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0년08월23일 제323호 

[표지이야기] 차이 깨닫고 성숙에 이른다

책임있는 논쟁으로 자기 성찰의 계기 마련… 건강한 토론문화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사진/역사아카데미가 주최한 고교생 원탁토론광장에 참여한 학생들이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논쟁을 벌이다 한쪽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 허망하게 끝나는 논쟁이 많다. 서로 상대의 주장을 비판만 하다 성과없이 끝나는 학문적인 논쟁도 있다. 하지만 논쟁다운 논쟁이나 책임있는 논쟁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비판을 받아들이며 한걸음 나아간 논쟁을 통해 현실 인식의 폭을 넓히기도 한다.

최근 이뤄진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한반도 분단의 비극성을 도드라지게 했다. 분단에 대한 이해와 이를 극복하는 과제는 학계의 중심 논점 가운데 하나다. 이런 논의에서 ‘분단체제’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분단에 대한 인식틀로 이 개념은 서울대 백낙청 교수가 90년대 초반 화두를 던졌고 잇단 논쟁을 통해 사회 일반에 확산됐다.

반론-재반론을 통해 인식의 폭 확대

백 교수는 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라는 글을 발표하고 94년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이란 책을 펴냈다. 백 교수는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 파악된다. 성격이 다른 남북한이 분단체제 안에서 또다른 차원의 하위체제로서 존립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북 어느 쪽도 각자 완결된 체제가 아니고 동시에 극복·변혁돼야 할 대상이란 점에서, 남북으로 갈린 우리 현실을 좀더 총체적·체계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분단체제의 개념화와 이론적 해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남과 북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별개의 사회구성이라는 점을 전제로 통일문제를 사고하던 기존 논의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북한 역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일부이며 분단체제가 “일정한 지속성 즉 자기재생산 능력”을 가진다는 분석이었다. 그러면서 백 교수는 분단체제에 대한 치밀한 현실 분석은 “굳이 따지자면 문학도보다는 사회과학도의 일차적 숙제”라고 논의의 진전을 바랐다.

이 몫을 서강대 손호철 교수가 맡았다. 손 교수는 94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분단체제론의 비판적 고찰’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먼저 분단에 대한 체계적인 사회과학적 이해가 미진했음을 인정하면서 “통일문제가 첨예한 쟁점으로 부상할 향후 정세를 고려할 때 분단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이 인식틀은 그 자체가 커다란 자원이 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손 교수는 “남북한이 ‘체제’에 값할 만큼 상회의존적인지 의심스럽다”며 “분단체제론이 지금까지 경시했던 남북한 지배세력의 공통의 이해관계를 부각시킨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나치게 강조해 대립적인 측면을 부차화시키는 역편향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논쟁은 94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와 겨울호에서 백 교수의 반론과 손 교수의 재반론으로 이어졌다. 백 교수는 95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발표한 ‘민족문학론, 분단체제론, 근대극복론’을 통해 논쟁 과정을 정리하며 “‘우리 사회’라는 분석단위 자체를 다층적으로 채택한 점은 실제로 ‘분단모순’ 개념의 모호성에 관한 손호철 교수 등의 비판에서 힘입어 나온”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이들의 논쟁을 통해 한반도 분단 현실에 대한 인식과 소련·동구사회주의권이 몰락한 이후 ‘제3의 통일 모형’을 찾던 통일운동의 현실적 고민도 깊어졌다.

이 논쟁은 지면을 통한 이른바 식자층의 논쟁이었다. 일반인이 지면을 통해 논쟁하기란 쉽지 않다. 반면 사이버공간은 곳곳에서 불을 뿜는다. 저속한 표현으로 사이버 토론에 편견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이곳에도 배울 만한 논쟁의 모습이 발견된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공무원 채용시험 때 군필자한테 가산점을 주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사회가 떠들썩했다. 온라인 토론방에서도 군가산점 폐지를 둘러싼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섰고 ‘여자도 군대에 가라’는 식의 감정적인 발언도 튀어나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인터넷한겨레’ 토론방에서 충남대 류동민 경제학 교수와 군면제자이면서도 군복무자에 대한 보상을 주장한 최용호씨의 논쟁이 벌어졌다. 4차례 진행된 반론과 재반론을 통해 이들의 논쟁은 ‘차별’과 ‘차등’에 관한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토론 상대방의 자격을 따지는 사회의 토론 풍토에서 류 교수가 통신상의 논쟁에 뛰어든 것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류 교수한테 모욕적인 발언을 하던 네티즌에게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화풀이나 하고 보자는 심보는 절대로 합리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로서는 불가한 일”이라고 호소하며 차분하게 토론을 전개한 최씨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논쟁은 아쉽게도 “출발점에서부터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었음만 확인”하면서 끝났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성실하고 정중하게 토론해주신 데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생각의 차이에도 서로를 껴안는 모범들





