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0년08월29일 제324호 

[표지이야기] 유전자를 차별하지 말라

적극적 우생학, 자칫하면 사회적 유대 깨뜨리는 생물학적 불평등으로 연결될 수도


(사진/개인과 가족의 동의없이는 기업이나 정부의 유전정보 접근을 금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왜야 한다.(주)코젠바이오텍의 유전자 검사 장면)


분자유전자학자를 비롯한 세계 과학자들이 왜 유전자 연구에 매달리는가? 유전자 지도가 작성되고, 각 유전자의 단백질 및 효소 형성 기능, 그리고 질병과의 인과적 관계가 해명되면, 질병의 예방과 치료뿐 아니라 생물산업(bioindustry)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며, 인간의 유전정보는 인간 삶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인간의 의도적인 손에 의해 이루어진다. 문제는 변화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방향이다. 유전정보는 ‘깨끗한 손’에 의해 선하게 이용될 수도 있지만 ‘더러운 손’에 의해 얼마든지 악하게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정보유출로 인한 사생활 침해

물론 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삶을 100%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은 참이 아니다. 하지만 유전자는 하나의 잠재태로서 인간의 신체적 조건, 질병, 정신적 능력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 사실’이다. 따라서 한 개인의 유전정보는 그 개인의 현재 상태뿐만 아니라 미래의 질병이나 자질까지 어느 정도 담고 있는 사생활의 본질적인 부분에 속하기에, 누군가가 내 개인의 유전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나의 사생활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더군다나 한 개인의 유전정보는 그 가족의 공동자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유전정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가족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개인은 자신도 모르게 유전정보가 타인에게 누출되기 십상이다.

특히 유전정보 은행을 설립하여 개인의 유전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할 경우 이런 정보유출로 인한 사생활 침해는 새로운 법적 분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유전자검사는 유전자 차별을 만들어낼 것이다. 유전정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속하지만 이해관계를 지닌 기업체나 정부는 어떻게 해서라도 개인의 유전정보를 손에 넣으려고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유전자검사 결과 자궁암 유발 유전자 보균자로 밝혀진 25살 여성이 한 회사에 취업 원서를 접수하고 생명보험회사에 가입하려고 한다고 하자. 보험사나 기업체의 반응은 어떨까? 이 여성의 유전정보를 알고자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건강한 유전자 소유자가 생산성 향상과 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요, 보험사 역시 미래의 질병 발생 여부에 따라 적용 보험료를 달리 하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체에서는 작업 환경을 개선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열악한 환경에 감염되기 쉬운 유전자를 지닌 사람을 아예 고용하지 않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려고 할 것이다. 기업체나 보험사가 개인의 유전정보를 알게 될 경우, 아직 그 질병에 걸리지 않았으며 미래의 발병 개연성 역시 불확실함에도 단지 자궁암 유발 유전자 보균자라는 사실로 인해 개인이 고용이나 보험에 있어서 차별을 받게 될 것이다.

심지어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이런 열등 유전자를 지녔다는 이유로 다른 가족이 차별을 받을 수도 있다. 국가 역시 사회적 비용 절감과 우생학적 목적으로 특정 질병이나 장애 유발 유전자를 지닌 개인의 출산을 억제하는 한편, 우등 유전자를 지닌 자녀 출산을 장려하는 ‘인종개발’ 정책을 펼 수도 있다.

자녀출산에까지 확대적용될 경우…


(사진/대검찰청 DNA분석실의 DNA차트.개인의 유전정보는 그 가족의 공동자산이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부당하듯이 이러한 유전자 차별 역시 정당하지 못하며,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비인도적 행위이다. 따라서 이런 사생활 침해와 유전자 차별을 예방하자면 개인의 자발적 동의없이는, 때로는 가족 전체의 동의없이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기업이나 정부의 유전정보 접근을 금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게놈 프로젝트를 비롯한 유전체 연구의 궁극적 목표는 단순한 학적 호기심이나 알권리 충족이 아니라 ‘유전자 치료’ 내지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인간 행복의 실현이다. 신체적 자율권과 행복추구권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기에 불행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치료하는 ‘소극적 우생학’에 대해서는 반대하기가 어렵다.

문제는, 치료와 자질 함양을 구획하는 객관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유전자 치료가 질병 치료를 넘어서 자질 함양을 위한 유전자 조작으로, 즉 ‘적극적 우생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자질 함양을 목적으로 유전자를 선택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가? 일부 학자들은 적극적 우생학을 성형수술에 비유한다. 즉,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성형수술의 자유를 지니듯이, 비록 유전자 조작을 통한 것이라 할지라도 키나 몸매와 같은 신체적 조건뿐만 아니라 IQ와 같은 정신적 능력의 함양을 위한 유전정보 이용 역시 전혀 문제가 없는 개인의 선택 사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공평성을 이유로 들어 신체적 자율권과 행복추구권의 이러한 확대해석에 반대한다. 즉, 올림픽 경기에서 약물 복용을 통한 달리기 실력 향상이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어기듯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능력의 함양 역시 한 사회의 공정한 게임 규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유전자 치료가 ‘고비용 의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러한 비판은 설득력을 지닌다. 즉, 오직 부자만이 이 의술의 혜택을 받게 되어, 사회적 개념인 부자와 빈자의 구분이 이제는 아예 생물학적 차원에서 고착화되어 우등 인간과 열등 인간으로 나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생물학적 불평등’을 낳아 정의의 핵심인 공평성을 상실하게 되어 사회적 유대감이 깨어질 것이다.

이런 유전자 조작이 자녀 출산에까지 확대 적용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혼란이 예상된다. 왜냐하면 의술이 발달하면 정자, 난자 단계나 태아 단계에서도 유전자검사가 가능해 자녀의 성, 장애 유무, 신체적 조건 심지어 자질까지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주로 원하지 않는 유전자를 지닌 정자, 난자 혹은 태아를 제거하는 소극적 방법으로 원하는 자녀를 선택할 것이나, 의술이 가능하면 부모는 적극적으로 유전자를 변형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자질을 갖춘 자녀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제까지 자식은 부모가 낳았지만 자식의 유전자는 부모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유전자를 변경당하지 않을 권리

부모에 의한 유전자 선택 및 조작은 부모의 가치관에 따라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부모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일종의 온정주의(paternalism)에 해당된다. 이에 대해 생명윤리학자들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이상 유전자’를 제거하는 온정주의적 간섭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부모의 사적인 가치를 개인에게 강요하는 형태의 유전자 조작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반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모든 개인은 자신의 유전자가 변경당하지 않을 권리를 지니기 때문에 설사 부모라 할지라도 본인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는 한 유전자를 마음대로 변경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전자 선택은 곧 ‘인간에 의한 인간 선택’을 가능케 하여, 인간이 하나의 제품이 되어 결국 인간존엄성이 상실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현재적 이익’을 강조하는 반면에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는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며 자위하고 있다. 잠재적 위험과 인간의 권리에 대한 윤리학적 고려없이 게놈 연구가 이루어질 경우 ‘게놈’은 ‘개놈’이 되어 결국 우리 인간을 그리고 우리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수도 있다.

김상득/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연구강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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