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0년08월17일 제322호 

[표지이야기] 재일동포, 적대를 씻고 화해 앞으로!

남북공동성명 이후 달라지는 재일동포사회… 하나된 조국 기원하며 동포애로 빗장 풀어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3세 젊은이들에게는 반목도 대립도 없다. 이데올로기 대립이란 이들에게 낡은 구도일 뿐이다. 일본에 대해서도 배타적이지 않았다. 이들의 내면은 남과 북 그리고 일본이라는 세개의 꼭지점으로 연결되고 있다.


(사진/조국의 하나됨을 기원하는 감동의 무대. 재일동포 사회의 반목의 벽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민단과 총련의 '8·15 광복절 55주년 기념 행사.')


80년대, 김남주 시인은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시인은 그 시를 ’삼팔선은 어디에나 있다’는 절규로 마무리했다. 시인이 질타한 것처럼 삼팔선은 반세기 동안 우리 삶 곳곳, 한반도 어디에나 있었다. 하지만 삼팔선은 한반도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삼팔선은 한민족이 발붙인 지구상 어느 곳에나 있었다. 특히 현해탄 건너 재일동포 사회속에서 삼팔선은 더욱 예리했다. 오사카 코리안타운에서 한복집을 한 동포할머니는 “오십년동안 (총련사람한테는) 한복 한벌 팔아본 적이 없다”고 눈을 부라렸고, 총련계의 한 할아버지는 “그동안 그들(민단사람들)이 저지른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되뇌었다. 그렇게 분단된 조국은 그들의 생활 속에 있었다. 그리고 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과 민단(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이라는 두개의 이름은 두개의 조국을 상징해 왔다. 그러나 그런 일본의 동포사회에도 조금씩 변화의 봄바람이 불고 있다. 대립과 반목을 딛고 화해와 희망의 기류가 조금씩 싹트고 있는 것이다.

8월11일 오후 6시, 일본 오사카의 이쿠노 다즈미 공원. 한 행사가 열렸다. ‘6·15공동선언 환영 8·15광복절 55주년 기념행사’. 비록 오사카 이쿠노 시가시(東)지부 차원이지만, 이 행사는 재일동포사회에 큰 의미를 던지는 행사였다. 그동안 반목과 갈등을 거듭해 온 일본의 양대 재일동포조직인 민단과 총련이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공동명의를 내걸고 연 행사였던 것이다.

민단·총련이 함께 마련한 반세기만의 행사


(사진/원코리아 페스티벌에서 관객들이 다같이 “조국은 하나다”라고 외치고 있다.)


행사장에는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앙금을 한꺼번에 씻어 내려는 듯 많은 인파가 몰려 들었다. 미리 준비한 수저 800개가 30분 만에 동이 났고, 자원봉사자들은 모자란 맥주를 실어나르기에 바빴다. 늦게 온 사람들도 “맥주 한잔 못 얻어 먹었다”고 투덜댔지만 얼굴에는 흐뭇함이 가득했다. 참가자 1500명 가운데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도 많았다. 이쿠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사카 등 여기저기서 찾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민단과 총련 양쪽 대표는 이날 기념식장에서 “이렇게 모여 앉기는 처음인 것 같다”며 “큰일은 제쳐두고라도 간단한 일부터 함께해 나가자”고 손을 맞잡았다. 이어지는 대동마당에서 양쪽 사람들은 오직 뜨거운 동포애로 한껏 어울렸다. 먼저 양쪽 젊은이들은 풍물패의 길놀이 공연을 함께하며 화해의 길을 텄고, 그러자 남녀노소할 것없이 재일동포들은 주거니 받거니 축하무대를 이어가며 흥을 돋궜다.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민단쪽 할머니들이 구성진 노래를 전통가락에 실어 보내자 총련가무단은 ‘통일아리랑’으로 화답했다. 무대가 몇번 바뀌자 여기저기서 “좋다!” “얼씨구!” 하는 추임새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누가 총련이고 누가 민단쪽인지는 도저히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흥겹게 어울려 노는 한겨레 한민족일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8월10일, 오사카 국제교류센터. 이날 이곳에서도 뜻깊은 행사가 펼쳐졌다. ‘원코리아 페스티벌’. 올해로 16회째를 맞은 이날 공연은 총련과 민단 어느 쪽에도 얽매이지 않는 동포들이 중심이 돼 치뤄온 행사이다. 사실 이 행사는 비록 총련과 민단쪽이 공식적으로 참가한 것은 아니지만 몇해 전부터 총련과 민단이 여러모로 함께 협조해왔다.