(사진/90년대 '분단체제'를 화두로 논쟁을 벌인 백낙청(위쪽)과 손호철씨)

귀감이 될 만한 토론을 일상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다. 토론하는 방법을 배우지도 못하고 가르치지도 않는 상황에선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대학에서 토론강좌를 열었다는 게 화제가 되는 현실은 토론교육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임에도 의미있게 읽힌다.

한림대는 올해 신입생을 대상으로 사회 현안과 대학생들의 관심사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주제 중심 토론’을 교양필수 과목으로 정했다. 국내 대학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대학의 이광모 교무처장은 “주입식 교육으로는 대학생들이 특정 문제에 대한 자기 견해를 조리있게 얘기하지 못해 토론 능력을 길러보자는 뜻에서 강좌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토론강좌를 열기 전에 대학쪽은 인터넷 공모 등을 통해 교수와 학생들한테서 토론 주제를 모아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 ‘군가산점 폐지’ 등 50여개의 주제를 준비했다. 그런 다음 1700여명의 신입생을 30명씩 57개반으로 나눴다. 물론 준비된 주제 이외의 것도 토론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1주일 전에 주제를 정해 학생들이 토론을 준비할 수 있도록 했다. 토론강좌는 애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학생들이 학점을 따야 할 수업으로 받아들여 수동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토론수업이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를 토론 주제로 삼은 반도 있었으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토론을 이끄는 교수들에 따라 토론의 열기에도 편차가 컸다.

이 대학 김재한 교수(정치외교학)는 “학생들이 프리섹스나 돈버는 문제 등에는 관심이 있지만 통일문제나 시사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은 싫어한다”며 “토론을 해도 각자의 생각에는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우리 사회 토론문화가 끼친 영향도 크다”고 지적했다.

한림대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토론강좌를 계속할 방침이다. 올해는 ‘대학생활의 설계’라는 강좌 가운데 절반을 ‘주제 중심 토론’ 시간으로 정했으나 내년에는 토론을 별도 과목으로 열 계획이다. 교수들도 “토론수업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학에서 하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서 토론을 배울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서다.

역사문화아카데미(02-2202-3202)도 토론문화의 텃밭을 일구는 일을 하고 있다. 이곳은 ‘원탁토론광장’을 열어 중·고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다양한 토론을 경험하도록 한다. 토론의 주제는 1년 전에 결정한다. 물론 중·고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아니다. 학생들은 원고지 30장 정도의 논문을 미리 써야 한다. 올해 주제는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이다.

대학가 토론문화 정착 위한 강좌도 개설

학생들이 논문을 내면 심사를 통해 80명의 학생과 이들의 학부모, 교사들이 1, 2차 토론에 참가한다. 참가자는 이때 비공개·공개 모둠(소집단)토론, 공통·분임 주제별 모둠토론, 학생·가족 모둠토론, 대표자 토론 등 다양한 토론을 경험한다. 상황에 따른 토론 방식을 익히고 문답·대화·토의·토론의 차이를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다. 가족 사이에의 호칭도 ‘OOO 토론자’로 불린다. 토론자는 서로 대등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어머니 이남숙(43)씨와 함께 고교생 원탁토론광장에 참여했던 김고운(16·서울 정신여고2)양은 “처음으로 토론이 무엇인지 접해 보게 됐다”며 “어머니와 함께 처음 토론했을 때는 어색했지만 서로 대등한 토론자라는 생각에서 내 의견을 좀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은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어떤 뉴스를 보게 되더라도 자기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이씨 역시 마찬가지다. 토론하는 방법을 배우고 난 다음부터는 의견이 갈리는 사회문제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강치원 원장(강원대 사학)은 “한 사람이 열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열 사람이 같은 한권의 책을 읽고 토의·토론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더 효과적”이라며 “토론을 통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통일점을 찾는 민주성과 공동체성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황상철 기자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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