 찍어 출판한 예다. 낙서 전용 사이트도 있다. 욕설섞인 낙서를 쓰게끔 만들어놓은 전문 사이트 www.eeeii.com, 사이버 화장실 www.crosswinds.net/~restroom 등이 대표적인 예다. 따지고 보면 익명게시판을 가진 사이트들 대부분이 온라인 낙서문화의 일부분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예의와 논리가 필요한 A급문화 토론에 반해, 거칠지만 솔직한 B급문화 낙서는 에두르지 않은 표현이 가능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데 그 매력이 있다. 이처럼 낙서가 대중에게 가지는 흡인력이 크기 때문에, 대학가 축제나 동성애 축제에서도 낙서보드를 만들어놓고 마음껏 의견을 쓰게 해, 대중의 참여도를 높인다. 또 대학 총학생회 중에서는 낙서장을 대학 내 화장실에 붙여놓아, “이번 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식으로 적어두고 여론조사의 장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결국은 B급의 승리다?
이렇게 B급문화상품이 A급문화시장에 파고들 수 있는 에너지는, 역설적으로 B급문화의 가난하고 소외된 태생에서 유래된 것이다. B급문화의 시작이 ‘소자본, 주류문화 바깥’이었기에, 적은 자본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좀더 적나라한, 혹은 솔직한 표현을 구사해야 만했고, 주류문화 바깥에 있기에 A급문화적 검열이나 체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성기완씨는 “지금은 고전적 할리우드 시대처럼 A급과 B급이 명확히 나눠져 있는 시대가 아니고, A급과 B급문화가 서로를 혼성모방하는 시대”라고 규정한다. 이 과정에서 B급은 A급문화의 표현적 상투성을 고발할 수도 있고, 때로는 A급문화를 패러디하며, A급문화가 해내지 못하는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A급문화는 촌스럽고 정돈되지 않았지만 야성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B급문화에서 에너지를 빌려 오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B급의 승리다”라고 성씨는 덧붙인다.
이민아 기자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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