특히 행사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조선중급학교 학생들과 건국초등학교 아이들의 합창은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함께 부른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도 그 자체로 감동적이었지만 두 학교 아이들이 한 무대에 같이 선다는 게 더 큰 감격이었다. 여태껏 같은 행사에 따로따로 출연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같이 서서 합창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본에 대해서도 배타적이지 않았다. 일본전통 복장을 한 사람이 합창을 지휘했다. 남과 북 그리고 일본이라는 세개의 꼭지점으로 연결되는 이 아이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한 장면이었다.

낡은 대립구도는 더이상 통하지 않아

사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3세 젊은이들에게 이데올로기 대립이란 낡은 구도일 뿐이다.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재일동포 3, 4세들의 모습은 이를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공연장 입구에서 김춘월(23)씨와 김수기(23)씨는 ‘조국은 하나’라고 적힌 티셔츠 차림으로 나란히 앉아 참가자들에게 티켓을 나눠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엄연히 국적이 다르다. 춘월씨가 조선적인 데 반해 김수기씨는 대한민국 국적. 조선학교 유치원을 함께 다닌 동창생이지만 이들은 오랫동안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왔다. 김춘월씨는 줄곧 조선학교 중급부와 고급부를 다녔고, 김수기씨는 일본학교를 다녔다.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왔지만 둘 사이에는 허물이 없다. 그저 “서로를 존중해줄 뿐”이다. ‘조선인유학생동맹’의 멤버로도 활동하는 김춘월씨는 “남쪽에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조선적’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열혈 총련 아가씨에게 남쪽은 적대국가가 아니라 또 하나의 조국이다.

행사장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뒤치닥꺼리를 도맡은 서정임(29)씨는 북한말투를 쓰는 한국국적의 아가씨다. 고급부까지 조선학교에서 마친 서씨는 “한국은 위험한 나라”라고 배우며 자랐다. 서씨의 아버지와 오빠는 여전히 조선적으로 남아 있고 외삼촌은 아예 귀국해 북한에 살고 있다. 하지만 서씨는 사회에 나와 한국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접하면서 점점 한국에 끌리게 됐다. 결국 4년 전 어머니와 함께 국적을 한국으로 바꾼 그는 지난 98년에는 서울에 들어와 한국외국어대에서 어학연수 과정도 밟았다. 서씨는 “생활도 말도 자유로운 한국이 좋았다”면서도 “재일동포가 이만큼 살게 된 데는 총련의 힘이 컸다. 총련과 민단이 하루 빨리 화해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탄력적 정체성 “아시아인으로 살련다”

한반도의 삼팔선보다 오히려 더욱 짙게 삼팔선이 그어져 온 재일동포사회. 그 내부에 견고하게 쳐진 분단의 매듭은 이제 재일동포사회의 물밑 교류로 서서히 그리고 분명하게 풀려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중앙조직의 반목은 여전하다.

김수민(24)씨는 뜻밖에도 한국 국적을 갖고 총련 조직에서 전임활동가로 있다. 이쿠노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가 민단 소속이라 줄곧 일본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그는 고교 시절 장고 소리, 민족역사 등 우리 것을 접하면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민단계 부모 밑에서 자란 이순미(30)씨는 총련과 민단으로 갈라진 동포사회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발로 뛰는 젊은이다. 그는 일본사회에서 받은 ‘차별’에 대한 고민을 하다 뒤늦게 ‘민족적 정체성’을 찾아나선 경우다. 그는 ‘일본’ 속에서 민단이니, 총련쪽이니 하는 것보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일본이 자기 안에서 행복하게 만나기를 꿈꾼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나는 아시아인이다”라고 말한다.

동포 3, 4세들은 부모세대의 삶의 궤적을 그대로 되풀이하지는 않는다. 총련과 민단으로 갈라져 싸우지도 않는다. 어렸을 때, 부모의 선택에 따라 조선학교로, 민단계 건국학교로, 일본학교로 보내졌지만 10대 후반, 20대 초가 되면서 그들의 정체성은 새롭게 구성됐다. 물론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부모세대의 이념적 민족적 정체성이 유전되지만은 않는다. 부모세대에 비해 지켜야 할 신념이 희박해진 대신 이들은 좀더 다양하고 탄력적인 정체성을 지닌다. 남북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일본 속의 한국인. 혹은 총련과 민단이라는 상징화된 대상에서 자유로운 조선인. 이들이 수렴하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이쿠노의 광복절 행사, 원코리아 페스티벌, 그리고 재일동포 3, 4세들의 의식과 행동은 재일동포사회가 분명 하나로 모아지고 있는 흐름이다. 이런 흐름은 특히 6·15남북정상회담과 잇따른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이뤄진 일총련계 재일동포들의 한국방문 합의로 더욱 활발해졌다. 지난 8월6일 총련과 민단쪽 바둑 애호가 110명이 한데 모인 가운데 원코리아 바둑대회가 열렸다. 또 민단 시부야 지부의 주선으로 8월3일 열린 리틀엔젤스 도쿄특별기념공연에는 한국학교 학생 200명과 조선학교 학생 400명을 포함한 1천여명의 동포가 함께 통일의 노래를 부르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재일동포사회의 양쪽 어린이들간에 첫 교류가 이뤄진 행사였다. 재일동포사회의 이런 화합의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코리아타운이 형성된 가와사키에서는 오는 8월26일 한국상공회의소와 재일조선인상공회 민단 주최로 가외사키 동포 하나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민단과 총련 중앙의 반목은 아직도 여전


(사진/재일동포들은 총련동포들의 남한방문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상호모국방문단 구성을 촉구하는 민단 중앙본부.)


이처럼 재일동포들 사이에 반목의 벽은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지만 총련과 민단 사이의 조직간의 벽은 여전하다. 반세기 동안 양쪽 정부를 대신해 대립과 반목을 지속해온 민단과 총련 중앙의 갈등은 쉽지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민단 중앙이 “남북정상회담 직후에 총련 중앙에 대화를 요청했다”고 주장하면, 총련 중앙은 “고향방문단 실무협의부터 하자”고 우기고, 서로 “묵묵부답인 건 그쪽”이라며 힐난하고 있다. 지부차원의 교류도 두 중앙의 허락이 없어 비공식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다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공식적으로 간판 걸고’ 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오사카 이쿠노 시가시 지부 공동행사가 바로 그 출발점이었다. 총련 오사카 지부 한 간부는 “위로 올라갈수록 온도차가 심하다”고 표현했다. 특히 그 온도차는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합의된 총련동포의 남한방문 실무추진과정을 둘러싸고 불거졌다.

총련동포 고향방문이 합의된 다음날인 8월1일 총련은 중앙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발빠른 행보였다. 그만큼 총련동포 고향방문 성사는 총련으로서는 절박한 과제였다. 구성원의 90% 이상이 남쪽 출신인 현실에서 고향방문을 위해 총련활동을 그만두는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향방문단 문제가 풀리면서 총련은 조직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

하지만 총련쪽은 ‘적절한 조처’가 즉각 취해지지 않는다는 불만을 품고 있다. 총련 중앙본부 국제부 한 간부는 “발표 바로 다음날부터 주일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실무접촉을 시작하자고 제안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본국에서 아직 아무런 통지가 없으니 기다려라’는 답변뿐이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합의가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난 8월8일에도 대화는커녕 여전히 실무협의 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더구나 민단 중앙이 총련동포 고향방문 성사에 대해 남쪽 정부에 항의했다는 소문이 있다며 총련 중앙은 매우 불쾌해 하고 있었다.

실제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총련동포의 남한 방문 합의가 이뤄진 데 대해 민단쪽은 적지 않게 당혹감과 섭섭함을 표시하고 있다. 언론에 합의사실이 발표되기까지 민단 중앙은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사항이 합의된 뒤 민단은 통일부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등에 항의성 질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민단 중앙본부 황영만 사무총장은 “고향방문단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이산가족’의 개념문제다. 이번 합의는 총련동포들을 이산가족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단은 이에 대해 “총련동포들이 무슨 이산가족이냐”며 따졌다. 총련동포들은 자기가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남한에 갈 수 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산가족이 아니라는 얘기다.

마음의 삼팔선 지우는 고향방문 이어져야


(사진/총련에 속한 동포들의 90%이상이 남쪽출신이다.총련중앙은 고향방문에 대한 실무준비를 기대하고 있다.)


민단으로서는 이번 총련동포 남한방문 합의로 ‘고향방문단 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을지도 난감해졌다. 지난 75년부터 총련동포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고향방문단’ 사업은 민단의 중심사업 중 하나였다. 주로 조선적을 지닌 동포들을 상대로 한 이 사업의 존재 자체가 이번 합의로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민단 중앙본부 관계자는 “총련이 (고향방문자를) 선별할 텐데 그렇게 되면 일반 총련동포들은 소외될 게 뻔하다”며 “일반 총련동포들을 위해서라도 이 사업은 계속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반도의 삼팔선보다 오히려 더욱 짙게 삼팔선이 그어져 온 재일동포사회. 그 내부에 견고하게 쳐진 분단의 매듭은 이제 서서히 그리고 분명하게 풀려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중앙조직의 반목은 여전하다.

일흔의 나이에 반세기 만에 고향방문을 앞두고 잠 못 이루는 총련동포와 이번 고향방문 결정을 한결같이 “참 잘된 일”이라고 밝히는 민단동포들의 정서를 이제 양쪽 중앙이 받아 안아야 할 때다. 그래야 반쯤 남은 매듭이 완전히 풀리지 않을까.

“북녁 고향에도 가고 싶다”

총련동포의 고향방문을 보는 민단의 시각… 북한 정권에는 피해의식 깊어

남북한사이에 이뤄진 총련동포들의 남한방문에 대해 민단 쪽 재일동포들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나이가 지긋한 동포일수록 더욱 그랬다. 이쿠노 공동행사에 참가한 안은선(79)씨는 “그 사람들도 다 한 고향사람들이고 친척들”이라며 “그동안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딱했는데 참 잘됐다”고 반겼다. 이쿠노 거리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도 “이번 합의에 대해 알고 있다”며 “잘된 일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동포들은 “난 그런 데 관심없다”고 잘라 말하거나 “통일이 되면 남쪽만 손해보는 거 아니냐”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워낙 심한 갈등을 겪어 온 터라 “민단, 총련” 말만 꺼내도 아예 답변을 피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아직도 앙금을 삭이지 못한 채 명확히 반대의사를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북쪽 출신 민단노인들이 그런 경우다. 이들은 재일동포사회의 아이러니를 상징한다. 총련에는 제주를 중심으로 한 남쪽 출신 동포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반면에 북쪽 출신 동포들은 그 숫자는 많지 않지만 대부분 민단에 소속돼 있다. 그 배경에는 뒤틀린 한국현대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북 출신 동포들은 대부분 지주나 부유한 집안 출신들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유학왔다가 북한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돌아가지 못하고 눌러 앉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북한 정권에 대해 뿌리깊은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단 중앙은 상호 모국방국단 문제를 들고 나왔다. 공식적으로 이번 합의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다지 탐탁지 않아 하는 민단 중앙의 분위기를 반영한 우회적인 문제제기인 셈이다. 민단 중앙의 한 관계자는 “재일동포의 6% 정도가 북한이 고향인데다가 북송 동포들의 가족과 친지들 중에도 북한방문 희망자들이 꽤 있다”며 “이들의 상호교환 방문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함경북도 출신 민단동포 김아무개(72)씨는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며 역성부터 냈다. 유학을 왔다가 일본에 눌러 앉게 됐다는 그는 ‘고향에 가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화를 내며 “누구 좋으라고 고향에 가? 난 전혀 갈 마음이 없어”라고 목청을 높였다. 아직도 50년 전에 당한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김씨의 집안은 해방직후 재산을 몰수당하는 등 풍비박산이 났다고 한다. 최근의 남북관계 개선 기류에 대해서도 “이북에 그렇게 아부를 해야 되냐”며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치가 떨린다”고 분노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전쟁이 나면 총대매고 나가고 싶다는 김씨. 이 북쪽 출신 노인의 분노를 통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재일동포사회의 앙금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도쿄·오사카=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park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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